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저감을 넘어 DAC로 탄소 제거
"1등 상금 5000만달러(약 639억원)"
수백억 잭팟을 터뜨릴 기업은 어디일까? 대회 총 상금규모는 1억달러(1278억원).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는 2021년 4월부터 2025년 4월까지 DAC(Direct Air Capture, 대기 중 직접 탄소포집) 기술을 포함한 가장 좋은 CDR(Carbon Dioxide Removal, 탄소제거기술)을 선정하는 대회를 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 빌 게이츠도 기후변화에 대응할 첨단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지닌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라는 VC(벤처캐피탈)을 2020년 설립하고 다양한 DAC 기술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첨단기업 2곳이 이른바 기후테크(기후(Climate)+기술(Technology) 합성어) 기업에 대규모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점점 빨라지는 기후변화로 펄펄 끓게 된 '지구 열대화 시대'를 막아내거나 늦추기 위해서다.
전 세계가 역대 가장 더운 7~8월을 지나며 '당장 실효성 있는' 기후테크에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지난 7월말 세계기상기구(WMO)과 유럽연합(EU)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C3S)는 "7월 들어 3주 간 온도가 평년보다 1.5도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40년 관측 이래 최고치"라고 발표했다.
불행하게도 우리에겐 이 같은 기후위기에 대비할 시간이 많지 않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합의체)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지키기 위해 우리에게 남은 탄소예산(지구 자정능력을 유지하는 인류에게 허용된 온실가스 배출 총량)은 5000억tCO2eq(이산화탄소 환산톤) 수준이다. 연간 배출량 590억t 기준으로 보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관련 전문가들은 글로벌 사회가 지구 온도를 낮추기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탄소중립 실현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 가장 효과가 확실한 기술을 서둘러 개발해 현장에 바로 적용해야 한다"는 중론이다. 그래서 과학기술 및 산업계가 최근 CDR 기술 가운데 DAC를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는 중이다. DAC는 기후위기 해법이 될 수 있을까.
공기 중 탄소 잡아먹는 DAC 기술 주목 환경부 소속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 온실가스 잠정 배출량이 6억5450만톤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하겠다고 한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달성하려면 해마다 5~6%씩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정도의 기술로는 2030년 NDC 목표 달성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확실한 성과를 보장하는 방법론으로 최근 주로 거론되기 시작한, 현재 가장 핫한 신기술인 DAC를 꼽는다.
대통령 직속인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 따르면 기후테크는 크게 △클린테크(에너지) △카본테크(탄소포집·제거) △에코테크(환경) △푸드테크(농식품) △지오테크(관측·기후적응) 5개 분야로 나뉜다.
이중 카본테크에 속한 DAC 기술은 공기에서 이산화탄소를 물리·화학적으로 분리해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추는 개념이다. 공장, 발전소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를 포집·활용·저장(CCUS)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굴뚝이라는 고정된 배출원이 아니라 주변 공기에서 이산화탄소를 분리하며, 포집된 농축 이산화탄소는 지중저장(이산화탄소를 지하 암석 또는 지층 내에 저장하는 기술)하거나 화학제품, 연료, 시멘트 등의 제품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기술 성숙도 측면에선 초기 단계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DAC는 고체(S-DAC), 액체(L-DAC) 2가지 기술로 나뉜다. 고체 기반 DAC 기술은 이산화탄소를 선택적으로 흡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민(Amine, 암모니아 수소원자가 탄화수소기로 치환된 유기화합물)이 들어간 고체 흡착제 필터를 사용한다. 액체 기반 DAC는 수산화물 용액에 공기를 통과시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방식이다. 액체 기반 DAC에서 이산화탄소 1톤을 포집할 때 드는 물의 양은 약 4.7t이다.
DAC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데 필요한 면적이 작고, 기술과 설비를 어디든 쉽게 설치·활용할 수 있으며,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제품이나 원료 물질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찬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후환경대응팀장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저탄소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략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완전한 전환까지 상당 수준의 시간과 재원이 소요되는 만큼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처리·활용하는 DAC 기술이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의 가교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DAC 포집 비용은 다른 탄소포집·제거 기술 보다 월등히 높다. 일각에선 공기 중 희석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일은 일종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안 나오는 기술이라고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국제에너지기구(IEA)가 DAC 관련 업체들과 함께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포집 비용은 1t당 약 200~700달러로 추정된다.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저장·운송한 비용이 빠진 수치인데 이를 더하면 600~1000달러까지 증가한다. 같은 규모를 바이오 에너지-탄소 포집저장(BECCS) 기술로 처리했을 때 드는 비용이 15~80달러이므로 비용차가 확실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탄소 저감만으로 한계...'2050 탄소중립' 달성 필수기술 우리나라도 최근 DAC 기술 적용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정부가 약속한 '2050년 탄소중립Net Zero·넷제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줄이지 못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DAC 기술로 상쇄해야만 한다.
과기정통부는 DAC 원천기술 개발 및 실증 기반 구축을 중심으로 한 연구과제에 올해부터 3년간 총 197억원의 예산을 지원할 예정이다. 연구과제서에 따르면 공기 중 400ppm 수준의 희박한 농도 조건에서 이산화탄소를 효과적으로 포집하는 혁신 소재를 개발하고 흡착 효율을 극대화하는 공정 적용 기술을 개발한다.
