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무너지는 '종이빨대' 산업(상)
[편집자주] 정부가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못하도록 한 규제를 철회했다. 2023년 11월의 일이다. 정부 말만 믿고 '종이빨대' 생산 설비를 늘리고, 직원도 뽑은 중소기업들은 벼랑 끝에 몰렸다. 갑작스러운 정부 정책 변경이 관련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친환경 빨대 제조사들이 처한 상황을 중심으로 들여다봤다.
![종이빨대 제조사 19곳 전수조사/그래픽=이지혜](https://thumb.mt.co.kr/06/2025/02/2025020819571297712_1.jpg/dims/optimize/?1739081829)
◆ 종이빨대 기업 19곳 중 12곳 생산 중단
8일 머니투데이가 지난해 초 기준 전국에 존재하던 종이빨대 제조사 19곳을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규모가 비교적 큰 서일·리앤비·폴메이드·홍익씨엠에스·씨엔제이글로벌·코스코페이퍼·유엠씨 7곳(36.8%)을 제외하고 나머지 업체의 경우 짧게는 지난해 7월, 길게는 재작년 11월부터 종이빨대 생산을 중단했다.
일각에선 종이빨대 업체들이 '본래의 플라스틱 빨대 회사로 돌아갔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들의 과반인 최소 12곳(63.2%)이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를 사업 기회로 여겨 2018년에서 2023년 사이에 창업한 회사들이다. 부채 때문에 사업을 놓지 못하지만 활로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서울의 제이포레스트는 지난해 8월 폐업했다. 남은 업체들도 사업자등록은 살아있지만 공장 가동을 못하고, 회사에 직원 없이 창업주와 특수관계자들만 남아있다. 재고 소진도 벅찬 상태가 이어지면서 업계에선 서로 "망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기도의 어메이징페이퍼도 "폐업 신고를 아직 못했다"고 현재 분위기를 전했다. 부산의 A사는 재고를 원가보다 낮게, 때로는 아예 무료로 떠넘기고 있다. 충남의 두리사랑은 창업자의 신용대출로 대출이자를 감당하고 있다. 공장에 빨간딱지가 붙은 충남 누리다온은 자녀 이름의 적금을 깼다.
앞서 정부는 플라스틱 빨대를 규제하겠다고 발표했다가 2022년,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연기했다. 두번 모두 예고없이 시행을 2~3주 남기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종이빨대 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현재 관련 규제는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다. 경기 포천의 N사는 공교롭게 규제 연기가 발표된 날 생산기계의 수입통관이 끝났다. 기계는 가동도 못했고, 투자금 약 30억원이 고스란히 부채가 됐다.
◆ 재기 막는 악순환.."현금흐름 적다고 입찰 떨어져"
지난 1년 동안 업계는 출혈 경쟁을 해왔다. 충남 아산의 씨엔제이글로벌은 올해 '스타벅스' 입찰에서 떨어진 후 폐업을 고민 중이다. 경쟁사가 단가를 25% 낮춘 탓에 가격경쟁에서 밀렸다. 이 업체의 주기성 이사는 "정상가 입찰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입찰에 실패하면 납품 실적이 적어져 다음 입찰도 따내기 어려워진다. 현재 종이빨대 내수는 스타벅스·투썸플레이스와 같은 유통사 10여곳이 차지하고 있다. 입찰경쟁에 참여하려면 재무건전성 지표를 제출해야 하지만 수요 급감 탓에 상당수 업체는 기준 미달로 입찰에 참여조차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충북 진천의 폴메이드는 미국의 거대 프랜차이즈 '인앤아웃'과 대규모 판매 계약을 논의했으나 납품 실적이 부족한 탓에 무산됐다. 또다른 업체는 스타벅스에 납품하지만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다. 부산에서 유엔(UN)의 플라스틱 감축 협약이 열리면 정부가 규제 논의를 재시작할 가능성이 있어 1년간 사업을 유지했으나 이제 폐업을 검토 중이다. 해당업체 대표는 "앞으로 규제를 한다는 건지, 마는 건지 정부는 말도 없다"며 "이런 불확실성 속에 어떻게 사업을 하나"라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2023년에 "규제를 철회한 것은 아니다"며 "일회용품 감량은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일회용품을 어떻게 감량할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종이빨대 업계는 사업을 접지도, 계속하지도 못하고 있다.
개성공단 사례처럼 보상으로서 사태를 매듭지어주길 바라는 분위기도 있다. 한 종이빨대 업체 대표는 "앞으로 친환경 사업은 안하겠다고 각서라도 쓰겠다"며 "다시 재기만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지원이라도 해달라"고 호소했다.
'종이빨대' 정책 방향 어디로?..."불확실성 없애야"
![(부산=뉴스1) 윤일지 기자 = 2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열린 유엔 플라스틱 오염 국제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 공식 개막 기자회견에서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이 발언하고 있다. 내달 1일까지 열리는 INC-5에는 약 170개 유엔 회원국 정부대표단과 31개 국제기구, 산업계·시민단체·학계 등 이해관계자 약 3500명이 참석해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논의하고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힘을 모은다. 2024.11.2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부산=뉴스1) 윤일지 기자](https://thumb.mt.co.kr/06/2025/02/2025020819571297712_2.jpg/dims/optimize/?1739081829)
당시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 전 세계가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하고, 우리 정부도 이에 동의한다는게 기본적인 입장"이라면서도 "국가별 상황을 고려했을 때 직접적이고 획일적인 생산 규제는 어려운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만 바라보던 종이빨대 등 친환경 빨대 제조사들은 허탈했다. 이 회의 결과에 따라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려고 했지만 또 아무런 대책없이 기다려야하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당초 2023년 11월24일부터 편의점과 음식점 등에서 사용하는 비닐봉지와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접시, 나무젓가락, 이쑤시개 등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할 방침이었다. 2022년 제도 도입을 추진했으나 현장 혼란을 우려해 지난 1년간 계도기간을 가졌다.
하지만 규제 시행을 앞둔 2023년 11월 플라스틱 등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무기한 연기했다. 소상공인 비용 부담과 소비자 불편을 이유로 내세웠다. 환경부는 "소비자는 종이 빨대가 음료 맛을 떨어뜨리고 쉽게 눅눅해져 사용하기 불편하단 입장"이라며 "일부 사업자는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가격이 2.5배 비싼 종이 빨대를 구비했으나 고객의 불만을 들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이후 1년 넘게 별다른 정부의 움직임은 없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이 이어지고 있어 정부가 관련 정책을 적극 추진하긴 힘들어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이 제도와 관련해 특별히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친환경 빨대의 품질 문제와 소상공인 경영여건 등 시장 상황, 소비자 수용성 등 다양한 문제가 혼재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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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안은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빨대 가릴 것 없이 일회용품이라면 '유상제공'하는게 골자로 돼 있다. 김 의원이 나름 제시한 해결책으로 볼 수 있는데, 종이빨대를 비롯해 생분해 플라스틱 빨대를 향한 반발이 워낙 큰 상황을 감안해 이를 무작정 강제하지 말고 "1회용 빨대를 사용할 땐 돈을 내고 쓰게 하자"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하면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는 국제적 흐름에 동조하고 종이빨대 등에 대한 안좋은 여론을 잠재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 의원은 "1회용품 유상제공 정책은 소비자 선택을 앞세우기 때문에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일 수도 있고, 종이빨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없앨 수 있다"며 "탄핵 국면에서 정부가 일회용품 규제를 어떻게 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는 상황인데 기업들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불확실성을 해소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자 사진 김성진 기자
- 기자 사진 유예림 기자
- 기자 사진 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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