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사내 기업가정신의 재발견

안준모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혁신정책연구센터장) 기사 입력 2023.07.1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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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칼럼]


우리가 접하는 새로운 용어들 중에 부연 설명 없이 그 자체로 이해가 가는 용어가 있다면 좋은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전문용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일본을 통해 들여온 경우가 많다보니 단어만 보고 그 뜻을 직관적으로 유추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내 기업가정신(corporate entrepreneurship)'이다. 기업가정신에도 이미 기업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그 앞에 '회사 내부'라는 말(사내)까지 붙었으니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게 무리도 아니다.

사실 '사내 기업가정신'은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사고를 통해 회사에 새로운 기회와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으로,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개발하거나 새로운 벤처기업에 투자함으로써 기업을 성장시키는 신사업 창출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그간 우리가 개인 단위의 창업을 강조하며 간과해 왔지만 개인의 창업만큼이나 기존 기업의 혁신적인 도전, 즉 사내 기업가정신도 창업생태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축이다. 지금의 10대 기업들도 한때는 창업기업이었으며 이들이 사업을 확장, 다변화하는 '한강의 기적'은 사내 기업가정신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새부터 이러한 사내 기업가정신은 정책의 영역에서 서서히 잊혀져가면서 개인의 창업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 단위의 창업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자리와 부가가치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개인 창업만을 강조하는 정책은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다.

나라마다 산업구조와 기업분포가 다르지만 다수의 대기업이나 탄탄한 중견기업,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강소기업을 보유한 나라는 많지 않다. 이러한 견실한 기업들을 가지지 못한 나라들이야 개인 단위의 창업만을 강조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한편으로 개인의 창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창업문화 저변을 바꾸고, 창업생태계에 새로 편입되는 창업기업을 늘려야 하겠지만, 동시에 견실한 기업들이 또 다른 성장을 일구고 창업생태계를 자극할 수 있도록 이들의 사내 기업가정신을 북돋을 필요가 있다.

가장 성공적인 창업생태계로 평가받는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통상 혁신적인 기업가의 창업과 이들의 성공스토리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미국의 창업생태계를 움직이는 동력의 절반이 사내 기업가정신에서 나오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 5년 사이 기존 기업이 사내 기업가정신 차원에서 새로운 혁신에 투자하는 기업주도 벤처캐피탈(corporate venture capital, CVC)이 전체 벤처캐피탈 투자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다. 구글벤처스, 인텔캐피탈 등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기존 사업을 다각화하는 전략을 통해 파괴적 혁신에 투자하거나, 지식재산권을 이전하는 등 다양한 기술전략을 통해 창업생태계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창업기업은 필요한 자금을 수혈 받고 전략적 제휴파트너를 구하거나 M&A(인수합병)를 통한 출구전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으며, 기존 기업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거나 연구개발 주기를 단축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위험으로 새로운 형태의 혁신을 꾀할 수 있는 것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다.

이 같은 창업생태계 차원의 이점 때문에 글로벌 CVC 시장이 급성장 중이다. 일본의 CVC 투자 규모는 5년 전 대비 거의 4배 성장했으며, 중국의 경우 2019년 전체 벤처캐피탈 투자 중 CVC가 차지하는 비중이 73%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CVC를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정 도구로 보는 등 부정적 인식이 주를 이뤘지만, 이제 창업생태계가 글로벌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반쪽짜리 창업생태계는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다. CVC 활성화 등 사내 기업가정신을 활성화 할 수 있는 정책적·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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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사진 안준모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혁신정책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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