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벤처부터 모태펀드 구원등판까지 '엎치락뒤치락 韓 벤처투자史'
'국산화'. 1980년대 패스트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 선봉에 섰던 초기 벤처기업들에 주어진 암묵적 미션이었다. 수입 제품을 국내 기술력으로 제조하는 기업에 투자해 유망기업을 만들어 내는 목표가 생긴 것도, 국내 VC(벤처캐피털) 시장의 태동도 이때부터다.
국내 '1호 VC'인 한국기술진흥㈜(1974년 설립, 現 아주IB투자)을 비롯해 한국기술개발(1981년), 한국개발투자(1982년), 한국기술금융(1984년)이 이때 첫 걸음을 뗐다.
당시에 중소기업창업지원법(1986년)이 제정되면서 중소기업 창업·육성을 전담하는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가 설립됐다. 또 '신기술 사업 금융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 신기술금융회사 인가 조항 등이 생겨났다.
1990년대는 1세대 민간 VC가 속속 등장했다. 농업정책보험금융원 정성봉 투자운용본부장은 "정부의 중소 벤처기업 지원 정책이 가시화되면서 벤처창업 환경이 유리해진 것이 민간의 관심을 유도했다"고 말했다.
1995년부터는 코스닥 설립 논의가 본격화됐고, 이듬해 코스닥 시장이 출범했다. 1세대 벤처기업 성공신화로 꼽히는 한글과 컴퓨터, 휴맥스, 안랩, 주성엔지니어링, 엔씨소프트 등의 등장과 더불어 일신창업투자, 아남창업투자, 신진창업투자, 신풍창업투자, 두산창업투자 등의 민간 VC들도 시장 이목을 끌었다. 신규 창업투자회사는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수가 증가하며 산업의 형성이 시작됐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였다. 벤처가 사회적으로 가장 관심을 크게 받았던 해는 1997년 외환위기(IMF) 때였다. 대기업들의 연쇄 도산으로 경제가 급속히 침체되자 정부는 회복의 돌파구로 벤처를 지목했다. 벤처기업을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 산업을 육성하고 경제를 회복하겠다는 복안이었다.
한국벤처캐피털협회는 이 시기에 전문 벤처캐피털리스트를 양성하는 전문 교육을 만들며 생태계를 확대할 기반을 닦았다. 산·학계와 학생들 사이에도 벤처창업 열풍이 불면서 서울대, 포스텍(옛 포항공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유수의 대학에서 창업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같은 기조에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1997년)이 탄생했고, 대우, LG, 현대와 같은 대기업들도 본격적으로 VC 시장에 참전했다. 하지만 계속될 것만 같던 벤처 호황은 예상보다 금새 사그라들었다.
1990년대 후반 투자 과열현상을 나타났고 VC시장에 대한 정부 참여도 위축됐다. 정부가 한발 뒤로 물러서자 이는 고스란히 민간시장의 충격으로 이어졌다. 펀드 조성이 힘들어지자 일부 VC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면서 시장이 혼탁해지자 기관투자자들도 떠나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졌다.
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2000년 벤처투자 규모는 약 2조원, 1910개 기업에서 2004년 6044억, 544기업으로 투자금 기준 약 70%가 급감하는 등 시장 위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 '모태펀드'가 구원등판했다. 수익성은 낮지만 뛰어나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투자의 순기능'을 작동시키는 미션을 부여받았다.
정부를 주축으로 하되 민간의 참여를 최대한 이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모티브로 한 모태펀드는 벤처투자를 견인하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 2005년에 도입된 기술특례상장제도는 수익성이 다소 떨어져도 기술력이 뛰어난 기업들의 숨통을 트여줬다. 정책펀드인 '한국모태펀드'도 이때 등장했다.
정성봉 본부장은 "1990년대 말에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펼치는 지원의 방식이었다면, 한국모태펀드는 정부가 시작하되 민간 스스로 벤처생태계를 구성하고 성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정부는 앵커 출자자로서 시장에 벤처자금을 유입시키고 유망한 VC를 선정해 자율적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커갈 수 있도록 유인했다"고 설명했다. 운용 기간은 30년(2005년~2035년)으로 한국모태펀드의 투자관리전문기관은 한국벤처투자로 지정됐으며, 정책펀드로서는 가장 큰 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노력 끝에 2000년부터 시작된 '벤처버블' 붕괴위기를 딛고 2009년부터 다시 벤처투자 바람이 일어난다. 금융사들은 사업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벤처펀드에 주요 출자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또 2009년 출범한 한국정책금융공사, 민간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으로 2013년 도입된 팁스(TIPS), 2013년 초기기업에 특화돼 개설된 코넥스 개설 등 다양한 정책과 변화들이 이뤄졌다. 이 시기에 등장한 대표적인 벤처기업이 카카오와 배달의 민족 등이다.
2015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벤처생태계 호황기를 맞이 했다. 대규모 정책자금이 꾸준히 출자되면서 벤처펀드 육성에 원동력을 제공했고, 4차 산업혁명, ICT(정보통신기술), AI(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헬스케어 등 신산업 분야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아졌고 성장 속도도 빨라졌다.
