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도 다 까먹었다"…'보릿고개 3년' 숨 넘어가는 벤처캐피탈

송지유 기자, 남미래 기자 기사 입력 2025.04.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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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유동성 믿고 창업한 신생 VC들 위기
경쟁 과열로 최근엔 업력 긴 업체도 등록말소
'퇴출초읽기' 자본잠식 VC 9곳, 2020년 이후 최다

벤처투자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중소 벤처캐피탈(VC) 업체 경영난이 심화하고 있다. 최근엔 벤처투자업체 라이선스를 반납, 등록 말소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은 챗GPT 생성형 AI 모델로 제작한 이미지. /사진=챗GPT
벤처투자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중소 벤처캐피탈(VC) 업체 경영난이 심화하고 있다. 최근엔 벤처투자업체 라이선스를 반납, 등록 말소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은 챗GPT 생성형 AI 모델로 제작한 이미지. /사진=챗GPT
벤처투자 시장 침체가 3년째 이어지면서 중소 벤처캐피탈(VC) 퇴출이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전례 없는 돈 잔치에 우후죽순 생겨났던 VC들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문을 닫는 것이다. 매년 영업손실이 쌓여 자본금까지 다 까먹고 아무런 투자 활동을 하지 못하는 이른바 '좀비 VC'도 늘고 있다.

6일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투썬인베스트먼트는 지난달 VC 라이선스를 반납했다. 2009년 설립돼 한때 운용자산(AUM)을 1000억원대로 키웠지만 2020년 이후 VC 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2022년 자본잠식 사유로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뒤 경영 여건이 회복되지 않았다.

지난해엔 △가우스벤처스 △이랜드벤처스 △루트벤처스 △IDG캐피탈파트너스 △플랫폼파트너스 △예원파트너스 △SD벤처캐피탈 등 VC 7곳의 등록이 말소됐다. 이는 전체 VC(249곳)의 약 3%다. VC 4곳이 문을 닫았던 2023년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국내 벤처투자회사 현황, 벤처투자회사 신규 등록 및 말소 추이/그래픽=이지혜
국내 벤처투자회사 현황, 벤처투자회사 신규 등록 및 말소 추이/그래픽=이지혜
VC들이 라이선스를 반납하는 배경에는 경영 악화가 있다. 펀드를 결성하고 투자가 이뤄져야 성과·관리보수 등을 받을 수 있는데 업력이 짧은 신생 VC나 소규모 VC는 자금을 모으는 것부터 쉽지 않다. 2020년 165개였던 국내 VC 수가 지난해 249개로 50% 이상 급증하면서 펀드(투자조합) 결성이나 기업 투자 과정마다 사활을 건 경쟁이 펼쳐진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VC 등록 말소 사례는 2021~2022년 설립된 신생 하우스가 대부분이었는데 업력이 꽤 긴 하우스까지 라이선스를 반납하는 건 업계가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라며 "올해는 더 많은 VC가 문을 닫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자본잠식으로 퇴출 위기에 놓인 '좀비 VC'도 늘고 있다. 벤처투자회사전자공시(DIVA)에 따르면 지난해 자본잠식에 빠져 중기부로부터 경영개선을 요구받은 VC는 9곳으로 2020년 이후 최대치다. 이중 △케이엘피인베스트먼트 △엔케이에스인베스트먼트 △오라클벤처투자 △지앤피인베스트먼트 △네오인사이트벤처스 등은 2021년 이후 설립된 신생 VC다. 창업 후 펀드 1~2개를 결성하는데 그치거나 아예 단 한 건도 결성하지 못한 곳도 있다. VC가 1년간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으면 당국으로부터 시정명령 등 경고를 받는다.

벤처투자회사 자본잠식 현황/그래픽=이지혜
벤처투자회사 자본잠식 현황/그래픽=이지혜
한 신생 VC 대표는 "펀드 결성에 실패하면 투자를 못하고 이는 수수료를 받아 운영하는 VC에겐 치명적"이라며 "수입이 없어도 사무실 임대료·인건비 등 고정비 지출은 계속 되기 때문에 자본금을 까먹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장이 경색되면서 중대형 VC들이 20억~30억원 규모의 정부 출자 펀드 운용권까지 싹쓸이하고 있다"며 "주요 출자사들도 중대형 VC에만 돈을 몰아주기 때문에 경험이 없는 신생 VC들은 설 곳이 없다"고 덧붙였다.

VC 3분의 1이 사라질 것이라는 흉흉한 전망도 있다. AUM이 1조원 이상인 한 대형 VC 관계자는 "창업투자회사, 신기술사업금융회사 등이 2020~2023년 매년 약 5조원씩 투자하면서 누적 기준으로 20조원 이상이 벤처투자 시장에 풀렸다"며 "이 자금들이 돌아야 작은 업체들도 먹고 사는데 지금은 회수시장이 꽉 막혀 대형사들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관계자는 "팬데믹 유동성을 등에 업고 2020년 이후 갑자기 등장한 창업투자회사 상당수는 사정이 좋지 않다"며 "이중 30%는 국내외 시장 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한 1~2년 내에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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