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암호기술 업계의 '암(Arm)'이 될 거라고 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전세계 스마트폰 AP의 95%가 사용하는 설계자산(IP), 모바일 반도체 설계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기업, 이를 통해 로열티 수익만 연 15억달러(2조원)를 거두는 영국의 반도체 IP(지적재산권) 기업 Arm에 비유된 국내 스타트업이 있다. 암호기술 스타트업 크립토랩의 이야기다.

크립토랩은 다소 생소한 '동형암호(同形暗號·HE)'와 관련된 원천기술을 개발·보유한 스타트업이다. '암호학의 대가'로 불리는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천정희 교수가 설립했다. 서울대 산업수학센터의 1호 인큐베이팅 스타트업이기도 하다. 2017년 설립된 크립토랩은 지난5일 스톤브릿지벤처스, 알토스벤처스, 키움인베스트먼트에서 210억원의 시리즈A투자를 유치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암호화 상태에서 연산하는 '동형암호'…안전성·효용성↑

동형암호는 데이터를 암호화한 상태에서도 연산·분석할 수 있는 암호 기술이다. 기존 암호기술로 저장된 데이터를 연산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석(복호화)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 없이도 데이터를 곧바로 연산·분석할 수 있도록 한 기술이다. 1970년대 학계에서 제안돼 2009년 스탠포드 대학교와 IBM 출신 과학자 크레이그 젠트리에 의해 완성됐다. 현재 사용되는 3세대 암호기술보다 한 단계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4세대 암호기술로 불린다.

업계는 4세대 암호기술의 안전성과 효용성이 상당하다고 평가한다. 가장 큰 특징은 안전성이다. 데이터를 복호화하는 과정이 아예 없기 때문에 유출위험이 없고, 유출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식별이 불가능하다. 해커들이 데이터를 빼낸다 해도 무슨 의미의 데이터인지 알아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사용 효율성도 높다. 딥러닝 등 인공지능(AI)들은 데이터들을 끊임없이 연산해야 하는 데 이 과정마다 서버에서 데이터를 내려받아 복호화하고, 연산하고, 다시 암호화해 저장하는 절차들을 생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이전 암호기술에 비해 전력·시간 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동형암호의 유일한 단점은 처리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다. 크립토랩은 이를 수학적 방식으로 해결했다. 기존 동형암호와 달리 '실수'를 사용하는 알고리즘 방식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동형암호 솔루션 SEAL보다 처리속도가 90배 빠르다는 평가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지난해 11월 혁신기술보고서에서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7개사 중 크립토랩을 동형암호 기술 부문 샘플 벤더(표본 판매기업)로 선정했다.
데이터 보안 중요해지며 시장 열렸다…표준기술 확보한 크립토랩

기술력만큼 시장성도 있을까. 투자자들은 크립토랩의 솔루션(혜안)의 성장잠재력이 상당하다는 데 베팅했다. 시드투자에 이어 시리즈A투자를 진행한 스톤브릿지벤처스의 최동열 파트너는 "동형암호와 관련된 기술은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보유하고 있는 곳이 몇 곳 된다"며 "그러나 동형암호 연산에서 데이터 속도를 유지시키는 기술은 크립토랩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형암호 기술에서 크립토랩의 혜안이 글로벌 업계표준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IBM이든 MS든 궁극적으로 동형암호 기술을 사용해 데이터를 암호화하기 위해서는 크립토랩의 혜안 기술을 빌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 파트너는 "구조적으로 크립토랩은 반도체 설계IP로 로열티·라이선스 수익을 내는 Arm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크립토랩은 지난2월 IBM과 기술 라이선싱 계약을 체결했다.

특히 데이터 보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크립토랩의 성장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최 파트너는 "동형암호 기술은 일부 수학자들에게만 알려져있었고, 크립토랩의 동형암호 원천특허도 5년 전 출원됐던 것"이라며 "그러나 유럽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 미국 캘리포니아의 개인정보보호법(CCPA) 등으로 동형암호의 수요도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17년 설립된 크립토랩이 최근 갑자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배경이다.

알토스벤처스도 성장성이 크다고 봤다. 알토스벤처스 관계자는 "암호기술에서 글로벌 표준 경쟁이 시작됐다"며 "크립토랩은 성장성을 보고 김한준 대표가 직접 투자한 곳"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크립토랩은 구성원들이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히면서 기술을 소프트웨어로 실현해나가는 창업자의 면모도 가진 곳"이라며 "글로벌 표준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팀"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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