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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어쩌면 사과 받고 싶었는지도 몰라"

김태현 기자 기사 입력 2024.09.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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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이른 무더위가 한창이던 6월초 서울 모처에서 식사 구독서비스 스타트업 A사의 주주총회가 열렸다. 벤처캐피탈(VC)과 엔젤투자자 등 주요 주주를 대상으로 진행된 주총에서 A사 대표는 추가 자금투입을 요청했다. 현재 자금만으로는 악화된 실적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주주들은 난색을 표했다. 100억원이 넘는 시리즈A 투자가 완료된 2022년 3월 이후에도 추가 투자금을 납입했다. 그럼에도 실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주주들은 구조조정과 피봇(Pivot, 사업모델 전환) 등 대표의 결단을 요구했다. 그리고 주총 이틀 뒤 A사 대표로부터 받은 답은 파산이었다.

경영이 어려워진 스타트업의 파산은 흔한 일이다. 상법상 이사회 결의만 거치면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소통이다. A사는 주총이 열리기 며칠 전 이미 이사회에서 파산을 결의했다. 그러나 주총에서 파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회생 방안을 얘기하며 추가 투자금 납입만을 요구했다.

주총 이후 주주들에게 서면으로 파산을 통보한 이후에도 연락은 닿지 않았다. 법원에서 최종 파산 선고가 내려진 7월 이후에는 법원이 지정한 파산관재인과만 소통이 가능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 피해도 발생했다. A사는 서비스를 중단한 6월 초까지 구독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프로모션에 참여한 소비자 중 일부는 결제금액을 변제 받지 못했다. 최근 파산을 진행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투자계약서상 중대한 결정은 주총을 거치게 돼 있었을 것"이라며 "우리 역시 의무는 아니지만 주총을 거쳐 파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사과를 받고 싶었는지도 몰라"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굿파트너'의 주인공 차은경(장나라 분)의 대사다.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인 차은경은 이렇게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밝혔다. 이후 원활하게 이혼을 마무리하며 엄마로서 성장해 나간다.

스타트업과 VC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장밋빛 미래만 꿈꾸던 벤처투자 호황기를 지나 혹한기가 오면 이별을 고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중요한 건 솔직함이다.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은 경영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투자자와 함께 그 안에서 최선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A사에게 필요했던 건 일방적인 파산 신고가 아니라 '이혼'을 위한 솔직함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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