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기후 변화· 백신 개발 연구…"임상도 못 했는데"

박건희 기자 기사 입력 2024.10.04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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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쫓겨나는 과학자] ③ 한반도 생태연구·RNA 백신 플랫폼 연구도 70% 이상 예산 삭감

[편집자주] 풀뿌리 연구 인력인 학생연구원이 사라진다. 연구인력 양성의 전진기지인 4대 과학기술원조차 '일자리가 없다'며 쫓겨나는 과학자 역시 적지 않다. 과학계를 떠나는 인력 이탈이 심화하면서, 연구 현장에선 우리 과학기술계의 기초 체력 저하와 생태계 황폐화를 우려한다. 연구에만 몰두해도 '먹고 살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정부 정책의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으로 제기되는 대목이다.
4대 과기원의 '2023년도 대비 2024년도 계속과제 연구개발비 조정 내역'에 따르면 올해 참여연구인력이 절반 이상 줄어든 과제가 속출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4대 과기원의 '2023년도 대비 2024년도 계속과제 연구개발비 조정 내역'에 따르면 올해 참여연구인력이 절반 이상 줄어든 과제가 속출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4대 과학기술원(이하 과기원)의 국가 R&D(연구·개발) 과제 참여 인력이 올해 감축된 가운데 기후변화에 따른 한반도의 생태 변화, RNA(리보핵산) 백신 플랫폼, 치매 진단 기술 등을 연구하던 주요 연구자들도 설 자리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4일 DGIST, GIST, KAIST, UNIST 등 4대 과기원이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2023년도 대비 2024년도 계속과제 연구개발비 조정 내역'에 따르면 올해 참여 연구인력이 절반 이상 줄어든 과제가 속출했다.

4대 과기원 중 총연구 인력이 19.3%로 가장 많이 줄어든 GIST에서는 해양수산부의 지원을 받아 2022년부터 수행하던 '한반도 주변해 해양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생태계' 연구의 인원이 54명에서 올해 8명으로 대폭 줄었다. '기후환경 시나리오에 따른 생태계 개체군의 변화' 연구 역시 39명에서 7명으로 줄었다. 두 연구 모두 당초 2026년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다.

KAIST에서는 'RNA를 이용한 백신 플랫폼 개발' 연구의 예산이 전년 대비 90% 이상 삭감되며 연구 인력이 14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 연구 계약기간은 내년 12월 31일까지였다. UNIST의 연구팀이 진행하던 '폐암 조기진단을 위한 DNA 탐침 키트' 연구 역시 2025년 12월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예산이 완전 삭감되며 올해 중단됐다. 이 연구에 참여하던 인력은 11명이었다.

"5년 간 진행해오던 AI(인공지능) 기반 치매 진단 연구 예산이 50% 삭감됐다"고 밝힌 과기원의 A 교수는 "연구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임상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돈이 부족해졌다"고 밝혔다. 그는 "인건비를 줄이면 함께 일하던 연구원을 내보내야 하는데, 그럴 순 없기 때문에 차선으로 임상시험의 목표치를 당초보다 줄였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A 교수가 참여하는 3개 대학 공동 한의융합기술연구의 예산도 80% 감축돼, 주관 연구팀을 제외한 모든 팀이 연구에서 빠지기로 했다.

정부가 내년도 R&D 투자를 '원상 복귀 이상'으로 돌리는 예산안을 내놨지만, 연구자 입장에서 희소식이 아니라는 시각도 나온다. 진행 중이던 과제가 사라져 당장 인건비 마련이 어려워진 연구자들이 내년도 신규 과제 모집에 한꺼번에 뛰어들게 됐기 때문이다.

A 교수는 "이젠 연구자 간 피 터지는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며 "R&D 예산이 줄어들 수 있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과제 일괄 감축이 아닌 다른 조정 방식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했다. 그는 "연구 과제는 국가와 연구자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맺는 일종의 약속임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자 사진 박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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