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혁신을 앞당길 새 R&D 패러다임

오상록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 기사 입력 2025.04.01 06:00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 해주세요.

공유하기
글자크기
한 국가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어림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GDP(국내총생산) 대비 R&D(연구개발) 투자, 인구 1000명당 연구원 수 등의 지표로 우리 순위를 가늠해 보면 후하게 쳐도 세계 5위권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절대적인 투자액이나 인력 규모는 미국, 중국 등 초강대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이들이 쏟아붓는 자본과 인력의 증가세를 감안하면, 과연 기존의 방식으로 우리가 목놓아 부르짖는 퍼스트무버(선도자)로의 도약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 의문에 대해 AI(인공지능)를 통한 R&D 혁신 가속화가 해법이 될 수 있다. 지난해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이 각각 AI를 활용한 연구에 수여된 것을 보면, 이미 AI는 R&D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기존의 연구개발은 연구자의 직관과 시행착오에 크게 의존했으나, 이제는 AI와 인간 연구자의 협력으로 '똑똑하게 실패하고 빨리 성공하는' 접근법이 중요해진 것이다. 다행히 우리 정부도 최근 AI 기술을 R&D에 내재화하기 위한 'AI+Science and Technology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는 등 패러다임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 모양새다.

AI가 과학기술 혁신을 앞당기는 기폭제 역할을 하려면 어떤 지혜가 필요할까. 첫째, 과학기술 전 분야에서 AI 활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AI 기반의 R&D는 단백질 구조 예측, 신소재 탐색 문제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냈지만, 앞으로는 반도체·에너지·우주·양자 등 유망기술 분야에서 AI 도입이 선택 아닌 필수가 될 것이다.

그간 우리가 독보적인 경쟁력을 가진 분야에서는 AI를 연구현장에 적극 활용해 경쟁국과의 기술격차를 더 벌리는 핵심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또 불확실성이 크고 난이도 높은 기초·원천연구에도 AI를 접목해 과학기술의 기초 체력을 높여야 한다. 과학기술 분야의 AI확산을 통해 연구개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혁신을 앞당겨, 확보된 첨단기술이 미래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져야겠다.

둘째, AI 인프라의 개방성을 과감히 높여 산·학·연 연구자들이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딥시크로 대표되는 중국의 AI 굴기가 본격화되자 그간 개방에 인색했던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오픈소스 전략으로 노선을 수정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자들이 손쉽게 AI 컴퓨팅 자원에 접근할 수 있고, 생성된 데이터와 AI 모델은 공유·확산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R&D와 AI에 능한 이른바 양손잡이형 인재들이 배출되고, '혁신 가속화'의 생태계가 작동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술혁신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 우리는 고유의 검색엔진과 모바일 메신저 등 ICT 플랫폼 주권을 가진 나라이며, 세계 세 번째로 대규모언어모델(LLM) 개발에 성공하기도 했다. 우리 경제를 떠받들어온 반도체산업의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AI 반도체의 설계 역량도 탄탄하다. AI를 동력삼아 주춤했던 혁신의 RPM을 다시 한번 최대로 끌어올려야 할 때다.

지난 수십여 년간 과학기술은 국가경쟁력의 근간이 되어 왔으며, 앞으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AI가 촉발한 R&D 패러다임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과학기술을 토대로 한 국가경쟁력은 과거의 유산으로 남게 될지 모른다. 세계 5위권의 과학기술력이 AI를 통한 과학기술 혁신 가속화를 통해 한 순위씩 도약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기업 주요 기사

  • 기자 사진 오상록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

이 기사 어땠나요?

이 시각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