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K-스타트업 생태계, 다양성 없이 미래도 없다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기사 입력 2024.10.1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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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스타트업 청년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4.4.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스타트업 청년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4.4.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글로벌 키워드 검색광고업체 오버추어(Overture), 온라인 설문조사 전문기업 고폴고(GoPollGo), 이미지관리 프로그램 개발사 피카사(Picasa). 서로 다른 사업을 영위하는 이들 기업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미국의 '벤처 대부'로 불리는 빌 그로스가 1996년 세운 '아이디어랩'에서 탄생하고 매각된 벤처기업이라는 점이다.

고투닷컴(GoTo.com)으로 출발한 오버추어는 2003년 야후가 16억달러에 인수했고 피카사와 고폴고는 각각 구글(2004년)과 야후(2013년)가 사들였다. 아이디어랩은 이들 기업 외에도 최초 온라인 자동차 판매 플랫폼 카스디렉트(Carsdirect)를 비롯해 29년간 수많은 벤처기업을 배출했다. IPO(기업공개)와 M&A(인수·합병) 등을 통해 성공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한 사례도 수십 건에 달한다.

아이디어랩은 연쇄창업가이기도 한 그로스가 다양한 혁신기술과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실험하고자 만든 회사다. 해외에서는 이런 기업들을 '컴퍼니빌더'(Company builder) 또는 '스타트업 스튜디오'(Startup studio)라고 부른다. 이들은 직접 스타트업을 설립하거나 초기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투자 중심인 벤처캐피탈이나 보육에 방점을 둔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와 다른 점은 직접 경영에 참여하면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다는 것이다. 사업 아이템 선정부터 창업팀 구성, 기술 고도화, 사업방향 설정, 투자유치 추진 등을 함께 고민하고 실행하면서 성공률을 높인다.

이들의 최대 강점은 민첩성이다. 시장 트렌드 변화와 기술혁신에 빠르게 대응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한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면서 성공한 사업모델을 다른 나라에서 실험하기도 한다. 국내 배달플랫폼 '요기요'를 설립하고,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한 독일 딜리버리히어로도 현지 컴퍼니빌더 '로켓인터넷'이 만든 회사 중 하나다.

해외에서는 컴퍼니빌더가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우는 핵심 플레이어로 활약하지만 국내에선 사실상 불가능한 모델이다. 금산분리, 상호출자제한 등 각종 규제가 모험자본을 옥죄는 탓이다. 심지어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끄는 벤처캐피탈과 액셀러레이터도 컴퍼니빌더 역할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벤처캐피탈과 액셀러레이터가 투자한 스타트업을 자회사로 두거나 경영을 지배하는 행위를 법(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으로 금지해서다. 스타트업에 투자해도 지분을 절반 이상 초과해 보유할 수 없고 이사회 참여나 의결권 행사도 제한된다. 단순투자나 보육은 가능해도 컴퍼니빌더처럼 경영에는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국내에도 컴퍼니빌더 간판을 달고 활동하는 액셀러레이터가 일부 있지만 사업 컨설팅 등 보육 중심에 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도 중소벤처기업부가 액셀러레이터에 대한 수시감사를 진행하면서 해당 조항에 위배되는 출자주식을 모두 처분토록 시정조치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종의 다양성은 자연생태계를 더 풍요롭고 지속가능하게 한다. 스타트업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컴퍼니빌더와 같은 다양한 플레이어가 등장하고 이들이 자유롭게 혁신기술과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서비스할 수 있어야 생태계가 발전하고 시장 곳곳에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 지금처럼 AI(인공지능)를 중심으로 디지털 기술혁신이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국내는 여전히 거미줄 같은 규제가 새로운 플레이어와 비즈니스의 등장을 막는다. 정부는 규제 개선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타다는 죽었고 리걸테크(법률기술), 비대면진료 등 신산업은 지지부진하다. 그 사이 창업가와 투자자는 하나둘 도전을 멈추고 관련 시장을 떠난다. 이런 상황에서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와 선진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글로벌 창업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다양성을 해치는 낡은 규제부터 뜯어고치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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