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필요한 화합물 골라 실험"…노바티스 연구심장 가보니

바젤(스위스)=박미주 기자 기사 입력 2025.01.0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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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K바이오, '제약 강국' 스위스서 배운다(上)

[편집자주] 시계로 유명한 스위스의 수출 1등 공신은 제약산업이다. 인구는 약 892만명으로 934만명인 서울보다 적지만 2023년 제약·화학산업의 수출액은 1355억300만스위스프랑(약 220조5000억원)에 달한다. 스위스 전체 수출의 36%로 1위다. 2023년 한국의 수출 품목 1위인 반도체 수출액 986억3000만달러(약 145조6800억원)의 약 1.5배에 이르는 규모다. 스위스에서 제약·바이오 산업을 이끄는 곳은 바젤시다. 유럽 내 최대 바이오 클러스터(산업집적지)다. 10대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와 로슈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이에 본지는 바젤에서 제약·바이오 산업 관계자들을 만나 비결을 듣고 K-제약·바이오 산업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봤다.


[르포]노바티스 연구심장 공개…보관 화합물 200만개↑…로봇으로 신약개발


① 노바티스 스위스 본사 연구시설 가보니
노바티스 개요/그래픽=이지혜
노바티스 개요/그래픽=이지혜
"'화합물계의 아마존'입니다. 화합물만 200만개 이상 보유하고 있어요. 로봇을 활용해 이 물질들을 실험실에 보내고 효능을 확인하면서 신약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제약사 중 가장 많은 신약후보물질(파이프라인)을 보유한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가 머니투데이에 단독으로 스위스 바젤시 본사에 위치한 R&D(연구개발) 센터 내 시설을 공개했다. 노바티스는 백혈병 치료제로 세계 첫 키메릭항원수용체(CAR)-T세포 치료제인 '킴리아'와 최초 신경내분비암 방사성의약품 '루타테라' 등을 선보이며 신약개발을 이끄는 회사다.
스위스 바젤에 위치한 노바티스 캠퍼스 내 R&D(연구개발)센터 건물/사진= 박미주 기자
스위스 바젤에 위치한 노바티스 캠퍼스 내 R&D(연구개발)센터 건물/사진= 박미주 기자
최근 방문한 노바티스 캠퍼스 내 연구빌딩 내부에는 무수히 많은 약병들이 유리벽 너머에 적재돼 있었다. 노바티스가 1990년대부터 구축해놓은 '화합물 저장고'다. 유리벽에는 위험을 알리는 해골문양의 표식이 붙어 있었다.

시설물을 안내한 다니엘 배슈린 노바티스 고속처리생물학 부문 전무는 "200만개 이상의 화합물이 구축돼 있다"며 "신약개발을 위해 연간 3만~4만개의 화합물을 생산해 보관한다"고 말했다. 이어 "암세포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한 화합물도 있기 때문에 위험성을 알리는 차원에서 해골 모양의 그림이 붙어 있는 것"이라며 "화합물 중 일부를 추출해 바이오실험실에 보내고 실험을 이어간다"고 설명했다.
다니엘 배슈린 노바티스 고속처리생물학 부문 전무가 R&D센터 건물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사진= 박미주 기자
다니엘 배슈린 노바티스 고속처리생물학 부문 전무가 R&D센터 건물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사진= 박미주 기자
실험 기간은 로봇으로 단축한다. 연구실 내 다른 공간에선 로봇이 움직이며 화합물을 운반하고 있었다. 배슈린 전무는 "각 화합물 용기에 바코드가 있고 로봇이 화합물의 정보와 위치, 남은 양 등을 기억한다"며 "로봇이 필요한 화합물을 골라 실험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로봇은 추출한 화합물을 1㎟의 크기의 구멍이 1536개 있는 플라스틱 판에 담아 종양세포 등과의 반응을 확인한다. 세포 반응 등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자동으로 판별된다. 배슈린 전무는 "이렇게 자동화된 과정으로 화합물 실험 기간이 몇 주나 몇 달로 짧아질 수 있다"며 "연간 20~30개의 화합물을 실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노바티스가 동물 임상시험으로 가기 전 단계의 신약후보물질을 시험해보는 과정이다.

