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 칼럼]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에서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이 창은 예리하기로 어떤 방패라도 꿰뚫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방패의 견고함은 어떤 창으로도 꿰뚫지 못한다"라고 자랑하였다. 어떤 사람이 "자네의 창으로 자네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라고 물었더니 상인은 대답하지 못하였다.
고사성어 모순(矛盾)의 이야기는 최근 구글의 양자 칩 '윌로우' 공개와 함께 한층 더 우리 일상에 바짝 다가서고 있는 양자기술 시대의 미래상을 함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양자기술은 디지털 시대의 안보에서 창과 방패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양자컴퓨터가 초고속 초거대 연산으로 현재의 암호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는 위협이라면, 양자암호통신은 절대 해독이 불가능한 보안성으로 이를 방어하는 방패가 된다. 데이터 주권이 곧 국가 경쟁력인 시대, 양자기술의 전략적 중요성은 이제 굳이 별다른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중대한 현안이 되고 있다.
양자컴퓨터 개발은 AI(인공지능) 발전, 혁신적인 신약개발, 에너지 및 우주개발 등의 난제 해결이라는 기대감과 동시에 안보 분야에서는 큰 우려를 낳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슈퍼컴퓨터를 아득히 뛰어넘는 고성능 양자컴퓨터의 실현은 현존하는 암호체계의 붕괴를 의미한다. 어떤 재래식 무기로도 대응이 어려운 핵무기 같은 비대칭 전력이 등장하게 되는 셈이다.
고전적인 암호기술은 소인수분해가 기반이다. 자릿수에 따라 계산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기존 디지털 컴퓨터로는 이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로 소인수분해를 빠르게 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개발되면 현행 암호체계의 무력화는 시간문제다.
세상의 어떤 보안체계도 손쉽게 뚫을 수 있는 양자컴퓨터의 대항마 역시 또다른 양자기술인 '양자암호통신'이다. 양자암호통신의 핵심은 중첩과 얽힘, 관측의 영향에 따라 정보가 바뀌는 양자역학의 현상을 통신과 정보처리, 암호화에 활용하는 것이다. 만일 나쁜 의도를 가진 제3자가 정보를 훔쳐보게 되면 그 순간 원래의 양자 상태가 붕괴되기 때문에 정보의 내용도 변해버리고 유출 여부도 즉각 탐지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원리는 현대 암호체계가 의존하는 수학적 난제와는 달리 자연법칙에 기반을 두고 있어 원천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한 절대적 안전성을 보장한다.
현재 양자암호통신은 양자컴퓨터보다 더 빠르게 실용화에 근접 중이다. 중국은 2014년 이미 베이징-상하이를 잇는 2000km 구간의 양자통신 기간망을 구축한 데 이어, 2016년에는 세계 최초의 양자암호통신 실험위성 '묵자'(미셔스, Micius)를 발사해 대륙 간 양자통신 실험에도 성공했다. 이 실험은 암호화된 대량의 정보를 순식간에 이동시킬 수 있는 양자 얽힘의 공간적 거리가 1200km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었다.
유럽연합은 EuroQCI 이니셔티브를 통해 27개 회원국을 연결하는 양자암호 통신망을 구축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SK텔레콤, KT 등 주요 통신사들이 도시 간 시범망 구축과 실증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차세대 한국형 양자암호 인증체계도 마련되어 상용화를 위한 기반이 갖춰지고 있다.
하지만 양자암호통신의 실질적인 실용화와 산업화를 위해 아직 해결해야 할 기술적 과제가 많다. 현재의 양자암호통신은 광섬유에서 발생하는 손실로 인해 80km 내외의 거리 제약을 가지고 있다. 또한 단일광자 검출기 등 고가 장비 사용으로 인한 높은 구축비용도 걸림돌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TF(Twin-Field) 방식의 양자암호통신은 이미 실 환경에서 500km 이상 거리에서 구현에 성공해 중계기 없이도 우리나라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또 기존 통신 부품과 장비를 활용할 수 있는 연속변수 방식의 양자암호통신은 구축비용을 크게 낮출 것으로 기대된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KIST에서는 이러한 차세대 기술들의 핵심 원천기술 개발과 함께 국내 통신 인프라 환경에 최적화하는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양자암호통신의 성공적인 상용화를 위해서는 기술 개발 못지않게 관련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다. 양자암호통신의 응용은 크게 도시 간을 연결하는 장거리 통신과 데이터센터 내부 보안을 위한 근거리 통신으로 나눌 수 있다. 장거리 통신은 금융기관 간 데이터 전송이나 의료정보 공유와 같이 도시 간 안전한 정보 교환이 필요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근거리 통신은 데이터센터나 기업 캠퍼스 내부와 같이 대용량 데이터의 안전한 전송이 필요한 환경에서 활용될 수 있다. 각 응용 환경에 맞는 최적의 기술을 선택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인증 체계와 표준을 마련해야 한다.
스트랙티스 MRC 등의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은 양자암호통신 시장이 2030년까지 연평균 40% 이상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구글, IBM 등 미국 거대 IT 기업은 물론 중국에서도 최근 양자컴퓨터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현재 암호체계의 취약성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제는 산학연 협력을 통해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양자암호통신 생태계를 조성하여 디지털 안보 강화와 미래 시장 선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양자암호통신은 단순한 보안 기술을 넘어 미래 디지털 인프라의 필수 요소가 될 것이다. 초연결 시대에 안전한 정보 교환을 보장하는 기반 기술로서 우리의 디지털 생활을 더욱 안전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양자암호통신 기술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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