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칼럼]
최근에 참 신기한 경험을 했다. 한동안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을 찾지 못했던 사업적 고민이 있었는데 채용 면접 중 한 지원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상대방이 기가 막힌 타개책을 직접적으로 제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혀 다른 주제로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불현듯 '이런 사람을 영입하면 그 문제 또한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면접이 끝나고 같이 심사를 진행한 이사들에게 의견을 물어봤는데 놀랍게도 다 같은 마음이었다.
단순한 사건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그간의 경영 방식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깊게 고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동안은 세세한 사안까지도 직접 관여하여 전략을 도출하여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고 하면, 이제부터는 이를 대신하여 완성하고 해소해줄 수 있는 인재를 찾는데 집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자체가 해답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 본인이 답을 찾지 않아도 조직은 답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한 인재 유치, 그리고 권한 위임에 대한 명언들은 너무나 많고, 어떻게 보면 당연한 원리다. 하지만 왜 창업 전선에 뛰어든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야 이를 체감하게 된 것일까? 부끄러우면서도 나름의 핑계는 있다. 필연적으로 창업은 창업가의 전문성과 아이디어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고, 사업 초창기에는 소수의 창업 멤버들의 실무 역량을 중심으로 성장이 이루어지는데, 그 기간을 거치며 초기에 형성된 실무적인 업무 관성이 고착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 관성을 추동하는 에너지가 순수한 열정뿐이면 좋겠는데, 불안과 강박과 같은 불순물도 많이 개입되어 있을지 모른다. 리더로서 본인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 본인이 직접 만들고 개발해야지 품질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본인이 계획한 대로 일이 풀려야지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지난 10년 동안 여러 위기를 겪고 기업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면서 이러한 상념들이 필자의 무의식과 내면에 어느 정도는 뿌리를 내렸다고 본다.
기고를 준비하면서 지난 1년 동안 필자가 작성한 각종 사업계획서와 보고서를 집계하는 시간을 가졌다. 수 백개에 달하는 파일과 수천 장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보면서,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보다는, 본인 자신이 실무에 너무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그만큼 기업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살피고 이에 걸맞은 체계와 구조를 확립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라도 근본적인 역할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역할 변화 필요성은 비단 필자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사업 영역은 다변화되고 과제들은 늘어나기 마련이며, 창업가나 소수의 C 레벨들만으로는 모든 일들을 다 처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다른 많은 창업가 또한 실무와 위임의 경계선상에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 본다. 익숙한 일들을 내려놓고 이를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맡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를 수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결심이 필요한 대목이라 생각한다.
한순간에 조직 구조와 업무 수행 체계를 전부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기업별로 맥락에 맞춰 부분적이더라도 사업 목표를 설정하여 권한과 책임에 대한 위임을 연습해보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적재적소에 적용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다 보면 조직 전체에 크고 작은 리더들이 자라날 것이라고 믿는다. 필자부터 이제는 파워포인트를 내려놓고, 사람을 바라보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겠다. 좋은 사람들을 모으고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체계와 환경을 만드는 것도 창업가의 중요 역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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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박재준 앤톡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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