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기업가치 10억달러(한국에선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을 일컫는 '유니콘'의 시대가 저무는 걸까. 2020년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유니콘의 씨가 마르고 있다. 기존 유니콘의 경우 경기에 민감한 플랫폼 업체들이 많다보니 다양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양적·질적 성장에서 경고등이 들어온 한국 유니콘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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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신선식품 새벽배송으로 출발한 컬리는 한 때 배우 전지현을 모델로 내세워 소비자들에게 인지도를 쌓았다. 온라인 주문이 급증했던 코로나 팬데믹 기간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지속적으로 몸값이 추락하고 있다. 2023년엔 증시 상장 계획이 무산되기도 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2021년 12월 4조원→2023년 5월 2조9000억원→2025년 3월 5400억원.' 이는 2014년 신선식품 새벽배송으로 출발해 7년 만에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비상장사)에 오른 컬리의 기업가치다. 한 때 4조원으로 평가받던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코로나 팬데믹 특수가 꺼지면서 급속도로 낮아졌다. 20일 현재 증권플러스 비상장·서울거래 비상장 등 장외에서 거래되는 컬리 주가는 1만2500~1만3000원선. 이 주가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컬리의 시가총액은 5300억~5500억원이다. 이는 유니콘 최소 기준인 기업가치 1조원도 충족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국내에서 유니콘으로 성장한 스타트업 가운데 기업가치가 계속 낮아지거나 3년 연속 영업손실을 내는 만년 적자기업이 늘고 있다. 내수 중심의 플랫폼 업체들이 많다 보니 경기가 좋을 때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유니콘으로 분류됐지만 사업 확장 등 수익모델을 찾지 못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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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딥테크' 열풍인데…한국은 '플랫폼'만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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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유니콘 현황/그래픽=이지혜23일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가 국내·외 유니콘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한국에선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14년 이후 총 41곳이 기업가치 1조원 이상으로 평가받아 유니콘 지위를 얻었다. 이중 쿠팡·크래프톤·쏘카·하이브 등 12곳은 IPO(기업공개)를 통해 상장기업으로 변신했고, 1곳(우아한형제들)은 해외기업에 피인수돼 모두 13곳이 유니콘을 졸업했다. 옐로모바일·티몬·위메프 등 3곳은 폐업·기업회생 등 이유로 유니콘에서 제외됐다. 현재 유니콘으로 분류된 기업은 25곳이다.
국내 유니콘을 산업별로 나눠보면 온라인상거래 등 소비재 유통 플랫폼 분야가 48%로 가장 많다. 여기에 미디어·콘텐츠(20%) 등을 합하면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기반 업체 비중이 70%에 육박한다. 기업용 기술과 금융 서비스는 각각 12%, 제조·산업은 8%다. 의료·생명과학 등 바이오 관련 업체는 한 곳도 없다. 박현규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MOT) 교수는 "국내 창업생태계의 문제는 유니콘 기업의 수가 아니라 유형에 있다"며 "원천기술을 보유한 유니콘이 나오지 않는 건 대다수 정부 지원이 기술 기반 창업에 편중돼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라고 짚었다.
첨단기술 기업이 속출하는 글로벌 유니콘 트렌드와도 큰 차이가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세계 유니콘 1257개 중 기업용 기술, 제조·산업 등 B2B(기업 간 거래) 기반 기술 기업 비중은 47.3%다. 소비재·유통 분야는 16.4%에 불과했다. 전세계 창업생태계를 선도하는 미국의 경우 유니콘 690곳 중 절반 이상이 딥테크 기업으로 분류된다. 금융과 의료를 합하면 80%가 기술 기업이다. 유통 플랫폼은 10% 수준이다. 글로벌 스타트업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국으로 꼽히는 이스라엘은 유니콘 23곳 중 17곳(73.9%)이 기술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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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 떨어진 기업가치, 까마득한 I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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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니콘 기업 현황/그래픽=이지혜한국에 내수 플랫폼 기반 유니콘이 유독 많은 배경에는 낮은 투자비용, 높은 인구 밀집도 등이 있다. 많은 자금을 투입해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하는 딥테크에 비해 저비용으로 고도의 기술력 없이도 사업할 수 있다는 점이 국내에서 플랫폼 기반 유니콘이 양산된 요인으로 꼽힌다. 인구 밀집도가 높아 트렌드 확산 속도가 빠른 것도 모바일 커머스 플랫폼 사업에 유리한 환경이 됐다.
하지만 국내 플랫폼 유니콘 중 상당수가 과도한 가치평가, 수익모델 부재 등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유니콘으로 성장한 뒤 기업가치가 추락한 것은 컬리뿐 아니다. 오아시스와 빗썸 역시 장외 시가총액이 5000억원을 밑돈다. 실적 악화에 허덕이는 곳도 많다. 국내 25개 유니콘 가운데 17곳이 2023년 기준 적자 기업이다. 비바리퍼블리카(토스)·컬리·직방·당근마켓 등 12곳은 3년 연속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크림은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미래 성장이 중요한 유니콘을 평가할 때 실적은 논외로 해야 한다는 해석도 있지만 불안한 재무상태는 사업 확장, IPO 등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실제 컬리·오아시스 등은 2023년 증시 문턱을 넘지 못하고 상장을 철회한 바 있다. 비바리퍼블리카·야놀자·무신사 등 일부 기업은 조건이 까다로운 국내 증시 상장 대신 해외 상장을 검토하고 있다. 역대 플랫폼 유니콘 가운데 증시 상장에 성공해 졸업한 기업은 쿠팡이 유일하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나수미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술 스타트업은 투자금 회수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이 필요한데 현재 국내엔 이를 인내할 수 있는 자본이 부족하다"며 "플랫폼 위주의 한국 유니콘을 기술 기반으로 전환하려면 정부와 민간을 아우르는 대대적인 제도 변화를 통해 장기 투자가 가능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