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칼럼]
발트해 끝자락에 위치한 에스토니아는 인구 130만명의 소국이다. 중세 도시가 잘 보존된 수도 탈린은 전 세계 관광객을 불러 모아 왔으며, 최근에는 방송과 여행 유튜버들에 의해 우리나라에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에스토니아가 한자동맹의 중심지이자 잘 보존된 중세시대 건축물, 활기 넘치는 예술로 유명하지만 '디지털창업 허브'로도 주목받고 있다. 요즘 에스토니아는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통하기 때문이다. 과거 인터넷 영상통화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스카이프(Skype)', 실시간 환율 기반 해외송금 플랫폼인 '와이즈' 같은 스타트업의 본거지이며, 유렵연합 내 ICT (정보통신기술)강국으로 디지털 혁신을 이끌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유럽 내 최고 수준의 인구 대비 창업수를 자랑하고 있는데, 이는 그간 꾸준히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해 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일례가 디지털 혁신생태계 구축을 위한 디지털 행정서비스와 데이터 인프라 구축이다. 에스토니아는 2007년 세계 최초로 전자투표를 도입하는 등 ICT 기반 구축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최근에는 e-레지던시라는 온라인시스템을 통해 한국에서도 3시간이면 에스토니아 법인을 창업할 수 있다고 한다.
에스토니아는 자국 국민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에게 국경 없는 디지털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투표는 물론, 원격진료와 연말정산, 세금납부와 각종 행정업무가 온라인으로 몇 분 안에 해결된다. 이러한 디지털시스템으로 연간 GDP(국내총생산)의 2%가 절약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디지털 서비스가 적용되고 있다.
적은 인구와 영토, 지정학적인 위치의 불리함을 ICT와 데이터로 극복한 에스토니아 사례는 디지털 전환시대에 우리나라 정부와 공공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주요 디지털 전환 정책은 블록체인 기반의 전자주민증과 전자영주권 제도, 빅데이터 공유화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러한 노력들이 디지털 창업기업의 원동력이 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에스토니아는 2002년부터 100만 명의 각종 유전, 질환·질병, 생활 습관 등을 수집해 데이터화하는 '에스토니아 바이오뱅크' 사업을 추진 중이며, 이미 인구의 5분의 1에 달하는 20만여명 분의 데이터를 수집 완료했다고 한다. 이러한 생체데이터는 앞으로 에스토니아가 미래먹거리로 생체정보학(bioinformatics) 기반의 신약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다.
노동력에 기반한 아날로그 창업과 달리 디지털 창업의 핵심자원은 데이터다. 물론 민간기업도 데이터를 자체적으로 수집하고 가공할 수 있지만, 개인정보보호, 제한된 권한 등의 이슈로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더욱이 자원이 부족한 스타트업의 경우 자체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디지털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공공기관 같은 공공영역에서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해서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전자정부 선진국인 우리나라도 공공데이터 수집과 개방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지하여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공공데이터 개방을 추진해 왔다. 현 정부도 데이터 기반의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축을 지향하며, 구비서류 제로화, 각종 정부서비스 홈페이지 통합, 싱글 아이디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의 디지털 창업허브로 발돋움한 에스토니아처럼 정부와 공공의 노력들이 디지털 창업생태계 구축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부처의 이해관계에 종속되지 않는 데이터의 공유와 가공, 개방이 필요하며, 데이터 규제 못지않게 데이터 활용과 데이터 관련 산업의 진흥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부처 간의 영역다툼으로 반토막짜리 데이터 공유에 그친다면, 데이터 기반의 창업은 탄력을 받기 힘들다. 데이터 산업의 진흥과 규제를 동시에 추구해야한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외국의 규제를 그대로 답습해 디지털 창업기업을 지나치게 옥죄거나 허울뿐인 규제 샌드박스에 그쳐서는 안 된다. ICT와 전자정부 강국인 우리나라는 디지털 창업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이제 구슬을 잘 꿰어 보배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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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안준모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혁신정책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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