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백수 때 찾은 사업모델...어르신들 '100세 시대 희망' 됐다

최태범 기자 기사 입력 2022.09.2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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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UP스토리]이진열 한국시니어연구소 대표 인터뷰

이진열 한국시니어연구소 대표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이진열 한국시니어연구소 대표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스타트업 '한국시니어연구소'는 사명만 놓고 보면 대학에서 노인복지학과를 전공했을 법한 석박사 출신의 나이 지긋한 중년이 대표(CEO)를 맡고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1989년생인 30대 청년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2019년 한국시니어연구소를 설립한 이진열 대표는 연쇄 창업가다. 서울대 종교학과 재학 중이던 2013년 K-팝 팬덤 서비스 '마이돌'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누적 다운로드 1400만건을 기록할 만큼 인기를 끌었으나 수익모델을 만들지 못해 결국 실패의 쓴맛을 봤다.

이진열 대표는 백수가 된 후 자신의 삶과 사업을 돌아봤다고 한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왜 실패했는지 치열하게 탐구했고 △시장이 확실한 사업 △기술력으로 시장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사업 △돈을 벌 수 있는 사업모델(BM)로 재창업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찾은 분야가 '실버산업'이다. 이 대표는 실버산업 시장조사를 하면서 재가(在家) 요양 서비스에 대해 알게 됐고, 2000만원을 들여 5개월간 방문요양센터 '스마일시니어'를 오픈하고 관악구 센터장으로 일하면서 재가 요양 시장의 가능성을 봤다.

이 대표는 "요양센터를 개설해 운영하면서 요양보호사도 구해보고 매칭도 해보고, 어르신들을 병원에 모셔가면서 시장의 가능성을 알게 됐다. 굉장히 어려운 분야이기에 혁신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다고 생각해 요양센터를 접고 한국시니어연구소를 창업했다"고 밝혔다.


재가요양 시장 디지털 전환



국내 요양 서비스 시장은 10조원 규모로 추정되며 이중 재가 요양 시장은 약 5조원 규모에 달한다. 방문요양 서비스는 노인장기요양 산업의 약 70%를 차지하는 시장이다. 이 영역의 가장 앞단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2만여개에 달하는 방문요양센터들이다.

방문요양센터는 노인들의 집으로 요양보호사가 직접 방문해 식사·목욕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비용의 85%는 국가가 지원한다. 하지만 영세기관이 대부분이고 종사자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서비스 질 저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한국시니어연구소는 방문요양센터를 넘어 재가 요양 시장에 디지털 전환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적인 방문요양 서비스 '스마일시니어'와 함께 1만여명의 요양보호사가 이용하는 구인구직 서비스 '요보사랑'을 운영한다.

또 방문요양센터에는 행정업무 자동화 솔루션(SaaS) '하이케어'를 공급한다. 직영 센터와 파트너 센터를 합해 약 60여곳의 스마일시니어 방문요양센터가 하이케어를 사용한다. 그간 수기로 이뤄지던 업무들을 자동화해 요양보호사들이 돌봄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행정·인력 문제 심각, 새로운 사업 일으킬 기회"



스마일시니어 주요 지표
스마일시니어 주요 지표
이 대표는 "재가요양 시장은 앞으로 커질 시장이 아니라 이미 큰 시장이었고 선도 기업이 없었다"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수가 청구 등 행정업무도 복잡했다. 고객들이 들어와도 행정 비효율로 인해 더는 늘릴 수 없는 사례도 많았다"고 했다.

이어 "요양보호사를 할 수 있는 인력도 부족하다. 근로자들의 평균 연령이 50대 후반에 달해 노인이 노인을 돕는 '노노케어(老老CARE)' 상황"이라며 "다양한 문제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사업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로 봤다"고 덧붙였다.

한국시니어연구소는 방문요양센터의 브랜드화와 디지털 전환, 요양보호사 구인구직 문제 해소 등 서비스 공급자 측면의 BM 외에도 심신 기능이 저하된 노인들이 원활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복지용구' 수입 등 수요자 측면의 BM도 개발해 나가고 있다.

지난 5월 일본의 대표적인 실버용품 기업 '프랑스베드'와 계약을 맺고 요양용 전동침대 2종을 국내 독점 수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복지용구 유통사업을 본격화했다. 이번에 수입한 2종의 침대는 전국 요양시설과 고령자를 대상으로 판매 및 대여가 이뤄진다.

이 대표는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의 심사를 통과하면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가격은 이미 정해졌고 마지막 고시만 남겨놓은 상태"라며 "프랑스베드의 다른 주력 제품도 내년 3월을 목표로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접목, '휴먼터치' 강화



일본 프랑스베드의 낙상방지 전동침대 '플로어베드'
일본 프랑스베드의 낙상방지 전동침대 '플로어베드'
한국시니어연구소가 복지용구 수입에 나선 것은 단순히 커머스 관점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이 대표는 "모두 밸류체인이 연결돼 있다"며 "재가 요양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은 복지용구를 써야한다. 기존 제품은 품질이 낮기 때문에 직접 수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실버산업이 성장한 일본도 한곳의 큰 기업이 모든 사업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밸류체인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며 "요양보호사를 못 구하거나 복지용구 품질이 나쁘면 고객 경험이 떨어진다. 결국 포트폴리오를 골고루 갖추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AC)처럼 스마일시니어라는 브랜드가 방문요양센터를 성장시키는 AC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목표다. 그는 "파트너 센터들이 요양 시장에서 유니콘이 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기술로만 산업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 실버산업의 경우 '휴먼터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요양업무는 디지털화하고 소비자와의 접점은 휴먼터치가 필요하다. 실버테크는 아날로그와 휴먼터치를 강화하기 위한 기술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12개월 코스의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앱으로 나올 것 같지만 우리는 출판을 통해 종이로 만든다"며 "본질에 가장 가까우면서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가치를 휴먼터치를 통해 만들려는 방향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부연했다.


"실버산업에 상하수도 깔겠다"



이진열 한국시니어연구소 대표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이진열 한국시니어연구소 대표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한국시니어연구소는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시리즈A 단계까지 누적 123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투자에는 소프트뱅크벤처스, 해시드, 스프링캠프, 싱가폴 소재 가디언펀드,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패스트벤처스 등 쟁쟁한 벤처캐피탈(VC)들이 참여했다.

이 대표는 "당연히 돈을 벌고 싶고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면서 상장도 하고 싶다. 그런데 실버산업은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사회적 가치도 창출되는 특이한 분야"라며 "사회적으로 해결할 미션을 보조해가면서 사업을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사업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크게 2가지다. 그는 "일본 시니어 시장과 개호보험(장기요양보험)의 역사를 같이 만들어 간 회사 프랑스베드처럼 한국시니어연구소가 한국 장기요양보험의 역사와 함께한 회사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는 실버산업에 상하수도를 깔고 싶다는 것"이라며 "시장 경쟁이 과열되면 출혈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다른 회사들이 사업할 때 한국시니어연구소는 상하수도처럼 이용할 수 있는 반드시 필요한 회사로 남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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