아울러 연도별 회수금액 또한 꾸준히 증가해 회수금이 다시 재출자되는 선순환 투자생태계가 자리 잡았다. 세컨더리펀드, LP지분 유동화펀드 등 다양한 형태의 펀드들 또한 확대됐다.
이때 시장을 주도한 주요 VC는 한국투자파트너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프리미어파트너스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엔젤투자자 요건이 완화되고 유한회사형(LLC) VC 설립 진입장벽도 낮아졌다.
정 본부장은 "이 같은 성장과 붐은 이제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시장에 명확히 자리 잡고 있으며 순기능을 하고 있다"면서 "자리잡은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육성하고 아쉬운 부분을 보완해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규제 효율화를 비롯한 중간 회수시장 활성화, 정보 불균형 해소 등의 과제 등을 우선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해외에서는 VC와 PE(사모펀드)사의 별도의 경계가 없으며 따로 구분하지 않는데 국내의 경우 도입부터 자리 잡는 과정까지의 흐름에 있어서 별도의 법과 규제하에 구분하고 있다"며 "벤처캐피털의 대형화와 도약을 위해서는 이러한 구분보다는 두 가지 모두를 품고 대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정부 출자금 규모 증가는 벤처캐피털의 관심도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지며, 나아가 민간자금의 유인 효과로도 이어져 펀드 결성금액의 증대를 일으킨다"며 "농식품모태펀드를 비롯한 정부 주도형 모태펀드가 산업을 활성화하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꾸준한 재정적 지원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벤처투자를 통해 육성된 국내 유니콘, 예비 유니콘 기업들은 신사업 영역을 주도하며 일자리 창출을 통해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올해 2월, 중소벤처기업부가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보험가입 현황을 토대로 조사한 벤처·스타트업 고용 동향에 따르면, 유니콘 기업 15개사의 고용 증가율은 49.2%에 달했다.
2021년 말 고용정보가 유효한 벤처기업(유효기업 3만 5855개사)과 벤처투자를 받은 기업(유효기업 2002개사) 중 중복기업 1648개사를 제외한 벤처·스타트업 3만 6209개사의 고용은 76만4912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0년 말 69만8897명 대비 6만6015명 증가한 수치로, 고용정보 제공 미동의 기업 등 고용 현황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기업까지 포함하면 벤처·스타트업이 늘린 고용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사는 농업정책보험금융원 정성봉 투자운용본부장이 지난 8월 발표한 농식품펀드관련 1호 논문 '한국 벤처캐피털의 농식품 기업투자에 농식품모태펀드가 미치는 영향'을 참고했습니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국내 '1호 VC'인 한국기술진흥㈜(1974년 설립, 現 아주IB투자)을 비롯해 한국기술개발(1981년), 한국개발투자(1982년), 한국기술금융(1984년)이 이때 첫 걸음을 뗐다.
당시에 중소기업창업지원법(1986년)이 제정되면서 중소기업 창업·육성을 전담하는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가 설립됐다. 또 '신기술 사업 금융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 신기술금융회사 인가 조항 등이 생겨났다.
1990년대는 1세대 민간 VC가 속속 등장했다. 농업정책보험금융원 정성봉 투자운용본부장은 "정부의 중소 벤처기업 지원 정책이 가시화되면서 벤처창업 환경이 유리해진 것이 민간의 관심을 유도했다"고 말했다.
1995년부터는 코스닥 설립 논의가 본격화됐고, 이듬해 코스닥 시장이 출범했다. 1세대 벤처기업 성공신화로 꼽히는 한글과 컴퓨터, 휴맥스, 안랩, 주성엔지니어링, 엔씨소프트 등의 등장과 더불어 일신창업투자, 아남창업투자, 신진창업투자, 신풍창업투자, 두산창업투자 등의 민간 VC들도 시장 이목을 끌었다. 신규 창업투자회사는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수가 증가하며 산업의 형성이 시작됐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였다. 벤처가 사회적으로 가장 관심을 크게 받았던 해는 1997년 외환위기(IMF) 때였다. 대기업들의 연쇄 도산으로 경제가 급속히 침체되자 정부는 회복의 돌파구로 벤처를 지목했다. 벤처기업을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 산업을 육성하고 경제를 회복하겠다는 복안이었다.
한국벤처캐피털협회는 이 시기에 전문 벤처캐피털리스트를 양성하는 전문 교육을 만들며 생태계를 확대할 기반을 닦았다. 산·학계와 학생들 사이에도 벤처창업 열풍이 불면서 서울대, 포스텍(옛 포항공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유수의 대학에서 창업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같은 기조에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1997년)이 탄생했고, 대우, LG, 현대와 같은 대기업들도 본격적으로 VC 시장에 참전했다. 하지만 계속될 것만 같던 벤처 호황은 예상보다 금새 사그라들었다.
