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해외 벤처캐피탈이 일본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그래픽=이지혜'벤처무덤'으로 불리던 일본 벤처투자시장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해외 벤처캐피탈(VC)들이 일본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어서다. 미중 무역갈등 영향으로 중국 투자자금 일부가 일본 벤처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벤처투자업계에서는 우리 정부가 국내 벤처생태계의 글로벌화를 위해 해외 VC 유인책을 적극 내놓아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스타트업 정보사이트 스피다가 발간한 '재팬 스타트업 파이낸스'(Japan Startup Finance)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VC가 일본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은 608억엔(약 5838억원)으로 전년보다 약 50%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10억엔 이상 대규모 투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일본 스타트업이 10억엔(약 96억원) 이상 조달한 해외 VC 투자액은 전년보다 31.5% 증가한 409억엔(약 3950억원)에 달했다.
구글 출신 AI(인공지능) 연구원이 설립한 '사카나AI'는 코슬라벤처스, 럭스캐피탈 등 글로벌 탑티어 VC들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인사·노무 솔루션 업체인 '스마트HR'이 미국 사모펀드 KKR 등에서 약 100억엔, 경영관리시스템 업체인 '로그래스'가 미국 세쿼이아헤리티지에서 70억엔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한경욱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벤처파트너는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 벤처시장에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며 "VC를 비롯해 해외 사모펀드(PE) 투자자들도 거의 매주 일본 증권사에 투자처를 물어볼 정도"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해외 VC 유치 등 정책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7년까지 투자규모를 10조엔으로 늘려 스타트업 10만개를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스타트업 컨퍼런스 '스시테크'를 개최하는 등 해외 투자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테크스타(Techstar), 알케미스트(Alchemists) 등 미국 실리콘밸리 액셀러레이터들이 일본 지사를 설립했다. 산업혁신투자기구(JIC)는 운용규모(AUM) 250억달러(약 36조원)인 글로벌 탑티어 VC 뉴엔터프라이즈어소시에이트(NEA)에 출자하는 등 해외 VC의 일본 투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스피다는 보고서를 통해 "일본 정부는 오는 4월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개최 등 해외 투자유치 강화를 위한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라며 "정부 지원 강화에 힘입어 확실한 기술력을 가진 딥테크 스타트업에게는 대규모 자금조달 기회는 열려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아시아 창업 허브 자리를 일본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국내 벤처투자에서 글로벌 VC의 투자비중은 2023년 기준 2.1%에 그쳤다. 현재 국내에 진출한 해외 VC들은 국내에서 펀드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 역외펀드로 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외국계 VC 고위 임원은 "이중과세, 외환신고절차 등이 복잡하고 벤처투자법의 요건도 까다로워 해외 VC가 국내 펀드를 조성하기 쉽지 않다"며 "해외 VC를 대상으로 국내 투자를 주목적으로 하는 펀드 출자 규모를 늘리고 팁스(TIPS) 프로그램 등 현재 잘 운영되고 있는 정부 주도의 창업 지원프로그램을 활용해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