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CVC 리포트]에이치지이니셔티브
대기업 계열 투자사 중 유일한 임팩트 투자사
인구·환경 등 사회적 문제 해결 스타트업 투자
10여년 임팩트 투자 확장, AUM 1100억 넘어
외부기관 출자사업 위탁운용, 스타트업 85곳 투자
[편집자주] 대한민국 대표 기업들이 운영하는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을 살펴봅니다. 될성부른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해 그룹과의 시너지를 모색하고 미래성장엔진을 확보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조직. 그들이 바라보는 스타트업 생태계와 벤처투자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 입니다.
[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HGI는 국내 임팩트 투자 생태계를 이끄는 대표 주자로 꼽힌다. /사진제공=HGI
# 아이돌봄 서비스 '째깍악어'와 돌봄공간 '째깍섬'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커넥팅더닷츠(옛 째깍악어)는 회사 설립 약 6개월 만인 2017년 2월 첫 기관 투자를 받았다. 아이와 돌봄교사 등 플랫폼 이해관계자 모두를 위한 서비스를 설계하고 다양한 교육 콘텐츠도 만들었지만 사업 확장 여력이 부족하던 때였다.
당시 째깍악어에 가장 먼저 손을 내민 투자사는 저출생 문제와 부모들의 행복한 양육 솔루션에 관심을 갖고 있던 에이치지이니셔티브(HGI)였다. HGI가 투자 물꼬를 트자 LG유플러스·하나증권·스마트스터디벤처스 등도 째깍악어에 자금을 댔다. 현재 커넥팅더닷츠의 누적투자유치액은 310억원(시리즈B), 기업가치는 50배 이상 높아졌다.
#노숙인을 고용해 종이옷걸이를 제작하던 스타트업 두핸즈(옛 두손컴퍼니)가 소규모 이커머스 사업자를 위한 물류서비스로 사업 전환을 하던 2015년, HGI는 첫 기관투자자로 사업 자금을 지원했다. 소상공인을 위한 창업생태계 조성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점이 결정적인 투자 요인이 됐다.
하지만 두핸즈는 2020년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고객사 물량이 전소하는 큰 위기를 맞았다. 회사 운영이 중단될 수도 있는 긴급한 상황에서 HGI는 분주히 움직였다. 주주 대응 메시지 작성, 긴급자금 대출 등을 도와 두핸즈의 신뢰가 흔들리지 않도록 했다. 이후 두핸즈는 매출액 400억원(2024년 기준)을 돌파했고 2년 연속 이익을 내는 흑자기업으로 성장했다.
현대해상 그룹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인 HGI는 국내 임팩트 투자 생태계를 이끄는 대표 주자로 꼽힌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투자사 중에선 유일한 임팩트 투자사다. 2014년 회사 설립 당시부터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양한 시도에 나섰다. 임팩트 투자는 단순히 수익만 추구하는 행위를 지양하고 사회나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착한 기업'에 돈을 대는 것을 말한다.
HGI가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자에 골몰하는 배경에는 모그룹의 보험업과도 연관이 있다. 정경선 HGI 설립자이자 현대해상 CSO(최고지속가능책임자·전무)는 고령화로 의료비용 폭증, 기후변화로 필수품 가격 상승, AI(인공지능) 개발로 양질의 일자리 소멸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투자와 창업 생태계 밑단에서부터 의미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2020년부터 HGI를 이끌고 있는 남보현 대표이사는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와 인터뷰에서 "한국 자본시장에서 임팩트 투자에 대한 정의가 생소하던 시절부터 HGI는 사회문제와 투자수익을 연결하는 고민을 해왔다"며 "지속가능성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인구구조나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사회 다양성을 포용하는 기술이나 서비스 등에 투자해 임팩트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 대표는 SK커뮤니케이션즈, LG전자, SK행복나눔재단을 거쳐 2016년 HGI에 합류했다.
━
10여년 '착한 투자' 발자취…운용자산 1000억 돌파
━
남보현 에이치지이니셔티브 대표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올해 회사 설립 11주년을 맞은 HGI의 AUM(운용자산) 규모는 1107억원에 달한다. 현재 운용 중인 펀드는 8개. 2019년부터 HGI 본계정 투자 외에 외부기관 출자사업 GP(위탁운용사)로 본격 나서며 규모가 커졌다.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한국산업은행·한국모태펀드 등이 인구·환경 등 사회문제와 관련된 출자사업 운용을 HGI에 맡겼다. 최근엔 서울시 사회적경제계정 '임팩트 약자동행 엔젤펀드(60억원)' 위탁운용도 맡아 오는 6월 신규 펀드를 결성할 예정이다.
HGI가 지금까지 투자한 스타트업은 85곳이다. 고령화·저출생 등 인구구조 변화 관련 투자 비중이 절반에 달한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주거·금융 문제와 클린에너지 등 환경 문제에 집중한 투자도 많다.
투자 시점은 시드~프리IPO 등 전 단계에 걸쳐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남 대표는 "지속가능성이라는 테마에 부합하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초기 투자하는 것을 지향하지만 출자자 수익 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투자단계를 엄격하게 구분하진 않는다"며 "한 업체당 투자규모는 평균 5억~20억원 안팎으로 후속 투자를 통해 규모를 키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
"임팩트 투자, 돈 안된다" 편견 깬다
━
에이치지이니셔티브 회사 개요 및 운용 펀드, 주요 투자 현황/그래픽=윤선정주요 포트폴리오 업체로는 커넥팅더닷츠와 두핸즈를 비롯해 메디픽셀( 의료기기에 AI 접목해 진단·시술 돕는 솔루션), 케어링(시니어 방문요양 종합 서비스), 플코스킨(연부조직 재건 의료기기 개발), 애즈위메이크(동네 식자재 마트의 디지털 전환 돕는 솔루션) 등이 있다.
이중 HGI가 투자사 중 최초로 자금을 댄 커넥팅더닷츠, 두핸즈, 메디픽셀 등의 기업가치는 수십배 성장했다. 메디픽셀에 투자한 자금은 8배 넘는 수익을 내고 일부 회수했다.
남 대표는 "임팩트 투자는 자선사업일 뿐 수익성이 없다는 편견이 많다"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건강한 비전을 가진 스타트업을 찾아 투자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안정적인 동반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이 더 큰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임팩트 투자한 업체 중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한다"며 "국내 임팩트 투자 시장이 더 커져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고 뛰는 스타트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