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할 땐 천사더니 지급할 땐 악마다."

백내장 미지급 보험금 피해자들이 보험금 지급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든 피켓 문구다. 보험금 지급 문제는 금융소비자들의 단골 민원 1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금융소비자 민원 중 '보험금 산정 및 지급' 민원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2020년 실손보험금 지급을 위해 조사가 필요할 경우, 소비자가 조사를 담당하는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는 '손해사정 선임권 제도'를 도입했다. 손해사정사 선임 비용도 보험사가 지급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해당 제도를 잘 알지 못하는 데다 보험사들이 소극적으로 안내해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설립된 어슈런스는 실손보험 손해사정 시장의 디지털 전환을 꾀하는 스타트업이다. 소비자와 손해사정사를 매칭해주는 플랫폼 '올받음'을 운영하고 있다. 염선무 어슈런스 대표는 "소비자들이 손쉽게 손해사정사를 선임하고 손해사정사들도 업무의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창업에 나섰다"고 했다.
'유명무실' 손해사정 선임권 제도, 올받음 출시 후 선임건수 1.8배↑

보험사는 통상 △가입한 지 2~3년 내 보험금 청구 △고가의 수술 △피부·도수치료 등 반복적 치료 등에 해당할 때 보험금 지급 전 현장조사를 한다. 소비자는 보험사로부터 현장조사가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으면 3영업일 내에 손해사정사를 선임해야 한다.

염 대표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손해사정사가 있는지도 잘 몰라 보험사가 위탁한 손해사정사를 선임하게 된다"며 "그렇다 보니 손해사정사 선임권 제도가 있어도 선임 건수가 매우 적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 추산하는 국내 독립 손해사정사는 2000명으로 전체 손해사정사의 5분의 1 수준이다. 손해사정사들은 번거로운 업무 절차 대비 낮은 보수로 독립 손해사정 업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주요 보험사 경영공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들이 독립 손해사정사를 직접 선임한 건수는 180여 건에 불과했다.

이에 어슈런스는 지난해 12월 고객과 변호사를 연결해주는 법률서비스 플랫폼처럼 실손보험금 지급 관련 손해사정사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서비스 '올받음'을 출시했다. 소비자의 반응도 뜨겁다. 지난 10월 기준 올받음의 누적 손해사정사 선임 건수는 323건으로 지난해 전체 선임 건수의 1.8배에 달한다. 올받음을 통한 보험금 지급율은 약 90% 정도다.

그는 "창업 초기, 보험금 분쟁에서 이기기 쉽지 않은 오십견으로 도수치료를 받은 70대 여성의 의뢰를 직접 맡은 적이 있다"며 "주말에도 의학 논문을 찾고 보험약관을 분석하면서 손해사정 한 결과, 보험금을 모두 받았는데 최근에도 고맙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제 막 걸음마 뗀 손해사정 시장…자동차보험 등 사업 확대 계획"

7년간 보험업계에 몸담은 염 대표는 손해사정사이기도 하다. 창업 초반 혼자 10여 건을 처리하면서 입소문이 나자 다른 손해사정사들도 플랫폼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현재 올받음에 소속된 손해사정사는 약 30명이다.

어슈런스는 독립 손해사정사를 위한 업무 자동화 솔루션 '왓슨'도 출시했다. 소비자와 대면 계약을 비대면으로 진행하거나 소비자가 이용한 병원을 방문하는 현장 조사를 지역별로 여러 건을 한 번에 묶어 배정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손해사정 한 건당 14시간 걸리던 업무시간이 약 7시간으로 절반 가량 줄었다.

염 대표는 "예컨대 서울 관악구의 사건을 담당하는 손해사정사에게 인근 지역의 의뢰 건을 배정하면 하루에 현장조사를 더 많이 할 수 있어 보수도 높아진다"며 "보험사가 내는 손해사정사 선임 비용은 고정돼 있기 때문에 정보통신(IT) 기술을 활용해 독립 손해사정사의 업무 생산성을 높여 시장에 참여할 유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염 대표는 올받음을 통해 손해사정사 선임권 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손해사정사 선임권 시장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라며 "금융소비자들이 올받음을 통해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손해사정을 받도록 지원하고 향후 자동차보험 손해사정 등 사업 영역도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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