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뒤영벌 스마트사육실 가보니
"90일 정도 지나 벌집이 이 정도 크기가 되면 시설 하우스로 보냅니다."
박기영 농업연구사는 가로 40㎝, 세로 30㎝, 깊이 20㎝ 정도로 보이는 플라스틱 상자를 내오며 이같이 말했다. 상자 안엔 검지손가락 한 마디만 한 여왕벌 1마리 주변을 50~80마리의 일벌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들은 시설과일·채소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화분매개벌'로 길러졌다. 관계자는 "수백 개 상자가 스마트사육시설 내 여러 곳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된다"며 "이미 박스마다 주인이 정해져 있다"고 했다. 전북 전주역에서 차로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기후위기로 꿀벌들이 멸종위기에 빠지자 2021년 7월 이곳에 양봉(養蜂·벌을 기르는 축산업)생태과가 꾸려졌고 각종 '꿀벌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농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에서 사라진 꿀벌은 약 78억마리다. 이는 전체 꿀벌의 약 18%에 해당한다. 기후변화로 꿀벌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밀원식물의 개화기간이 단축돼 꿀벌 실종위기·폐사를 맞았다는 설명이다. 꿀벌은 과채 수분(受粉·종자식물에서 수술의 화분이 암술머리에 옮겨붙는 일)의 70% 이상 담당하는 만큼 꿀벌을 살릴 방안을 찾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실정이다.
최근 농업과학원에서 벌 유전자원 보존, 안정생산기술 확보, 병해충 관리 등을 연구하는 '뒤영벌 스마트사육시설'을 방문했다. 뒤영벌은 화분매개 전용벌이다. 실내에서 공장식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특성이 있다. 시설 입구에서 끈적끈적한 발판을 밟고 난 후 실내화로 바꿔 신었다. '뒤영벌 교미실' 문 앞에 자리한 '뒤영벌 사육환경관계시스템'이라고 표기된 대형모니터가 눈에 들어왔다. 화면엔 △교미 전 준비실 △교미실 △산란실 △봉군형성실 △봉군숙성실의 온도와 습도·조도 등이 표시됐다. 이 중 가장 민감한 산란실의 경우 28.4도, 55.1%, 0lx를 24시간 365일 유지한다. 교미실 문을 열자 어두운 공간에 뒤영벌 보금자리 상자가 연구실 벽을 둘러싼 선반마다 놓여 있었다. 상자엔 날짜별로 늘어난 뒤영벌 숫자와 함께 인공수정, 봉군(벌무리) 형성 등 현재 상태를 표기한 메모가 붙어 있었다. 개체군 수를 파악해 외부 민간업체로 배송 가능한 일정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한상미 양봉생태과장은 "수벌과 여왕벌은 2주간 공중교미한 뒤 상자에 들어간다"며 "뒤영벌은 비닐하우스와 같은 좁은 공간에 대한 적응력이 꿀벌보다 뛰어나고 꿀벌의 화분매개가 어려운 토마토와 무밀작물에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농업과학원은 벌의 활동과 봉군 수명을 늘리기 위한 '스마트벌통'도 개발했다. 출입구에 IoT(사물인터넷) 센서를 달아 벌이 몇 마리 생존하는지 알 수 있다. 또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벌통 내부 먹이(대용화분, 당액), 온도, 이산화탄소 농도를 파악하고 원격관리할 수 있다. 벌을 잘 모르는 초보자도 벌통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과장은 "비닐하우스가 고온일 때는 센서와 연동된 환기팬을 가동해 벌통 내부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한다"며 "이를 통해 기존 벌통보다 벌의 활동은 2배 이상 늘고 벌의 생존기간도 65%가량 길어졌다"고 말했다. 스마트벌통은 현재 8개 지역에 200여개가 설치돼 운영 중이다. 연내 12개 지역에 300개를 더 설치할 예정이다.
농업과학원은 앞으로 국내 애그테크(농업기술) 기반 스타트업들과 함께 가내수공업 형태의 양봉을 '데이터 기반 디지털양봉 시스템'으로 탈바꿈시켜 산업화할 계획이다. 농업과학원 이상재 농업생물부장은 "최근 산림청, 기상청, 환경부 등 5개 부처와 함께 꿀벌문제 공동대응을 위한 MOU(업무협약)를 맺었다"며 "2023년부터 8년간 484억원의 예산이 투입해 꿀벌을 안정적으로 증식관리하는 시스템을 보급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기관 탐방은 농업 정책 및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인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이 주도로 이뤄졌고, 농업회사법인 한미종묘 김태경 대표,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이인복 교수, 목장이나 농장에 각종 ICT(정보통신기술) 융복합 서비스를 개발·제공하는 애그테크 스타트업 제네틱스 하현제 대표 등이 참여했다.
