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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오사AI의 2세대 반도체 레니게이드/사진=퓨리오사AI
미국 빅테크 메타의 국내 AI반도체 스타트업 '퓨리오사AI' M&A(인수합병)이 무산됐다. 최근 퓨리오사AI는 메타의 1조2000억원 인수제안을 거절하고 독자생존의 길을 걷기로 했다. 딜이 무산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퓨리오사AI가 독자생존을 결정한 것은 그만큼 기술력에 자신이 있어서일 것이다.
퓨리오사AI가 개발한 '레니게이드'는 국내 최초로 HBM(고대역폭메모리)을 탑재한 NPU(신경망처리장치)로 올 하반기 양산이 목표다. 레니게이드는 엔비디아의 최상위 추론용 AI반도체 'H100'의 다음 단계로 평가받는 'L40S'와 유사한 성능을 보이지만 전력소모는 150W에 불과해 L40S(350W) 대비 2배 이상 효율적이다. 이 정도 스펙이라면 추론용 칩분야에선 엔비디아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기관투자자들도 퓨리오사AI의 결정을 지지하고 추가 자금까지 투입하기로 했다고 한다. 당장 회사를 매각하기보다 자체적으로 칩을 개발·생산하는 게 실익이 크다고 본 것이다. 그만큼 기술력과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셈이다. 여러 악조건에서도 고심 끝에 도전을 이어가기로 한 퓨리오사AI의 건승을 기원한다.
한편으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이번 딜로 인해 국내 AI반도체 생태계와 벤처투자 시장의 초라한 현주소가 또 한 번 드러났다. 애초 퓨리오사AI가 매각을 고려하게 된 것은 국내에서 마땅한 투자자를 찾지 못해서였다. 정영범 퓨리오사AI 상무는 지난 2월 메타 인수설이 불거진 뒤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굳이 매각하지 않고 투자를 받으면 좋지만 국내에서 원하는 만큼 (투자유치가) 되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 AI반도체 개발업체는 조단위 투자를 받는 데 비해 퓨리오사AI는 2000억원도 안되는 투자금으로 경쟁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AI반도체와 같은 첨단기술 개발에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지만 국내 벤처투자 시장은 이를 뒷받침하기엔 역부족인 게 현실이다. 국내 벤처투자 규모는 연간 12조원 정도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0.26%로 미국의 5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모태펀드 등 정책자금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고 종지만한 시장만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식으로 유망한 기술과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당연시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기술강국들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적으로 출자자 다변화를 통해 벤처투자의 판을 키워야 한다. 특히 380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을 비롯해 연기금·공제회가 벤처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연기금·공제회의 벤처펀드 출자비중은 전체의 3%에 그친다. 연기금·공제회가 벤처투자의 큰손으로 활약하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과는 딴판이다. 벤처펀드 출자비중이 2%에 불과한 해외 모험자본(외국인) 유인책도 필요하다. 정부가 중·후순위 투자 등을 통해 벤처펀드 투자 리스크를 상쇄해주고 투자수익에 대한 세제지원 등 전폭적이고 과감한 인센티브도 고려해야 한다.
삼성전자(56,100원 ▼1,500 -2.60%), SK하이닉스(182,200원 ▼12,400 -6.37%) 등 대기업들도 국내 팹리스 스타트업 투자·협업 등 AI반도체 생태계를 키우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해외 스타트업 투자엔 적극적인 반면 국내 스타트업 투자엔 보수적인 모습을 보였다. AI반도체 생태계를 키우는 것은 결국 고객을, 시장을 키우는 일이다. TSMC가 시장점유율 60%가 넘는 파운드리 강자로 자리매김한 것도 전 세계의 크고 작은 팹리스를 적극 끌어안은 결과다. TSMC는 퓨리오사AI 투자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눈 팔면 뒤처지는 디지털 대변혁의 시대다. AI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민관의 역량과 자원을 결집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그렇게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