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재훈 에코프로파트너스 대표최근 벤처캐피탈(VC) 업계의 화두는 퓨리오사AI다. AI(인공지능)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퓨리오사AI는 메타, TSMC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및 인수 제안을 받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에 국내 기업의 기술력 인정, 해외 투자유치의 긍정적 측면과 기술유출 우려 및 국내 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점 등 부정적 측면이 맞서고 있다.
퓨리오사AI는 미국 조지아텍 전자공학부 학·석사를 졸업하고 미국 반도체 기업 AMD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등을 거친 백준호 대표가 2017년 창업했다. 퓨리오사AI의 칩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칩보다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준수한 가성비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같은 소식에 기술유출 우려, 국내 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메타의 퓨리오사AI 인수 추진은 국내 팹리스의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더구나 국내는 미국에 비해 시장이 작고 클라우드 서버 시장이나 칩을 활용할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에 충분한 규모의 데이터센터 시장은 물론 높은 기술력을 가진 해외 빅테크와 손잡는다면 퓨리오사AI의 기술력이 올라가 결과적으로 국내 AI 반도체 생태계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
물론 국내 대기업이 인수해 국내 AI 반도체 생태계를 키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톤 다이내믹스를, 삼성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 하만 등을 인수했던 전례도 있다. 하지만 대기업들도 사활을 걸고 사업구조 재편(리밸런싱)을 통한 핵심역량에 집중하고 있어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한국 기업이 한국 자본만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빅테크에 인수제안을 받은 퓨리오사AI마저도 국내 자본시장에서 극심한 투자부족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최근 국회에 출석한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는 "그동안 약 2000억원을 투자받고지난 8년간 여러 정부 기관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해왔다"면서도 "최근 자금 압박을 크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AI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조달이 국내에서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 사이 미국과 중국 AI 반도체 기업들은 조단위 투자를 받으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물론 국내 벤처투자 시장은 외형적으로 고속성장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수조원을 운용하는 VC도 여럿 있다. 하지만 아직 자본 이득에 급급한 나머지 장기적 비전이나 전략을 가지고 AI 반도체 기업 등 대규모 자금을 필요로 하는 첨단 신산업에 투자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실 국내 VC 시장의 한계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쿠팡, 배달의 민족 등 유니콘들은 해외자본을 유치해 성장하며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번 퓨리오사AI 소식과 관련 "국내 VC 시장은 유니콘 기업까진 탄생할 수 있지만 그 이상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딥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할 만한 자금력과 비전이 있는 펀드가 없다" 등 국내 VC 시장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는 이 업계에 몸담은 필자를 부끄럽게 만든다.
퓨리오사AI의 매각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소식이 남긴 과제는 분명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 첨단산업 혹은 국가전략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국내 벤처투자 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핵심기술에 대해 VC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국부펀드를 조성하거나 모태펀드를 확대하는 등 적극적으로 투자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VC 역시 안정성 위주의 단기적 투자가 아니라 혁신성과 성장성 위주의 장기적 투자전략을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