노바티스는 미생물, 식물, 동물, 규조류, 조류 등 자연에서도 화합물을 발굴한다. 고글을 쓰고 흰 연구복을 입고 입장한 연구시설 내 '파일럿 플랜트'에서는 미생물 등에서 추출한 화합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파이프와 연결된 통에는 액체가 담겨 있었다. 이 액체의 온도와 산도(pH) 등을 조절하면서 설탕, 암모니아, 소금, 산소 등을 넣고 발효시켜 자연화합물과 효소를 얻는다고 했다. 이렇게 물질을 만들어 개발 담당에게 보내 후보물질로 가치가 있는지 확인한다는 설명이다. 해당 연구실 직원은 "파일럿 플랜트에서 25명이 근무하며 보통 한 물질을 만드는데 4~5일이 걸린다"면서 "이런 식으로 발굴해 시판된 약품이 몇 개 있다"고 말했다.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는 백혈병 표적항암제 '글리벡'도 바젤에서 개발됐다.
노바티스 연구시설 내부 모습/사진= 노바티스
노바티스 연구시설 내부 모습/사진= 노바티스
건축 거장의 작품들로 구성된 축구장 30개 크기의 노바티스 캠퍼스는 신약개발을 위한 또 다른 토대다. 사토시 수지모토 노바티스 대외협력부 이사는 "건축과 실내외 공간 디자인을 통해 직원들간의 아이디어 교환과 협업을 촉진하려 했고 2022년에는 캠퍼스를 일반 대중에 개방해 교류와 소통을 촉진했다"며 "이를 통해 초기 아이디어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캠퍼스엔 생명과학 관련 다른 기업들도 입주해 있다. 노바티스 스위스 본사 내 구성원도 다양하다. 8000여명의 본사 구성원 중 스위스 국적자는 26%에 불과하다. 전 세계 노바티스 임직원은 7만8000여명이며 이들의 국적은 130개 이상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노바티스는 2023년 기준 98개의 신물질 신약을 보유하고 있고 109건의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3상 임상시험 단계에 있는 프로젝트는 41건이다. 2023년 22개의 치료제가 신규 허가를 받았거나 적응증을 확대했다. 130여개국에서 노바티스 의약품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2억8400만명에 달했다.
노바티스 캠퍼스 내 원형 전시 건물인 노바티스 파빌리온/사진= 박미주 기자
노바티스 캠퍼스 내 원형 전시 건물인 노바티스 파빌리온/사진= 박미주 기자
스위스 바젤시에 위치한 노바티스 캠퍼스/사진= 박미주 기자
스위스 바젤시에 위치한 노바티스 캠퍼스/사진= 박미주 기자



연구개발에 연 12.7조 투자, 노바티스가 살아남는 비결


② 노바티스 천연물신약·생체분자화학부문 전무 인터뷰

필립 크라스텔 노바티스 천연물신약·생체분자화학부문 전무/사진= 박미주 기자
필립 크라스텔 노바티스 천연물신약·생체분자화학부문 전무/사진= 박미주 기자
"2023년 454억달러(약 67조600억원)의 매출 중 20%가량인 86억달러(약 12조7000억원)을 핵심 연구개발(R&D)에 투자했습니다. 전 세계 노바티스 직원 중 약 23.1%인 1만8000여명이 R&D에 근무합니다. 삶의 방식을 바꾸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게 노바티스의 성장 비결입니다."

