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심사역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잘나가던 직장생활을 접고 스타트업을 창업한 A 대표. 최근 투자유치에 나섰다가 흥미로운 말을 들었다. 그의 피칭을 눈여겨본 벤처캐피탈(VC)의 심사역이 조금 더 편안한 자리가 되자 터놓고 말한 것이다.
"바로 엑시트(exit)입니다."
투자업계에서 엑시트란 투자금을 빼서 회수하는 걸 말한다. 투자를 시작하는 '엔트리' 단계일 뿐인데 VC들은 이미 언제 투자를 회수할지 엑시트 계획을 따진다. A 대표에겐 인상 깊은 기억이다. 그의 피칭이 잘못됐다는 뜻이 아니었다. 투자할 기업의 옥석을 가리는 심사역이 과연 무엇을 주목하는지 알 수 있었다. 덕분에 A 대표는 다음 피칭 내용을 더욱 설득력 있게 가다듬었다.
그의 생생한 경험은 또 다른 창업자 B 대표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 B 대표는 뼛속까지 연구자이지만 창업 후 경영 이력도 꽤 된다. 그런데도 연구실(랩)에서 홀로 개발에 매달리는 것보다 경영이 100배는 어렵다고 말했다. 랩 내부의 일은 비록 어렵기는 해도 모든 변수를 직접 통제할 수 있다. 반면 조직관리, 투자유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 커뮤니케이션이 전부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오늘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피칭과 IR이 벌어진다. 그 과정에 참여한 인사들은 대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다. 창업자들은 마치 영원할 것같은 회사 비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당신의 투자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투자 심사역들이 생각하는 '비전'과 다를 수 있다. 비록 투자 행위가 투자자와 스타트업을 동반자로 엮는 과정이긴 해도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정도는 아니다. 일정 기간 후 투자금을 빼서 회수하거나 창업자 스스로 기업을 매각하는 '엑시트'는 글로벌 벤처업계에서 흔한 일이다. 냉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현실이다.
투자자를 설득하려는 창업가나 경영자라면 이런 '비전 미스매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요즘 같은 투자 위축기에 그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중소벤처기업부와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벤처투자액은 4조4000억원, 펀드 결성액은 4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투자액은 42%, 결성액 47% 감소했다.
치과의사이면서 엔젤투자자 단체를 이끄는 최성호 AI엔젤클럽 회장은 "단순히 '알아서 회사를 키울테니 자금만 투자해 달라'는 식이면 투자를 유치하기 어렵다"고 스타트업 경영자들에게 조언했다. 결국 "우리 기업에 지금 이만큼 투자하세요. 그러면 언제 얼마의 수익으로 어떻게 엑시트할 수 있습니다"라고 조목조목 설득하는 피칭이 거창한 포부만 이야기하는 것보다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다.
명절 연휴에도 가게 문을 열고 일터로 향해 땀흘린 이들이 적잖다. 그중에는 투자를 따내려 동분서주한 스타트업 대표들도 있을 것이다. 하고싶은 말과 듣고싶은 말이 다를 수 있다는 미스매치를 인정하고, 이를 좁혀나가는 창업자가 분명 성공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A 대표, B 대표를 비롯한 모두의 희소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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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김성휘 차장 sunnykim@mt.co.kr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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