[우보세] 기술사업화 정책 흔들려선 안 된다

류준영 기자 기사 입력 2025.04.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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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 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10일 찾은 군산플라즈마기술연구소. 2013년부터 이곳에서 개발된 기술 중 민간에 이전돼 상용화된 건수는 무려 55건에 달한다. 대표적인 성과 중 하나는 반도체 식각·증착 공정을 시뮬레이션하는 소프트웨어다. 연구소는 이 기술을 경원테크에 이전했고,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실제로 구매해 쓰고 있다. 최용섭 소장은 "도시바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우리 기술을 쓰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일본에 전문 공정 소프트웨어를 수출한 첫 사례일 것"이라고 밝혔다.

기술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다. 근래 미·중 기술패권 경쟁만 봐도 알 수 있듯이, R&D(연구개발)는 생존 전략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앞서 소개한 플라즈마기술연구소는 오히려 드문 성공 사례다. 매년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약 5조 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기술이전 실적은 연간 2000억원 안팎에 머물고 있다. 기술료 수입은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기술이 효과적으로 사업화되도록 생태계를 만드는 데 사활을 걸겠다"고 밝힌 배경이 여기에 있다. 기술이 개발되고도 산업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른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넘기 위한 정부의 의지 표명이다. 이 계곡을 넘으면 '부의 계곡(Wealth Valley)'이 펼쳐질 수 있지만, 문제는 지속성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범정부 기술사업화 지원 정책' 발표가 계속해서 지연되고 있다. 범부처 차원의 기술사업화 컨트롤타워 구축 논의 역시 일부 부처의 미온적인 태도로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오는 6월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정권 교체나 장관 교체로 인해 해당 정책이 추진 동력을 잃거나 중단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처럼 불확실한 정책 환경은 연구자와 기업 모두에게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기술사업화는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한 영역인 만큼, 정권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안정적이고 일관된 정책 추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술사업화는 단순히 기술을 파는 일이 아니다. 연구계가 만든 기술을 산업계가 활용하고, 투자계가 지원하며, 정부가 촉진하는 일련의 '공진화' 과정이다. 이 전 과정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기술이 '진짜 경제'가 되고, 일자리 및 국부 창출로 이어진다. 최근 큐어버스가 알츠하이머 치료 후보물질로 5000억 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성사시킨 것도, 산·학·연·관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최근 과기정통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들이 실험실 기술 스케일업, 사업화 거점 조성, 기술 기반 기업의 글로벌 진출 등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선 단기 성과 중심이 아닌 중장기 전략과 비전이 필요하다. 기술이전 전담조직(TLO) 역량 강화, 기술료 수입률 제고, 기업 수요와의 연계 등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 꾸준한 예산 투입과 제도적 뒷받침, 그리고 부처 간 협력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기술사업화는 대한민국 미래 산업 전략의 핵심 축이다. 정권이 바뀐다 하더라도, 현재 수립 중인 정책을 폐기해서는 안 된다. 기술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뿌리가 흔들려선 안 되듯, 기술사업화 생태계도 단단한 기반 위에 안정적으로 구축돼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일관된 철학과 지속 가능한 추진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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