이 같은 DAC 기술 개발이 성공하려면 산·학·연 공동연구개발 형태로 추진해야 한다. 기술적 난도와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찬영 기후환경대응팀장은 "DAC는 혁신적인 탄소 네거티브 기술로 기술 성숙도가 낮아 민간기업 홀로 추진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적극적인 원천기술 개발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DAC 기술이 향후 우리나라 이산화탄소 배출권 가격과 이로 인하 산업계 부담을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미국 정부도 탄소 정책의 하나로 DAC 연구기술, 설비 확대 지원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DOE)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약 35억달러(약 5조원)에 달하는 정부 지원금을 DAC 허브 건설에 쓸 예정이다. 미국 전역에 4군데 허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 "145조 투입해 기후테크 유니콘 10개 육성" 우리나라도 지난 4월에 개최된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 탄소 포집 기술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이후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지난 6월 2030년까지 민관 합동으로 약 145조원 규모의 R&D(연구개발) 및 투자 지원을 통해 기후테크 분야 유니콘 10개 육성과 신규 일자리 10만개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선 5대 금융그룹이 기후테크 산업 분야 채권 발행, 대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의 방식으로 약 135조원 규모의 투자를 지원하고,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등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과 연계한 2000억원 규모의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기후테크 기업의 성장을 위한 융자·보증 등 기후금융을 2030년까지 8조원 규모로 확대하고, 산업기술혁신펀드 내 전문펀드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4000억원 이상의 정책펀드도 조성한다.
유망 기후테크 기술이 산업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1조원 규모의 기후 문제 해결형 대규모 R&D 신설도 추진한다. 기후산업규제혁신위원회를 통해 기후테크 글로벌화를 가로막는 규제도 개선할 방침이다.
민간 벤처캐피탈(VC)들도 첨병 역할을 자처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소풍벤처스, BNZ파트너스 등은 국내 기후테크 스타트업 투자 및 보육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소풍벤처스는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100억원 상당의 펀드를 조성하고 관련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소풍벤처스가 투자한 DAC 기술 기업 중엔 '캡처6'이라는 곳이 있다. 캡처6은 물을 사용하는 습식 기반의 DAC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담수화나 수처리 시설에 설치가 가능해 DAC의 약점인 높은 비용 문제를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언제든 수자원 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이 특장점으로 꼽는다.
소풍벤처스 측은 "캡처6의 DAC 시설은 탄소제거를 위한 공장을 따로 건설하지 않아도 기존 담수화나 수처리 시설에 설치 가능하다는 점에서 시설 건설, 운영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민간기업 'DAC 기술 사업화' 잇단 출사표 DAC 기술로 이윤을 창출하려는 민간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10여개 기업이 관련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중 대표적으로 캐나다의 카본엔지니어링, 미국의 글로벌써모스탯, 스위스의 클라임웍스 등을 꼽는다.
카본엔지니어링은 정유회사 '옥시덴탈'의 투자를 받아 연간 포집량 100만톤 규모의 대규모 시설을 미국 텍사스 산유지인 퍼미안 분지에 건설 중이다. 내년 가동을 목표로 현재 설비 공사가 한창이다. 원래 연간 포집량을 50만톤으로 잡았으나 최근 DAC 기술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설비규모를 연간 100만톤으로 늘렸다. 이 규모는 연간 약 25만대 차량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수 있는 규모다. 계획대로 완공되면 세계 최대규모의 설비가 된다.
클라임웍스는 스위스 유명 공과대 ETH 취리히 대학에서 스핀오프(spin-off·회사분할)한 기업으로 'DAC 건식 포집용 흡착제' 기술에 대한 다수의 특허를 보유했다. 이 회사는 2009년 흡착제 단가를 낮추기 위해 저렴한 셀룰로스 기반의 지지체를 활용해 생산된 흡착제로 건식 포집 실증을 수행한 바 있다. 또 연간 4000tCO2(이산화탄소톤)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수 있는 건식 포집 설비 '오르카(Orca)'를 아이슬란드 헬리셰이디의 지열발전소 옆에 설치해 2021년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지난해엔 '오르카'보다 규모를 더 키운 대규모 건식 포집 설비 '매머드'를 아이슬란드 헬리셰이디에 건설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도 DAC 기술을 사업화하고 있는 딥테크(첨단기술) 스타트업이 있다. 로우카본은 산업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황과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기술을 보유했다. 로우카본은 DAC 시스템에 사용할 수 있는 습식 포집제(상품명: KCL)를 개발하고 이를 활용하는 실증을 진행 중이다.
로우카본 측은 "포집 후 이산화탄소 분리 과정이나 추가적인 이산화탄소 활용 과정 없이 포집 단계에서 이미 산업공정에서 널리 사용되는 화학물질인 탄산칼슘이나 탄산나트륨이 합성된다"며 "KCL 포집제가 이산화탄소와 결합하는 순간 이미 화학제품이 생성된다는 점이 특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국내외에서 추진되고 있는 DAC 프로젝트는 지구 온도 상승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IEA에 의하면 대략 1메가톤 용량의 DAC 시설에서 필요한 인력은 공급 체인의 인력까지 포함 3500명 정도다. 관련 건설, 설비, 장비공급 등의 주변 산업을 통틀어 30만 개 정도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 질 것이란 예상이다.
안준모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혁신정책연구센터장)은 "기후위기는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최대 난제 중 하나다. 이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선 DAC와 같은 도전적 연구개발 과제를 민간 기업과 함께 기획하고, 전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기술혁신 단계별 이행안을 더욱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 기자 사진 류준영 차장 joon@mt.co.kr 다른 기사 보기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