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4人 "선거와 과학 다르다…R&D 예산삭감 韓에 타격"

김인한 기자 기사 입력 2023.09.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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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예산 일괄삭감 후폭풍] 노벨과학상 수상자 일제히 우려…"기초과학 100배 넘는 이득, 그러나 시간 필요"

왼쪽부터 콘스탄틴 노보셀로프(Konstantin Novoselov)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 조지 스무트(George Smoot) 홍콩과학기술대 교수, 마이클 레빗(Michael Levitt)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요하임 프랭크(Joachim Frank)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한국의 R&D(연구·개발) 예산삭감 문제에 일제히 우려를 나타냈다. 노보셀로프 교수와 스무트 교수는 노벨물리학상, 레빗 교수와 프랭크 교수는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글로벌 석학이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한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 2023'에 참석한 이들은 한국 언론과 다양한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사진=김인한 기자
왼쪽부터 콘스탄틴 노보셀로프(Konstantin Novoselov)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 조지 스무트(George Smoot) 홍콩과학기술대 교수, 마이클 레빗(Michael Levitt)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요하임 프랭크(Joachim Frank)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한국의 R&D(연구·개발) 예산삭감 문제에 일제히 우려를 나타냈다. 노보셀로프 교수와 스무트 교수는 노벨물리학상, 레빗 교수와 프랭크 교수는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글로벌 석학이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한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 2023'에 참석한 이들은 한국 언론과 다양한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사진=김인한 기자

"과학적 결과물이 나오는 주기와 선거의 주기는 다르다. 4~5년만에 과학적 성과를 내기 굉장히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과학계는 항상 남는 예산을 할당받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사실은 아니지만 한국의 R&D(연구·개발) 예산삭감은 굉장히 안타깝다. 이는 한국 과학계에 전반적으로 타격을 입힐 것이다."

콘스탄틴 노보셀로프(Konstantin Novoselov)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내년도 한국 정부의 R&D 예산삭감 결정'을 이같이 우려했다. 노보셀로프 교수는 2010년 '꿈의 물질'로 불리는 그래핀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글로벌 석학이다.

노보셀로프 교수는 2016년부터 울산과학기술원(UNIST) 특훈교수를 맡고 있는 대표적 '지한파'다. 그는 "한국의 동료들이 최근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중앙정부가 경각심을 가지고 과학에 투자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년도 정부 R&D예산을 올해 대비 5조2000억원(16.6%) 깎은 25조9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이중 기초연구 사업 예산도 올해 대비 1537억원(6%) 감액돼 논란이 일고 있다.



"전후 빈곤국가 한국, 과학기술 투자로 컸는데…"



국가 예산 총지출 대비 '5% 투자' 기조가 무너졌다. 특히 1991년부터 양적 증가를 거듭하던 R&D 예산안이 줄어든 건 33년 만이다. / 그래픽=조수아 디자인기자
국가 예산 총지출 대비 '5% 투자' 기조가 무너졌다. 특히 1991년부터 양적 증가를 거듭하던 R&D 예산안이 줄어든 건 33년 만이다. / 그래픽=조수아 디자인기자

조지 스무트(George Smoot) 홍콩과학기술대 교수도 R&D 예산삭감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스무트 교수는 2006년 초기우주과학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특히 2008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기초과학 연구 예산이 줄어들자, 대통령에게 예산 복구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20인의 노벨상 수상자 중 1명이다.

스무트 교수는 "과학과 산업 발전을 위해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며 "한국은 1960년대부터 대대적으로 과학기술에 투자했고 이를 통해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뤄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이 전후 빈곤국가에서 현재 GDP(국내총생산) 기준 경제 10위 대국이 된 것은 대단한 성과"라며 "천연자원이 없는 한국이 인력교류와 과학기술 분야에 집중 투자했기 때문에 이런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초과학에 투자하면 100배 넘는 이득을 볼 수 있지만 문제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기업이 즉각적 성과와 이득을 내야 한다면, 정부는 장기적인 투자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초과학 분야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무트 교수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이화여대에서 초기우주과학기술연구소장을 맡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하지만 최근 한국의 R&D 예산삭감으로 공동 프로젝트가 중단된 사례를 언급하며 투자 복구가 필요하다고 봤다.

2013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마이클 레빗(Michael Levitt)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도 "한국은 역사적으로 과학기술 R&D 예산을 굉장히 크게 할당했다"면서 "현 정부의 R&D 예산삭감 배경에 타당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결코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키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 미래에 중요한 요소는 교육과 과학기술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특정방향으로 연구 밀어붙이면 안 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R&D 제도 혁신 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예산을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뉴시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R&D 제도 혁신 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예산을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뉴시스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위해선 정부가 특정 방향으로 연구를 밀어붙이면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정부는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예산을 집중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보단 자율성을 보장해 새로운 발견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2017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요하임 프랭크(Joachim Frank)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정부의 과학기술 투자가 과학자들에게 압력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며 "특히 정부가 특정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길 바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봤을 땐 주류에 속하지 않는 과학적 연구들이 오히려 더 큰 중요한 성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며 "연구 자율성은 굉장히 중요하며 설령 실패하더라도 처벌하지 않는 평가체계가 중요하다"고 했다.

노보셀로프 교수도 최근 LK-99 상온·상압 초전도체 사례를 들며 "새로운 발견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른다"며 "지식과 경험이 누적되면서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부의 꾸준한 기초과학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기자 사진 김인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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