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이긴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UNIST 특임 교수 임명
"AI 시대, 인간 고유의 직관·통찰력 더 중요해져…보드게임만 한 게 없다"
박종래 UNIST 총장 "1人 1 AI 도입…'AI 지배자' 육성할 것"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인간은 AI(인공지능)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AI와의 능력 차를 꼭 극복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만의 직관과 통찰력으로 AI와 협업해야 합니다."
'챗 GPT 광풍'이 몰아치기 훨씬 전 우리나라에는 AI를 이긴 최초의 인간이 있었다. 2016년 구글 딥마인드 AI '알파고'와의 바둑 대전 제4국에서 알파고를 굴복시킨 전(前)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이다. 이세돌이 UNIST(울산과학기술원)에서 'AI를 이기는 법'이 아닌 'AI와 협업하는 법'을 가르치는 특임 교수로 돌아왔다.
11일 UNIST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교수는 "2016년만 해도 AI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고 당시 대국을 회상했다. 알파고와의 대전에서 첫 1~3국을 모두 패한 그가 4국에서 반전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건 앞선 패배에서 경험적으로 AI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대국 초반에는 전투를 벌이는 게 '관례'지만, 이 교수는 알파고가 초반의 세를 장악하게 뒀다. 승리를 가져가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대신, 정수로 접근했다. 상대의 호흡이 늘어지자 이같은 수를 예상치 못한 알파고에 오류가 생겼다. 그 결과 이 교수가 이겼다. 이 교수는 "인간은 '잘 두려고'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고정관념이 생긴다. 이 때문에 너무나 쉬운 수도 놓치게 된다. AI가 이길 수 있었던 건 고정관념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AI에 없는 특성은 또 있다. 인간만의 직관과 통찰, 그리고 창의력이다. 이 교수는 "(생성형 AI가 출현하며) 언뜻 AI도 창의적으로 보이지만, AI엔 고정관념이 없는 것일 뿐 창의적이지는 않다"고 봤다. 그는 "AI는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이 될 수 없고, 인간의 삶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날 함께 자리한 박종래 UNIST 총장은 "(이세돌의 일화가) 교육계에 던진 메시지가 컸다. AI도 실수하고 오류를 범한다는 건 AI 시대의 우리 교육이 가야 할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했다.
박 총장은 "UNIST의 목표는 최소한 '통찰적 AI 사용자'가 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최종적으로는 'AI 지배자'를 기르겠다고 했다. AI를 단순히 사용하거나 AI의 기능에 의존하는 인간이 아니라, AI의 허점과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는 사용자가 통찰적 AI 사용자다.
이 교수는 이번 학기부터 '과학자를 위한 보드게임 제작' 강의를 맡아 격주 금요일마다 6시간씩 UNIST 강단에 선다. 이 교수는 "인간만의 능력인 직관과 통찰을 기를 수 있는 건 바둑뿐이다. 나아가 게임을 직접 제작해 보는 것만큼 직관과 통찰,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건 없다"며 "강의를 통해 (AI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사고방식을 확장할 것"이라고 했다.

동시에 UNIST는 'AI 스마트 캠퍼스'로 탈바꿈한다. 국내 대학 최초로 교육, 연구, 행정 전반에 AI 기술을 접목한다는 계획이다. 교내 모든 구성원이 최소 한번은 자신만의 AI 에이전트를 활용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1인 1 생성 AI 체계'를 도입하는 게 그 예다. 박 총장은 "이를 통해 우선 단순 AI 사용자 수준에 도달한다면 점차 통찰적 AI 사용자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우리는 AI에 과하게 의존하다 결국 종속될 미래를 우려하지만, 그건 AI의 의지가 아니다. 인간 스스로가 AI에 의존하길 택하는 것"이라며 "기술 발전에 대한 관심을 넘어 우리의 태도를 점검하기 위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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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울산=박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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