이주량 선임연구원은 "꿀벌의 화분매개 경제가치는 5조~6조원 이상"이라며 "농업분야 산학연관이 첨단 ICT(정보통신기술)를 양봉에 도입할 수 있도록 힘을 합치는 노력과 투자를 계속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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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 농업연구사는 가로 40㎝, 세로 30㎝, 깊이 20㎝ 정도로 보이는 플라스틱 상자를 내오며 이같이 말했다. 상자 안엔 검지손가락 한 마디만 한 여왕벌 1마리 주변을 50~80마리의 일벌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들은 시설과일·채소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화분매개벌'로 길러졌다. 관계자는 "수백 개 상자가 스마트사육시설 내 여러 곳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된다"며 "이미 박스마다 주인이 정해져 있다"고 했다. 전북 전주역에서 차로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기후위기로 꿀벌들이 멸종위기에 빠지자 2021년 7월 이곳에 양봉(養蜂·벌을 기르는 축산업)생태과가 꾸려졌고 각종 '꿀벌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농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에서 사라진 꿀벌은 약 78억마리다. 이는 전체 꿀벌의 약 18%에 해당한다. 기후변화로 꿀벌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밀원식물의 개화기간이 단축돼 꿀벌 실종위기·폐사를 맞았다는 설명이다. 꿀벌은 과채 수분(受粉·종자식물에서 수술의 화분이 암술머리에 옮겨붙는 일)의 70% 이상 담당하는 만큼 꿀벌을 살릴 방안을 찾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실정이다.
최근 농업과학원에서 벌 유전자원 보존, 안정생산기술 확보, 병해충 관리 등을 연구하는 '뒤영벌 스마트사육시설'을 방문했다. 뒤영벌은 화분매개 전용벌이다. 실내에서 공장식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특성이 있다. 시설 입구에서 끈적끈적한 발판을 밟고 난 후 실내화로 바꿔 신었다. '뒤영벌 교미실' 문 앞에 자리한 '뒤영벌 사육환경관계시스템'이라고 표기된 대형모니터가 눈에 들어왔다. 화면엔 △교미 전 준비실 △교미실 △산란실 △봉군형성실 △봉군숙성실의 온도와 습도·조도 등이 표시됐다. 이 중 가장 민감한 산란실의 경우 28.4도, 55.1%, 0lx를 24시간 365일 유지한다. 교미실 문을 열자 어두운 공간에 뒤영벌 보금자리 상자가 연구실 벽을 둘러싼 선반마다 놓여 있었다. 상자엔 날짜별로 늘어난 뒤영벌 숫자와 함께 인공수정, 봉군(벌무리) 형성 등 현재 상태를 표기한 메모가 붙어 있었다. 개체군 수를 파악해 외부 민간업체로 배송 가능한 일정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한상미 양봉생태과장은 "수벌과 여왕벌은 2주간 공중교미한 뒤 상자에 들어간다"며 "뒤영벌은 비닐하우스와 같은 좁은 공간에 대한 적응력이 꿀벌보다 뛰어나고 꿀벌의 화분매개가 어려운 토마토와 무밀작물에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농업과학원은 벌의 활동과 봉군 수명을 늘리기 위한 '스마트벌통'도 개발했다. 출입구에 IoT(사물인터넷) 센서를 달아 벌이 몇 마리 생존하는지 알 수 있다. 또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벌통 내부 먹이(대용화분, 당액), 온도, 이산화탄소 농도를 파악하고 원격관리할 수 있다. 벌을 잘 모르는 초보자도 벌통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과장은 "비닐하우스가 고온일 때는 센서와 연동된 환기팬을 가동해 벌통 내부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한다"며 "이를 통해 기존 벌통보다 벌의 활동은 2배 이상 늘고 벌의 생존기간도 65%가량 길어졌다"고 말했다. 스마트벌통은 현재 8개 지역에 200여개가 설치돼 운영 중이다. 연내 12개 지역에 300개를 더 설치할 예정이다.
농업과학원은 앞으로 국내 애그테크(농업기술) 기반 스타트업들과 함께 가내수공업 형태의 양봉을 '데이터 기반 디지털양봉 시스템'으로 탈바꿈시켜 산업화할 계획이다. 농업과학원 이상재 농업생물부장은 "최근 산림청, 기상청, 환경부 등 5개 부처와 함께 꿀벌문제 공동대응을 위한 MOU(업무협약)를 맺었다"며 "2023년부터 8년간 484억원의 예산이 투입해 꿀벌을 안정적으로 증식관리하는 시스템을 보급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기관 탐방은 농업 정책 및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인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이 주도로 이뤄졌고, 농업회사법인 한미종묘 김태경 대표,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이인복 교수, 목장이나 농장에 각종 ICT(정보통신기술) 융복합 서비스를 개발·제공하는 애그테크 스타트업 제네틱스 하현제 대표 등이 참여했다.
이주량 선임연구원은 "꿀벌의 화분매개 경제가치는 5조~6조원 이상"이라며 "농업분야 산학연관이 첨단 ICT(정보통신기술)를 양봉에 도입할 수 있도록 힘을 합치는 노력과 투자를 계속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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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류준영 차장 joon@mt.co.kr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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