필립 크라스텔 노바티스 천연물신약·생체분자화학부문 전무가 최근 스위스 바젤시 내 노바티스 캠퍼스에서 진행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외부 파트너와 협력하고 신약 발굴과 초기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임상 연구 단계까지 86억달러를 투자한다. 이는 한국 정부가 지난해 바이오헬스 R&D에 투자한다고 밝힌 예산 2조2138억원의 5.5배 수준이다. 노바티스의 R&D센터는 스위스, 미국, 슬로베니아, 중국 등 4개국에서 5개소를 운영 중이다.

노바티스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연속 전 세계 상위 25개 다국적 제약사 중 가장 많은 신약후보물질(파이프라인, 2022년 213건)을 보유한 기업으로 꼽힌다. 2023년 기준 109건의 임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면역(25.7%) △고형암(24.8%) △심혈관계, 신장·대사(14.7%) △기타(13.8%) △혈액(11.9%) △중추신경(9.2%) 부문 순으로 신약후보물질을 개발 중이다. 단 한 번 투약으로 소아 척수성 근위축증 질환의 진행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는 혁신 신약인 유전자 치료제 '졸겐스마'를 탄생시킨 성과도 있다.
노바티스 개요/그래픽=이지혜
노바티스 개요/그래픽=이지혜
크라스텔 전무는 "환자들에 필요한 약물을 개발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환자 중심으로 접근해 회사를 키워나갔다"고 말했다. "예컨대 2001년 최초 암 표적 치료제(티로신키나제억제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글리벡'은 이전에는 사망에 이르던 만성골수성 백혈병을 관리할 수 있는 질환으로 변화시켰다"며 "지난해 10월에는 FDA 승인을 받은 최신 치료제 '셈블릭스'로 치료 기준을 높이는데 기여했다"고 부연했다.

최근에는 △방사성리간드 치료제(RLT) △리보핵산(RNA) 치료제 △세포·유전자 치료제 분야에 특히 집중하고 있다. 크라스텔 전무는 "방사성리간드 치료제는 암세포만 찾아 정밀하게 세포를 죽이고 정상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는 기술로 노바티스가 선도하는 분야로, 시장에서 두 가지 방사성리간드 치료제를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RNA 치료제는 신체의 생리학적 경로를 수정해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최근 스위스 슈바이처할레에 최신 시설을 설립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치료제('렉비오')의 주성분 물질을 생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렉비오는 콜레스테롤을 제거하지 못하게 막는 단백질을 차단해 고지혈증을 치료하며 1년에 두 번만 투여하면 되는 신약이다. 이외에 최초의 키메릭항원수용체(CAR)-T세포 치료제로, 한 번 투여로 대량의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백혈병 치료제 '킴리아'는 북미, 아시아, 호주, 유럽 등 4개 대륙에서 승인됐다고도 했다.
노바티스 연구시설 내부 모습/사진= 노바티스
노바티스 연구시설 내부 모습/사진= 노바티스
비만치료제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크라스텔 전무는 "비만치료제가 미래에 중요한 의약품군이 될 것으로 보고 새로운 작용기전 등을 통한 투여빈도 감소, 향상된 내약성, 근육보존 특성과 같은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다"며 "내부 연구뿐 아니라 초기단계 연구 협업도 하고 있다"고 했다. 생물학적 제제나 짧은간섭리보핵산(siRNA)을 활용한 작용제를 연구 중이다.

첨단기술에도 투자한다. 크라스텔 전무는 "R&D전략을 지원하기 위해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에 투자해 혁신적인 의약품을 환자에게 더 빠르게 제공하려 한다"며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업으로 새로운 소분자 약물 후보를 발견하는 방식을 확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300개 이상의 학술기관과 100개 이상의 산업 협업을 포함하는 글로벌네트워크와 함께 하고 있다"며 "2025년에는 집중치료 분야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을 우선순위 시장으로 선정하기도 한 노바티스는 한국 정부, 의료계 등과 협업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서울바이오허브와는 국내 혁신기업의 기술사업화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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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사진 바젤(스위스)=박미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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