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열풍인데 자금 수혈마저 그림의 떡…K-유니콘, 반전의 열쇠는

고석용 기자, 송지유 기자, 김태현 기자 기사 입력 2025.03.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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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K-유니콘'의 위기(下)

[편집자주] 기업가치 10억달러(한국에선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을 일컫는 '유니콘'의 시대가 저무는 걸까. 2020년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유니콘의 씨가 마르고 있다. 기존 유니콘의 경우 경기에 민감한 플랫폼 업체들이 많다보니 다양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양적·질적 성장에서 경고등이 들어온 한국 유니콘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이대론 미래먹거리 다 뺏긴다..."딥테크 전용 국부펀드 조성해야"


[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24년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딥테크 스타트업/그래픽=이지혜
2024년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딥테크 스타트업/그래픽=이지혜
국내 AI반도체 스타트업퓨리오사AI가 메타와 매각 논의를 진행하는 가운데 국내 벤처투자, 특히 딥테크 투자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유망한 딥테크 스타트업들이 제 때 스케일업 자금을 수혈받지 못해 해외로 플립(본사이전)하거나 매각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에 딥테크 육성에 맞는 전용 정책펀드를 조성하고 대기업의 적극적인 M&A(인수합병)를 유도하기 위한 규제 개선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퓨리오사AI는 올해 초 메타와의 인수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 국내에서 투자유치를 진행했다. 양산 제품의 개선 및 영업을 위해 600억~800억원가량의 운영자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투자유치는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 연매출 100억원도 안 되는 상황에서 8000억원에 육박하는 기업가치에 투자할 투자사들이 많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퓨리오사AI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000억원 이상 투자를 유치한 딥테크 스타트업은 △리벨리온업스테이지딥엑스 등 3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유니콘 기업 중 딥테크라는 평가를 받는 곳이 리벨리온, 메가존클라우드 등 2곳에 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벤처투자, 독일·프랑스급 규모지만…딥테크 투자 못하는 이유

글로벌 및 한국 벤처투자 규모/그래픽=이지혜
글로벌 및 한국 벤처투자 규모/그래픽=이지혜
국내 벤처투자 규모 자체가 작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 규모는 11조9000억원(82억달러)을 기록했다. 미국(2090억달러), 영국(175억달러), 이스라엘(122억달러), 캐나다(89억달러)보다는 낮지만, 독일(81억달러), 프랑스(77억달러) 등과는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투자 환경은 딥테크 스타트업에 친화적이지 않다. 대표적인 게 펀드 만기다. 국내 벤처펀드 다수는 모태펀드 등 정책금융이 제시하는 '만기 7~8년' 펀드를 표준으로 여기고 있다. 본격적인 성장과 이익 발생에 10년 이상이 걸리는 딥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했다간 만기 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만기된 펀드의 지분을 구매해줄 '세컨더리' 시장이 크지도 않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벤처펀드 대비 세컨더리펀드 비중은 17.6%로, 전세계 평균(24%)보다 작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VC(벤처캐피탈)들이 단순히 국내 딥테크를 못 믿거나 위험투자를 기피하는 게 아니다"며 "성장부터 회수까지 시점이 짧은 기업들을 우선 고려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비교적 투자 기간의 제약이 적은 대기업 및 CVC(기업형 벤처캐피탈)가 있지만, 아직 규모가 작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CVC 투자 규모는 1764억원으로 전체 벤처투자의 1.6%에 그쳤다. M&A도 활발하지 않다. 삼일회계법인은 2023년 대기업의 중소기업 M&A가 26건 2조2000억원이라고 밝혔다. 1건당 평균 1000억원도 안 되는 규모다.

한 VC 심사역은 "통상 딥테크 스타트업들은 대기업 임직원들이 퇴사 후 설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보고 대기업들은 '남은 직원들도 회사에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볼 때가 많다"고 했다. 반도체 스타트업 대표는 "대기업들은 해외 딥테크 스타트업을 더 고평가한다"며 "이른바 '기술 사대주의'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업계가 꼽은 딥테크 투자의 한계점/그래픽=김지영
업계가 꼽은 딥테크 투자의 한계점/그래픽=김지영

◆ "전용펀드 조성·대기업 규제 완화…수단·방법 가릴 때 아냐"

업계에선 딥테크를 위한 전용펀드나 투자규제 완화 등이 해결책으로 거론된다. 이에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첨단산업 국민펀드 등도 업계에선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인 규모나 운영 방안 등에 대해선 이견이 있겠지만, 딥테크 육성을 위한 전용 펀드는 필요하단 설명이다.

한 투자사 관계자는 "정치 논리를 떠나 딥테크 산업 육성 측면에서 첨단산업 펀드 등이 논의되는 것은 건전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다른 스타트업 대표는 "딥테크 스타트업의 성장 공식이 일반적인 스타트업들과 다른 만큼 특화 펀드가 필요하다"며 "글로벌 기술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다"고 했다.

