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K바이오, '제약 강국' 스위스서 배운다(上)
[편집자주] 시계로 유명한 스위스의 수출 1등 공신은 제약산업이다. 인구는 약 892만명으로 934만명인 서울보다 적지만 2023년 제약·화학산업의 수출액은 1355억300만스위스프랑(약 220조5000억원)에 달한다. 스위스 전체 수출의 36%로 1위다. 2023년 한국의 수출 품목 1위인 반도체 수출액 986억3000만달러(약 145조6800억원)의 약 1.5배에 이르는 규모다. 스위스에서 제약·바이오 산업을 이끄는 곳은 바젤시다. 유럽 내 최대 바이오 클러스터(산업집적지)다. 10대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와 로슈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이에 본지는 바젤에서 제약·바이오 산업 관계자들을 만나 비결을 듣고 K-제약·바이오 산업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봤다.

전 세계 제약사 중 가장 많은 신약후보물질(파이프라인)을 보유한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가 머니투데이에 단독으로 스위스 바젤시 본사에 위치한 R&D(연구개발) 센터 내 시설을 공개했다. 노바티스는 백혈병 치료제로 세계 첫 키메릭항원수용체(CAR)-T세포 치료제인 '킴리아'와 최초 신경내분비암 방사성의약품 '루타테라' 등을 선보이며 신약개발을 이끄는 회사다.

시설물을 안내한 다니엘 배슈린 노바티스 고속처리생물학 부문 전무는 "200만개 이상의 화합물이 구축돼 있다"며 "신약개발을 위해 연간 3만~4만개의 화합물을 생산해 보관한다"고 말했다. 이어 "암세포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한 화합물도 있기 때문에 위험성을 알리는 차원에서 해골 모양의 그림이 붙어 있는 것"이라며 "화합물 중 일부를 추출해 바이오실험실에 보내고 실험을 이어간다"고 설명했다.

노바티스는 미생물, 식물, 동물, 규조류, 조류 등 자연에서도 화합물을 발굴한다. 고글을 쓰고 흰 연구복을 입고 입장한 연구시설 내 '파일럿 플랜트'에서는 미생물 등에서 추출한 화합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파이프와 연결된 통에는 액체가 담겨 있었다. 이 액체의 온도와 산도(pH) 등을 조절하면서 설탕, 암모니아, 소금, 산소 등을 넣고 발효시켜 자연화합물과 효소를 얻는다고 했다. 이렇게 물질을 만들어 개발 담당에게 보내 후보물질로 가치가 있는지 확인한다는 설명이다. 해당 연구실 직원은 "파일럿 플랜트에서 25명이 근무하며 보통 한 물질을 만드는데 4~5일이 걸린다"면서 "이런 식으로 발굴해 시판된 약품이 몇 개 있다"고 말했다.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는 백혈병 표적항암제 '글리벡'도 바젤에서 개발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노바티스는 2023년 기준 98개의 신물질 신약을 보유하고 있고 109건의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3상 임상시험 단계에 있는 프로젝트는 41건이다. 2023년 22개의 치료제가 신규 허가를 받았거나 적응증을 확대했다. 130여개국에서 노바티스 의약품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2억8400만명에 달했다.


연구개발에 연 12.7조 투자, 노바티스가 살아남는 비결 ② 노바티스 천연물신약·생체분자화학부문 전무 인터뷰

필립 크라스텔 노바티스 천연물신약·생체분자화학부문 전무가 최근 스위스 바젤시 내 노바티스 캠퍼스에서 진행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외부 파트너와 협력하고 신약 발굴과 초기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임상 연구 단계까지 86억달러를 투자한다. 이는 한국 정부가 지난해 바이오헬스 R&D에 투자한다고 밝힌 예산 2조2138억원의 5.5배 수준이다. 노바티스의 R&D센터는 스위스, 미국, 슬로베니아, 중국 등 4개국에서 5개소를 운영 중이다.
노바티스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연속 전 세계 상위 25개 다국적 제약사 중 가장 많은 신약후보물질(파이프라인, 2022년 213건)을 보유한 기업으로 꼽힌다. 2023년 기준 109건의 임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면역(25.7%) △고형암(24.8%) △심혈관계, 신장·대사(14.7%) △기타(13.8%) △혈액(11.9%) △중추신경(9.2%) 부문 순으로 신약후보물질을 개발 중이다. 단 한 번 투약으로 소아 척수성 근위축증 질환의 진행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는 혁신 신약인 유전자 치료제 '졸겐스마'를 탄생시킨 성과도 있다.

최근에는 △방사성리간드 치료제(RLT) △리보핵산(RNA) 치료제 △세포·유전자 치료제 분야에 특히 집중하고 있다. 크라스텔 전무는 "방사성리간드 치료제는 암세포만 찾아 정밀하게 세포를 죽이고 정상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는 기술로 노바티스가 선도하는 분야로, 시장에서 두 가지 방사성리간드 치료제를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RNA 치료제는 신체의 생리학적 경로를 수정해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최근 스위스 슈바이처할레에 최신 시설을 설립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치료제('렉비오')의 주성분 물질을 생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렉비오는 콜레스테롤을 제거하지 못하게 막는 단백질을 차단해 고지혈증을 치료하며 1년에 두 번만 투여하면 되는 신약이다. 이외에 최초의 키메릭항원수용체(CAR)-T세포 치료제로, 한 번 투여로 대량의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백혈병 치료제 '킴리아'는 북미, 아시아, 호주, 유럽 등 4개 대륙에서 승인됐다고도 했다.

첨단기술에도 투자한다. 크라스텔 전무는 "R&D전략을 지원하기 위해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에 투자해 혁신적인 의약품을 환자에게 더 빠르게 제공하려 한다"며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업으로 새로운 소분자 약물 후보를 발견하는 방식을 확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300개 이상의 학술기관과 100개 이상의 산업 협업을 포함하는 글로벌네트워크와 함께 하고 있다"며 "2025년에는 집중치료 분야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을 우선순위 시장으로 선정하기도 한 노바티스는 한국 정부, 의료계 등과 협업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서울바이오허브와는 국내 혁신기업의 기술사업화도 지원한다.
'바이오' 기업 주요 기사
- 기사 이미지 "낮은 세율, 산학연 생태계"…유럽 최대 바이오 집적지 '바젤' 성공 비결
- 기사 이미지 제2의 코로나·지구온난화 대응할 '올해의 바이오' 기술은
- 기사 이미지 한국판 '모더나 신화' 쓸까…尹정부가 미는 '바이오 클러스터' 성공하려면
- 기자 사진 바젤(스위스)=박미주 기자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