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자만하면 위험하다' 과기 종주국 미국의 반성

류준영 기자 기사 입력 2025.01.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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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 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모험정신과 첨단기술로 뭉쳐진 벤처기업의 산실로 불리는 미국 실리콘밸리, 반도체 원료인 실리콘(Si)을 기반으로 한 칩 제조 회사들이 이 지역에 많이 모여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1947년 최초의 트랜지스터 개념을 제시한 윌리엄 쇼클리가 벨랩이란 회사를 뛰쳐나와 스탠퍼드 인근에 '쇼클리반도체연구소'를 설립하고 반도체 연구인력을 모았다. 이때 고든 무어(인텔 공동창업자) 등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장차 페어차일드반도체를 거쳐 인텔 등 굴지의 반도체 기업을 탄생시키며 실리콘밸리 신화를 일궈냈다. 이후 미국에선 바이오텍 산업의 탄생을 이끈 유전자재조합(rDNA) 기술, 인터넷 등 산업 판도를 바꾸는 원천기술 개발이 이어졌다.

이런 미국이 흔들리고 있다. '자만하면 위험하다', 미국 싱크탱크로 꼽히는 과학기술한림원과 라이스대학 베이커연구원이 2020년 공동 출간한 보고서 제목이다. 중국과 미국의 과학기술 관련 주요 지표들을 비교한 이 보고서의 내용을 압축하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고 있다'는 통렬한 반성이 담겼다. 보고서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가 1990년 이후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그 이유로 꼽았다.

미국은 1990년대 초반까지 안정적인 기초연구 지원을 통해 최상위 과학기술 종주국 지위를 누렸다. 그러다 1990년 12월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면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사라진다. 이때부터 R&D(연구·개발) 투자가 들쑥날쑥 방향성 없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닷컴버블, 리먼사태 등 국가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미국 정부는 우선적으로 기초연구 관련 예산부터 줄였다. 이로 인해 고급 인재양성은 어려워졌고, 그 여파가 주요 과학기술 지표에서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국에 따라잡혔거나 조만간 추월당할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술 시장을 토대로 성장해온 우리나라도 처한 상황이 비슷하다. 얼마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폐막한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5'는 우리 기업들에게 어쩌면 도태될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줬다. 이번 전시회에 참여한 중국기업은 전년보다 20% 늘어난 1339개로 역대 최대이자 미국(1509곳)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우리나라(1031곳) 보다 30% 많다. 무엇보다 중국 기업들의 약진은 참가기업 수뿐만 아니라 기술력 측면에서 더 도드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율주행차, 배달로봇 등 일부 미래 기술 분야에선 이미 한국이 뒤처졌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생성형 AI 기술이 타 산업들과 접목되어 가는 흐름에 중국 기업들이 재빠르게 올라타면서 중국은 이제 전통·미래산업 가릴 것 없이 한국을 맹추격하거나 추월하고 있다.

반도체·자동차 등 'K-테크붐'에 우리가 너무 도취돼 있었던 건 아닐까. 그 사이 중국은 저만치 앞서 갔다. '자만하면 위험하다'고 경고한 미국 보고서 내용이 우리의 상황과도 딱 들어맞는다. 보고서가 제시한 대안은 하나였다. 공격적 투자로 고급 인재를 육성해 재도약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다. 기초연구 기반을 다시 다져 중국의 독주를 견제할 탄탄한 기술 진입장벽을 굳건히 세워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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