주요국 외국자본 벤처펀드 출자비중/그래픽=이지혜
주요국 외국자본 벤처펀드 출자비중/그래픽=이지혜
외국 자본의 한국 패싱 현상도 선결 과제로 꼽힌다. 딥테크 산업을 키우려면 글로벌 자금의 대규모 투자가 반드시 필요한데 한국은 소외돼 있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프레퀸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해외 주요국의 외국 자본 벤처펀드 출자 비중은 인도 87%, 싱가포르 84%, 영국 74%. 독일 66% 등에 달한다. 한국은 2.1%에 불과하다.

대기업의 M&A 활성화를 위한 제도 및 여론 개선 필요성도 제기된다. 재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에 따른 기업결합 심사, CVC의 외부 출자금 활용 한계 등 규제로 국내 스타트업 투자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투자에 대해 '문어발식 확장'이라고 보는 부정적 여론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비유니콘 10곳 중 6곳은 플랫폼…"선정기준·지원방식 바꿔야"




산업별 예비유니콘 현황/그래픽=김지영
산업별 예비유니콘 현황/그래픽=김지영
성장을 위한 투자금이 필요한 스타트업에게 가뭄에 단비 정부가 보증한 기업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수월했던 후속 투자유치 장기차입으로 안정적인 런웨이 확보 가능

2019년 시행된 정부 주도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육성사업에 대한 업계 평가다. 정부는 최대 200억원 특별보증을 골자로 하는 예비유니콘 사업을 통해 현재까지 126개의 스타트업을 지원했다. 스타트업 생존이 걸린 자금조달 문제를 풀어줬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실제 정책 목적인 유니콘 달성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의문이다. 예비유니콘에 선정된 126개 스타트업 중 유니콘 성장한 곳은 8개에 불과하다. 정책 목표 달성률이 6.3%인 셈이다. 예비유니콘 선정 기업 대부분이 플랫폼 혹은 서비스 기업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AI(인공지능), 양자컴퓨터 등 딥테크 육성이 중요해진 현 시점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그림의 떡' 특별보증 200억…"자금 활용목적 완화"

예비유니콘은 시장검증·성장성·혁신성 요건을 갖춘 스타트업에 스케일업 금융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원 대상은 누적 투자유치금 50억원 이상 혹은 기업가치 1000억원 이상 비상장기업이다.

예비유니콘으로 선정된 기업들은 최대 200억원의 특별보증을 지원 받는다. 중기부 산하기관인 기술보증기금(기보)이 예비유니콘에 대해 특별보증을 해주면 금융기관이 대출을 해주는 방식이다. 이외 인수합병(M&A) 자금, 민간 협력 글로벌 컨설팅, 해외 진출 지원 등의 혜택도 주어진다.

최근 예비유니콘에 선정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적자 성장을 하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지분 희석 없이 대출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며 "그러나 실제 받을 수 있는 특별보증 규모가 예상보다 적어 사업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말했다.

사업 공고에 따르면 예비유니콘 특별보증 한도는 200억원이다. 그러나 대부분 보증한도는 50억~100억원 사이다. 최근 3개년 기준 평균 보증금액만 보더라도 71억원 수준이다.

기보에 따르면 특별보증을 통한 기업별 최대 보증지원 한도는 200억원이지만, 실제 보증한도는 개별심사를 통한 추정 매출액 및 기존 보증잔액 등을 고려해 최종 결정된다. 또 운전자금 또는 시설자금 등 활용 목적에 따라 보증한도가 다르다.

2020년 예비유니콘으로 선정된 한 딥테크 스타트업 대표는 "물류센터나 생산설비가 필요하지 않은 딥테크 특성상 받을 수 있는 보증한도가 제한적"이라며 "각 산업별 특성에 맞게 보증한도를 유연하게 풀어준다면 기업 입장에서 체감하는 효용성을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 플랫폼·서비스에 편중…"구조적 변화 필요하다"

예비유니콘의 플랫폼·서비스 편중 현상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제공한 예비유니콘 리스트를 유니콘팩토리 데이터랩으로 분류한 결과 예비유니콘 126개 중 73개가 유통·물류·커머스, 게임·엔터, 라이프스타일 등 플랫폼·서비스로 분류됐다. 전체 57.9%다.

선정기준 때문으로 풀이된다. 예비유니콘은 1차와 2차 평가를 거쳐 최종 선정된다. 1차는 △글로벌 지향성(20점) △투자유치금액(25점) △기업가치(25점) △매출규모(20점) △고용인원(10점) 등으로 평가한다. 1차 평가를 통과한 기업을 대상으로 2차 평가를 진행한다.

2차는 △글로벌 진출 가능성(20점) △투자유치 기간(15점) △기술평가등급(20점) △매출액 증가율(10점) △고용증가율(5점) △특별보증 지원 적합성(30점) 등으로 평가한다. 한 딥테크 스타트업 관계자는 "2차 평가에 들어서야 기술평가를 하다보니 글로벌 지향성, 고용인원, 매출규모 등 1차 평가에서 플랫폼이나 서비스 스타트업에 딥테크가 밀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수미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니콘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예비유니콘 지원사업은 딥테크 기업을 선별하고, 장기 인내 자본을 투입하는 사업과는 거리가 있다"며 "예비유니콘 지원사업을 딥테크와 연결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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