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는 '혁신'을 위해 피·땀·눈물을 흘리는 창업가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꿈꾸는 혁신을 공유하고 응원하기 위해 머니투데이 유니콘팩토리가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와 [혁신기업답사기]를 연재합니다. IB(투자은행) 출신인 김홍일 대표는 창업 요람 디캠프 센터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벤처캐피탈리스트로 활동 중인 베테랑 투자전문가입니다. 스타트업씬에선 형토(형님 같은 멘토)로 통합니다. "우리 사회 진정한 리더는 도전하는 창업가"라고 강조하는 김 대표가 KAIST 교수인 이해신 폴리페놀팩토리 대표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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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페놀팩토리 회사개요/그래픽=이지혜 #와인의 향과 맛은 입에 오래 머문다. 이유 중 하나는 와인 속 '탄닌산'의 존재다. 이 물질은 천연 폴리페놀 구조여서 어디든 잘 달라붙는다. 이 접착성 때문에 와인이 입에 남아 고유의 풍미를 선사한다.
탄닌산은 와인뿐 아니라 여러 식물에 흔한 천연 폴리페놀의 일종이다. 바로 이 탄닌산이 모근(머리카락 뿌리)과 모공 사이 공간을 메우는 일종의 접착제가 된다. 이해신 카이스트(KAIST) 석좌교수는 이 원리에 착안, 2023년 폴리페놀팩토리를 세우고 탈모방지 샴푸 '그래비티'를 내놨다.
지난해 4월 등장한 그래비티는 첫 물량부터 완판되더니 홈쇼핑·대형마트 등을 합쳐 지난해 100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올 1월 CJ 올리브영에도 입점했다. 대전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폴리페놀이 또다른 성분을 두피에 전달하는 기능을 연구 중이었다. 그는 "단순히 탈모를 방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폴리페놀의 다양한 의약적 응용 가능성을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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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나의 아버지' 랭어 교수 영향…기술실용화 연쇄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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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폴리페놀팩토리이해신 대표는 카이스트 출신으로 미국에서 의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MIT(메사추세츠공대)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그는 폴리페놀의 효과 중 접착성과 코팅 기능에 주목했다. 물 속 바위, 선박 표면, 심지어 스티로폼에도 잘 달라붙는 홍합의 점성 성분이 폴리페놀 구조다. 폴리페놀은 몸 속 단백질과도 잘 결합한다.
그는 카이스트 부임 1년만인 2010년 지혈제 개발 스타트업 이노테라피(현 SCL사이언스(8,090원 ▲180 +2.28%))를 창업했다. 2014년 유전자 치료제로 글루진테라퓨틱스를 설립했다. 염색효과(발색)를 내는 샴푸 모다모다의 원천기술도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이후 탈모 방지 기능에 주목, 2023년 폴리페놀팩토리를 설립했다. 아이템은 달라도 모두 폴리페놀 연구에 바탕을 뒀다.
이처럼 이 대표는 강의보다 창업에 몰두한 것 같지만 연구성과도 상당하다. 그는 논문 실적으로 카이스트에서도 손꼽히는 상위권 교수다. 홍합의 점성 연구논문은 2007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으며 이 논문은 지금까지 1만회 이상 인용됐을 정도다. 폴리페놀 분야에선 세계적 권위자인 셈이다.
MIT 시절 그의 지도교수가 연쇄창업가로 손꼽히는 로버트 랭어 교수다. 랭어 교수는 각종 기술특허를 갖고 수십여개의 창업 아이디어를 키워 독립·분사시켰다. mRNA 백신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랭어 교수가 설립을 주도한 기업이 코로나19 백신을 만든 '모더나'다.
랭어 교수의 영향을 받은 이 대표에게도 창업은 '곁눈질'이 아니라 연구와 교수활동의 연장이다. 그중 하나인 '그래비티' 샴푸는 폴리페놀 특허성분으로 모공과 모근 사이를 연결하는 효과를 낸다. 그는 "모발을 자라게 한다기보다 탈모를 덜 일어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사용시 모발의 밀도가 증가하고 빠지는 머리카락이 줄어드는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탈모 예방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시장도 열려있는 분야다. 지난해 9월 그 잠재력을 알아본 효성그룹(효성화학(38,900원 ▼1,150 -2.87%))에서 전략적 투자를 받았다. 샴푸 외에도 다양한 폴리페놀 기반 제품을 개발중인 그는 "폴리페놀은 네일아트 등 미용 분야와 또다른 의료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다"며 "2026년쯤 또 한 번 SI(전략적 투자자)를 받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해신 카이스트 교수(오른쪽)의 연구실을 찾아간 구혜선씨/사진=구혜선 소셜미디어
한편 카이스트는 학생·교원 창업을 독려하는 분위기다. 이 대표는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배우 구혜선씨와 협업(컬래버레이션)을 추진하고 있다. 회사 측은 "구혜선씨가 특허를 지닌 헤어롤 발명품을 그래비티샴푸 굿즈로 상품화할 수 있을지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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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홍일 대표(Q)와 이해신 대표(A)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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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동안 어떤 회사를 창업했나.
A. 2009년 카이스트에 온 뒤 2010년 의료용 지혈제 기업 이노테라피를 세웠다. 2019년 상장하면서 엑싯했다. 두번째는 유전자치료제 글루진테라퓨틱스다. 모다모다에는 기술이전, 이른바 라이선스 아웃을 했다. 폴리페놀팩토리는 창업으로는 세번째다.
Q. 폴리페놀 연구가 홍합에서 시작됐다는 게 흥미롭다.
A. 처음 홍합을 연구한다고 할 때 사람들이 웃었다. 많은 사람들이 홍합의 붙는 기능을 재현하려다가 실패했다. 저는 2007년 관련 논문을 사이언스에 발표했고 그 때부터 그 원리를 갖고 여러 연구자들이 배터리 분리막, 양극재, 지혈제 개발에도 활용하고 있다.
Q. 연구로 상품을 만들고 창업까지, 주변 반응은 어땠나.
A. 처음엔 아직 조교수인데 창업한다고 걱정들을 많이 했던 것같다. 그런데 학자는 (본인이) 재밌는 걸 해야된다고 생각한다. 저는 이게 너무 재밌다. 폴리페놀 샴푸도 효과가 좋아서 '머리가 안 빠진다'는 리뷰가 많다.
Q. 효성그룹이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했다. 후속 투자유치 계획은.
A. 올 초 미국 CES에 참가해서도 여러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코스메틱 분야를 함께 키울 수 있는 SI가 좋을 거 같다. 2026년 SI를 받는 것을 검토 중이다.
Q. 창업 후 가장 힘든 점은.
A. 연구와 창업을 같이 하다보니 시간이 부족하다. 대전에 있으니 투자자 만남 등 서울로 회의를 갈 일도 많다. 기차에서도 계속 일하게 되더라.
Q. 자녀가 나중에 창업한다고 하면 동의할 건가.
A.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본인이 안 하겠다고 하면 좋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 양면이 있고 (창업은) 보람 있는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이 한다면 그걸 이길 수는 없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