1990년대 후반 투자 과열현상을 나타났고 VC시장에 대한 정부 참여도 위축됐다. 정부가 한발 뒤로 물러서자 이는 고스란히 민간시장의 충격으로 이어졌다. 펀드 조성이 힘들어지자 일부 VC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면서 시장이 혼탁해지자 기관투자자들도 떠나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졌다.
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2000년 벤처투자 규모는 약 2조원, 1910개 기업에서 2004년 6044억, 544기업으로 투자금 기준 약 70%가 급감하는 등 시장 위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 '모태펀드'가 구원등판했다. 수익성은 낮지만 뛰어나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투자의 순기능'을 작동시키는 미션을 부여받았다.
정부를 주축으로 하되 민간의 참여를 최대한 이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모티브로 한 모태펀드는 벤처투자를 견인하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 2005년에 도입된 기술특례상장제도는 수익성이 다소 떨어져도 기술력이 뛰어난 기업들의 숨통을 트여줬다. 정책펀드인 '한국모태펀드'도 이때 등장했다.
정성봉 본부장은 "1990년대 말에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펼치는 지원의 방식이었다면, 한국모태펀드는 정부가 시작하되 민간 스스로 벤처생태계를 구성하고 성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정부는 앵커 출자자로서 시장에 벤처자금을 유입시키고 유망한 VC를 선정해 자율적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커갈 수 있도록 유인했다"고 설명했다. 운용 기간은 30년(2005년~2035년)으로 한국모태펀드의 투자관리전문기관은 한국벤처투자로 지정됐으며, 정책펀드로서는 가장 큰 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노력 끝에 2000년부터 시작된 '벤처버블' 붕괴위기를 딛고 2009년부터 다시 벤처투자 바람이 일어난다. 금융사들은 사업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벤처펀드에 주요 출자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또 2009년 출범한 한국정책금융공사, 민간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으로 2013년 도입된 팁스(TIPS), 2013년 초기기업에 특화돼 개설된 코넥스 개설 등 다양한 정책과 변화들이 이뤄졌다. 이 시기에 등장한 대표적인 벤처기업이 카카오와 배달의 민족 등이다.
2015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벤처생태계 호황기를 맞이 했다. 대규모 정책자금이 꾸준히 출자되면서 벤처펀드 육성에 원동력을 제공했고, 4차 산업혁명, ICT(정보통신기술), AI(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헬스케어 등 신산업 분야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아졌고 성장 속도도 빨라졌다.
아울러 연도별 회수금액 또한 꾸준히 증가해 회수금이 다시 재출자되는 선순환 투자생태계가 자리 잡았다. 세컨더리펀드, LP지분 유동화펀드 등 다양한 형태의 펀드들 또한 확대됐다.
이때 시장을 주도한 주요 VC는 한국투자파트너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프리미어파트너스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엔젤투자자 요건이 완화되고 유한회사형(LLC) VC 설립 진입장벽도 낮아졌다.
정 본부장은 "이 같은 성장과 붐은 이제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시장에 명확히 자리 잡고 있으며 순기능을 하고 있다"면서 "자리잡은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육성하고 아쉬운 부분을 보완해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규제 효율화를 비롯한 중간 회수시장 활성화, 정보 불균형 해소 등의 과제 등을 우선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해외에서는 VC와 PE(사모펀드)사의 별도의 경계가 없으며 따로 구분하지 않는데 국내의 경우 도입부터 자리 잡는 과정까지의 흐름에 있어서 별도의 법과 규제하에 구분하고 있다"며 "벤처캐피털의 대형화와 도약을 위해서는 이러한 구분보다는 두 가지 모두를 품고 대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정부 출자금 규모 증가는 벤처캐피털의 관심도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지며, 나아가 민간자금의 유인 효과로도 이어져 펀드 결성금액의 증대를 일으킨다"며 "농식품모태펀드를 비롯한 정부 주도형 모태펀드가 산업을 활성화하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꾸준한 재정적 지원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벤처투자를 통해 육성된 국내 유니콘, 예비 유니콘 기업들은 신사업 영역을 주도하며 일자리 창출을 통해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올해 2월, 중소벤처기업부가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보험가입 현황을 토대로 조사한 벤처·스타트업 고용 동향에 따르면, 유니콘 기업 15개사의 고용 증가율은 49.2%에 달했다.
2021년 말 고용정보가 유효한 벤처기업(유효기업 3만 5855개사)과 벤처투자를 받은 기업(유효기업 2002개사) 중 중복기업 1648개사를 제외한 벤처·스타트업 3만 6209개사의 고용은 76만4912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0년 말 69만8897명 대비 6만6015명 증가한 수치로, 고용정보 제공 미동의 기업 등 고용 현황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기업까지 포함하면 벤처·스타트업이 늘린 고용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사는 농업정책보험금융원 정성봉 투자운용본부장이 지난 8월 발표한 농식품펀드관련 1호 논문 '한국 벤처캐피털의 농식품 기업투자에 농식품모태펀드가 미치는 영향'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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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류준영 차장 joon@mt.co.kr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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