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면활성제 없이 물·기름 섞었다…P&G·일본화약이 찍은 토종기업

고석용 기자 기사 입력 2024.02.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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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UP스토리]황보민성 퍼스트랩 대표

황보민성 퍼스트랩 대표 /사진=고석용 기자
황보민성 퍼스트랩 대표 /사진=고석용 기자
"잘 섞이지 않는 물질을 섞을 때 보통 계면활성제를 사용하죠. 그런데 계면활성제는 인체나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퍼스트랩은 초음파로 계면활성제 없이 물질을 섞는 장비를 개발하고 있죠. 국내 뿐 아니라 해외기업들에서도 먼저 러브콜이 오고 있어요."

황보민성 퍼스트랩 대표는 자사가 개발 중인 유화·분산장비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유화는 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지 않는 물질을 섞는 기술, 분산은 액체에 고체 입자를 고르게 분포시키는 기술을 말한다. 화장품, 의약품, 페인트, 2차전지 등 소비재 뿐 아니라 생산재 제조에 필수로 활용되는 뿌리기술이다.

통상 유화·분산 장비들은 효율성을 위해 계면활성제 같은 유화제를 활용한다. 계면활성제로 물질의 입자 표면장력을 감소시켜 응집을 막는 방식이다. 문제는 계면활성제의 안전성이다. 학계에서도 안전성에 대해선 이견이 있지만 건강이나 환경 이슈가 부각되면서 계면활성제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황보 대표는 "퍼스트랩은 계면활성제를 쓰지 않고도 물질을 유화·분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음파를 발생시키는 압전세라믹을 원통형으로 만들어 초음파를 한 군데로 모으는(집속·集束) 기술을 통해서다. 황보 대표는 "기존의 고압 유화·분산 장비들과 달리 계면활성제를 쓰지 않을 뿐 아니라 대안으로 떠오르는 다른 초음파 장비들보다도 더 정밀하고 균일하게 유화·분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표준연 '초음파 집속 기술' 이전…유화·분산부터 수처리까지 사업화


가로축은 입자의 크기, 세로축은 균일도를 나타낸다. 퍼스트랩에 따르면, 초음파 집속 유화·분산 방식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고압 유화나 고속 교반 방식보다 물질을 더 작은 단위로 섞고, 균일하게 섞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제공=퍼스트랩
가로축은 입자의 크기, 세로축은 균일도를 나타낸다. 퍼스트랩에 따르면, 초음파 집속 유화·분산 방식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고압 유화나 고속 교반 방식보다 물질을 더 작은 단위로 섞고, 균일하게 섞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제공=퍼스트랩
퍼스트랩이 이같은 장비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원천기술인 '초음파 집속 기술'을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에서 이전받은 연구소기업이기 때문이다. 황보 대표는 "초음파 집속은 2008년부터 표준연이 개발해온 기술"이라며 "표준연, 동일기연 (10,560원 ▼80 -0.75%) 등 코스닥 기업과 협력해 이전받은 기술을 장비로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산업용 대형장비는 개발 중이지만 화장품·의약품 제조업체들은 이미 퍼스트랩에 주목하고 있다. 연구용 소형장비가 완성되자 국내 화장품 대기업 뿐 아니라 미국의 P&G, 네덜란드의 스탈, 일본의 레조낙, 일본화약 등 글로벌 기업들이 PoC를 요청했다. 황보 대표는 "기업들이 먼저 PoC를 요청해오고 있는데 그만큼 제조 과정에서 계면활성제를 대체하면서 성능을 높이려는 수요가 많은 것"이라고 했다.

퍼스트랩은 유화·분산 장비와 동시에 '수처리 장비'도 개발 중이다. 마찬가지로 초음파 집속 기술을 활용하는 장비로, 반도체 등 제조 공정에서 사용하는 독성물질인 과불화화합물(PFAS)을 처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과불화화합물은 미량이라도 인체에 잔류하면 독성이 강한데다 자연분해도 되지 않아 '좀비 화합물'이란 별명까지 붙은 물질이다. 유럽은 2026년부터 전면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황보 대표는 "과불화화합물이 자연분해되지 않는 이유는 탄소와 불소의 결합이 분해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초음파 집속으로 결합부분을 떼어내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퍼스트랩은 지난해 11월 이 기술로 SK에코플랜트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에 선정돼 공동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7년만에 다시 산업계 나온 원천기술…빠른 상용화로 이번엔 성공"


황보민성 퍼스트랩 대표 /사진=고석용 기자
황보민성 퍼스트랩 대표 /사진=고석용 기자
사실 표준연의 초음파 집속 기술은 2015년에도 사업화 시도가 있었다. 황보 대표는 표준연 출신은 아니지만 당시 실무진으로 참여했었다. 그러나 당시 창업은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실패로 끝났다.

황보 대표는 2022년 사업모델도 재정립하고 장비 제조 파트너인 동일기연과 협력해 다시 창업에 도전했다. 황보 대표가 표준연 출신은 아니지만, 표준연은 탄탄한 사업화 계획 등을 믿고 기술이전을 결정했다.

황보 대표는 표준연의 기대대로 빠른 상용화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단 올해는 유화·분산 관련 대형장비 생산을 본격화하고 일본 시장 등을 집중 공략하기로 했다. 수처리장비 시장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공략할 예정이다. 이같은 계획을 위해 최근에는 일본의 CVC(기업형 벤처캐피탈)과 프리시리즈A 투자유치 논의도 시작했다.

황보 대표는 "2015년 실패는 기술의 문제가 아닌 사업화 과정에서의 문제였다"며 "이제 관련 시장의 수요도 더 커졌고 사업화나 경영에 대한 준비가 더 진행된 만큼 반드시 성공을 증명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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