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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걸려면 이렇게, 배상금은…" 오픈AI도 투자한 AI회사[월드콘]

김종훈 기자 기사 입력 2024.08.2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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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AI 스타트업 하비, 2년 만에 기업가치 15억 달러
판례, 법률정보보다 변호사 업무 프로세스 학습 중시
싱가포르 법원은 하비AI로 일부 사건 법률자문 제공

[편집자주] 전세계에서 활약 중인 '월드' 클래스 유니'콘', 혹은 예비 유니콘 기업들을 뽑아 알려드리겠습니다. 세상에 이런 게 있었나 싶은 기술, 이런 생각도 가능하구나 싶은 비전과 철학을 가진 해외 스타트업들이 많습니다. 이중에서도 독자 여러분들이 듣도보도 못했을 기업들을 발굴해 격주로 소개합니다.
오픈AI의 챗GPT4(왼쪽)과 법률AI 스타트업 하비가 오픈AI와 함께 법률 특화를 위해 훈련시킨 AI 모델이 '충실 의무 위반(Claim of disloyalty)이 뭐냐'는 질문에 답변을 내놓고 있다. 챗GPT4는 충실 의무 위반을 문구 그대로 해석, '사람 간 믿음을 배신한 행위' 정도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하비 AI는 상법 관련 질문임을 인지한 뒤 관련 판례와 법리를 요약, 정리한 답변을 출력했다./사진=오픈AI 홈페이지 갈무리
생성형 AI(인공지능) 중 현존 최강으로 알려진 챗GPT4에게 "충실 의무 위반(Claim of disloyalty)이 뭐야"라고 물었다. 충실 의무는 상법에서 등장하는 개념으로, 기업 이사는 법령과 정관에 따라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챗GPT4는 충실 의무 위반을 단어 그대로 해석, "누군가가 신뢰를 배반했다는 주장"이라는 상법과 무관한 답변을 내놨다.

법률AI 스타트업 '하비'(Harvey)가 내놓은 AI모델은 달랐다. 이 모델은 "회사의 경영을 맡은 대리인들이 주주 또는 회사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때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충실 의무 위반을 정의한 뒤, 출처와 함께 판례와 주요 법리를 요약했다. 오픈AI 기술을 기반으로 법률 특화 AI 훈련을 진행한 결과다.

그동안 법률 특화 AI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변호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법률 AI의 핵심은 간단한 질문만으로 판례, 법리 검토까지 가능한 문서를 생성하는 것. 질문을 간단히 입력하면 수박 겉핥기식 답변이 돌아오고, 제대로 된 답변을 얻으려면 질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하비는 변호사들과 함께 법률을 연구할 AI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변호사들의 생산성을 높여 더 많은 사람들이 법률 서비스 혜택을 볼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싱가포르 법원은 일부 사건에 한해 하비의 법률AI를 통해 소송 당사자들에게 법률자문을 제공 중이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AI에게 법률 자문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

하비 창업자 윈스턴 와인버그는 글로벌 로펌 오벨머니앤마이어스(오벨머니)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변호사다. 법률 실무를 하면서 변호사들이 생각보다 단순 업무에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챗GPT에게 법률서류 요약 정리 같은 업무를 맡겼다. 와인버그는 지난 9일 포브스 인터뷰에서 "1년 안 되게 변호사로 일하면서 변호사 일 상당수가 로스쿨에 진학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한 번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 올라온 질문을 따다 챗GPT3에 입력, 법률 자문 글을 작성한 뒤 주변 변호사들에게 채택할 것인지를 물었다. 오픈AI 홈페이지에 게시된 소개 글에서 와인버그는 "변호사들은 자문 글 100개 중 86개는 편집 없이 그대로 고객에게 답변으로 보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면서 "이거다 싶었다"고 답했다.

법률AI 스타트업 하비 공동창업자 가브리엘 페레이라(왼쪽)와 윈스턴 와인버그. /사진=하비 홈페이지 갈무리
법률AI 스타트업 하비 공동창업자 가브리엘 페레이라(왼쪽)와 윈스턴 와인버그. /사진=하비 홈페이지 갈무리
와인버그는 룸메이트였던 메타 출신 AI 연구원 가브리엘 페레이라에게 법률AI 사업을 제안해 2022년 하비를 창업했다. 법률, 판례 정보를 찾아주는 수준에서 벗어나 변호사처럼 판례를 요약, 연구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하는 게 목표였다. 이를 위해 두 사람은 변호사들의 업무 방식을 연구하고 AI에게 학습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법률 AI 사업을 하는 회사 상당수는 법률 정보, 판례를 모아 학습시키는 데 주력한다.

법률 전문 매체 로넥스트의 지난 5월 보도에 따르면 하비 120명 중 절반이 변호사다. 와인버그는 "변호사들이 업무 방식을 익히려면 수년간 훈련을 받아야 하는 데다 훈련 결과는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는다"며 법률, 판례에 앞서 변호사 업무 방식을 AI에게 학습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픈AI 임원진은 창업 첫 해부터 하비를 주목했다. 그해 7월 와인버그에 직접 접촉해 법률 AI 공동 개발에 착수했다. 그해 말 서비스 출시와 함께 영국계 대형 로펌 앨런 앤 오버리와 세계 최대 회계법인 PwC를 고객으로 맞았다. 해당 기업들에 최근 법원에 제출한 문서들을 찾아낸 뒤, 하비 AI로 반박 자료를 만들어 제시했다.

흥미를 느낀 앨런 앤 오버리는 자사 변호사 3500명을 시켜 하비 AI에 4만개가 넘는 법률 질문을 건넸다. 결과물에 깊은 인상을 받은 앨런 앤 오버리는 테스트 후 3개월 만에 하비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PwC도 하비와 파트너십을 통해 자사 맞춤형 AI 모델을 개발, 서비스를 독점하기로 했다. 이후 오멜버니, 빈슨 앤 엘킨스, 맥팔레인 등 글로벌 로펌들이 줄줄이 하비의 고객이 됐다. 와인버그는 "AI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면서 세계적인 대기업들과 먼저 고객 관계를 맺는 전략이 먹혀들었다고 말했다.

하비는 미국을 넘어 전세계 법률시장을 개척하는 게 목표다. 실현된다면 타국에서 소송에 휘말린 개인, 기업들이 보다 쉽고 빠르게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얻을 수 있다. 싱가포르 매체 채널뉴스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 법원은 하비AI를 통해 소액 사건 소송 당사자들에게 법률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청구액 2만 달러 이하 사건은 소액 사건으로 취급되며, 법정에 변호사를 대동할 수 없다. 이런 이들을 위해 하비AI가 소송 절차와 예상 비용, 승소 시 배상액수 등을 예상해 알려준다는 것.

하비는 지난달 구글벤처스가 주도한 시리즈C 펀딩에서 오픈AI, 세쿼이아 캐피털,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클라이너 퍼킨스 등으로부터 1억 달러 자금을 조달했다. 기업가치는 15억 달러로 평가됐다. 창업 2년 만에 유니콘으로 거듭났다. 올해 오픈소스를 특징으로 하는 AI 스타트업 미스트랄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에서도 서비스를 개시하는 등 외연을 넓히고 있다. 포브스 언더 30(30세 이하) 출신 벤처 투자자이자 하비 초기 투자자인 사라 궈는 "몇 달이 걸릴 검토 작업이 하루 만에 끝나 소송에서 이기는 것을 상상해보라"면서 법률 AI가 법률시장을 뒤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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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사진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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