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뛰쳐나와 창업한 韓엔지니어…AI 번역엔진으로 구글과 맞짱

고석용 기자 기사 입력 2022.11.0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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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UP스토리]정영훈 엑스엘에이트 대표 "틈새 찾아 구글·네이버 등 빅테크와 경쟁"

정영훈 엑스엘에이트 대표 인터뷰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정영훈 엑스엘에이트 대표 인터뷰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대기업이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스타트업이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는 '시장 세분화'다"

지난달(9월)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최한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행사에서 정영훈 엑스엘에이트 대표(41)가 한 말이다. 정 대표가 2019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엑스엘에이트는 구글 번역기, 네이버 파파고 등 빅테크가 장악하고 있는 인공지능(AI) 번역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어 성과를 내고 있다. 출시 2년여만에 50만시간의 콘텐츠 자막을 번역하면서다. 최근에는 유럽 시장을 공략하면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시장 세분화'가 어떤 의미일까. 최근 머니투데이와 만난 정 대표는 "빅테크 기업이 다 커버하지 못하는 틈새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발견한 틈새는 영화나 드라마 등 미디어 콘텐츠 분야다. 엑스엘에이트는 문체는 물론 문맥이나 뉘앙스를 살려 33개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AI번역 솔루션 '미디어캣(CAT)' 제공하면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정 대표는 "AI는 수많은 자료를 반복 학습하면서 고도화된다"며 "엑스엘에이트는 시작부터 미디어 분야의 자막만 집중 학습시키면서 영화나 드라마 등 미디어 분야에 특화된 전문엔진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구글이나 네이버 등 빅테크 기업들의 번역 AI는 방대한 양의 웹데이터들을 가리지 않고 학습한다. 빠른 학습에 유리하지만 단점도 크다. 웹상에 나와있는 언어 데이터의 어투가 워낙 다양해 AI가 상황에 맞게 문체를 반영하기 어렵다. 품질이 낮은 것도 문제다. 네티즌들이 잘못된 언어를 사용한 경우 AI도 그대로 학습해버리면서 잘못된 번역을 하게 된다.

반면 엑스엘에이트의 '미디어캣'은 영화·드라마의 대사들만 학습하면서 미디어 콘텐츠의 맥락, 어투 등을 배운다. 예컨대 'mother'란 대사가 있으면 단순히 '엄마'로 번역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앞 뒤 맥락에 따라 일부가 생략된 욕설로 번역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미디어캣의 숨겨진 비밀은 또 있다. 최종적으로 제공되는 자막은 '대사의 원어 자막화→엑스엘에이트의 초벌 번역→전문가 검수·수정'으로 만들어지는데, 미디어캣은 전문가 검수본을 다시 보면서 재학습하는 것이다. 정 대표는 "전문가의 번역을 다시 학습하면서 미디어캣의 AI엔진을 고도화하는 선순환 구조"라고 말했다.
정 대표가 처음부터 이 산업에 몸을 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2006년부터 5년간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정 대표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나이 서른이었다. 이후 박사과정을 마친 정 대표는 구글에 입사해 소프트웨어·리서치 분야 엔지니어링 리드를 역임했고 2019년, 창업을 위해 구글을 떠났다.

정 대표는 구글 리서치팀에서 쌓은 자연어처리(NLP)기술과 경험을 살려 AI 번역 엔진 개발에 도전했다. 마침 관심있게 지켜보던 미디어 콘텐츠 산업에서는 넷플릭스 등 OTT 보급으로 번역시장이 커지고 있었다. 전세계의 콘텐츠가 수십가지로 번역된 자막을 달고 전세계에 공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 대표가 있었던 미국 서부는 헐리우드가 있어 이같은 변화의 중심지였다.

엑스엘에이트는 최근 다른 틈새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우선 실시간 번역 시장이 타깃이다. 엑스엘에이트는 지난 8월 네덜란드에서 스포츠중계, 팬미팅 등 라이브 영상에 번역 자막을 제공하는 '이벤트캣'을 출시했다. 올해 초 K팝 아이돌 '몬스타엑스'의 팬미팅 라이브에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 태국어 등 자막을 제공해 호응을 얻은 솔루션이다. 정 대표는 "이벤트캣 이후에는 음성부문에 전문화된 트래블캣 등 특화 솔루션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훈 엑스엘에이트 대표 인터뷰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정영훈 엑스엘에이트 대표 인터뷰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정 대표처럼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해외 창업이 유리할까. 정 대표는 "엑스엘에이트는 고객이 로스앤젤레스(LA)에 가장 많고, AI 인재도 실리콘밸리에 가장 많기 때문에 미국에서 창업했지만 모두 미국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국도 충분히 글로벌화가 돼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해외 창업의 외로움이나 언어장벽도 크다고 했다. 정 대표는 "10년여를 썼지만 아직도 어떤 때는 영어가 어렵다"며 "외로움이나 감정적인 어려움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미국에서 같은 어려움을 겪는 한인 창업자, IT·테크업계 종사자들을 위해 현재 실리콘밸리 한인 엔지니어 모임 '베이에어리어 K그룹'의 회장을 맡고 있다. '82스타트업'와 함께 실리콘밸리의 양대 한인 네트워크로 평가받는 모임이다.

그러나 회사가 어디에 있든, 글로벌 시장에 대한 도전은 필요다고 했다. 엑스엘에이트는 네덜란드에서 이벤트켓 솔루션을 발표한 데 이어 뉴질랜드 더빙업체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최근엔 포르투칼 스타트업 피칭행사 '웹서밋'에도 참여했다. 정 대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지역이, 사실 도전을 안 해봐서 모르는 곳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엑스엘에이트가 도전을 이어갈 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글로벌에 도전할 수 있도록 언어 장벽을 허무는 솔루션을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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