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과학기술 미래 R&D 혁신전략 국회 공동 포럼
"한 명의 과학자가 한 영역에서 꾸준히 연구하면, 적어도 1만명이 먹고 살 수 있는 기술 하나쯤은 나옵니다. 과학자가 '한 우물 파기'를 할 수 있는 R&D(연구·개발) 환경을 구축해야 합니다."
28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과학기술 미래 R&D 혁신전략 국회 공동 포럼'에서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은 "R&D 예산 증액 자체보단 R&D 시스템을 바꾸는 게 먼저"라며 이같이 말했다.
첫 발제자로 나선 문성모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연총) 회장은 "'초격차 기술'의 R&D 성공률은 0.01%인데 반해 국내 연구 과제 성공률은 99%"라며 "이는 처음부터 실패하지 않을 만큼 낮은 목표를 설정하거나 이미 결과가 검증된 과제를 신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자가 이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선 "연구비 수주를 잘하는 연구원이 우수한 연구원이라는 평가를 받는 R&D 시스템이 26년간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연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시 페널티(벌칙)를 주는 것보다, 잘하는 상위 20%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해 격려하는 게 혁신형 R&D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또 "연구자는 연구에 몰입해 성과를 내고, 국회와 정부는 연구자에게 적절한 자율성과 성과에 따른 보상을 부여하는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패널로 나선 이상래 아주대 의대 약리학 교실 교수(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원)는 지난해 과학계를 강타한 R&D 예산 삭감을 두고 "이 상황이 너무나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초유의 연구비 삭감 사태와 더불어 연구비 수주를 위해 벌어지는 과다 경쟁으로 연구 현장은 황폐화 됐고, 젊은 학생들은 연구비 복원을 부르짖는데 원로 과학자 등 과학계 주류 세력은 '묵언 수행'을 해왔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나갔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17년간 근무하다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한국에선 소위 '있어 보이는' 연구 주제거나, 선진국이 하는 연구가 아니고선 연구비를 따올 수가 없다"며 "선진국의 연구를 추격하다 약간의 성과가 나오면 기뻐하는 현 체계에선 선진형 R&D로 도약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변의 연구자들과 소통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한 명의 과학자가 한 영역에서 30년간 꾸준히 연구하면 적어도 1만 명이 먹고 살 수 있는 기술 하나쯤은 나온다는 것"이라며 "(연구자에게)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지원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 우물 파기 연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과학기술 지식재산(IP)권 보호 관련 지적도 나왔다. 발제자로 참석한 홍장원 대한변리사회 고문은 "한국은 기술 특허출원 신청 건수가 연간 25만건에 달할 정도로 IP 강국이지만, 특허침해소송을 벌이기엔 힘든 구조여서 90%는 소송을 포기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송을 시작하는 데만 최소 1억원이 드는데, 1심 판결이 나오는 데 2년 가까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연구원이나 중소기업 입장에선 최종 판결이 나올 데까지 약 7년이 걸리는 데다 이길 확률이 7.7%에 불과하고, 평균 배상액도 1억원인 특허침해소송에 도전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에도 기술 분쟁 전문 법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특허법원이 있지만, 기술적인 부분을 다루는 특허소송인만큼 과학기술 전문가가 없인 사안을 명확히 다루기 힘들다는 것이다. 홍 고문은 "유럽에서도 2023년 유럽통합특허법원(UPC)이 출범했는데, 한국도 기술 주권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포럼을 주최한 이상목 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 상임대표는 "한국 R&D에도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독일 연구회의 '자율성 원칙'이 도입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동 주최한 김종민 새로운미래당 의원은 "R&D 예산의 심사 구조와 체계부터 바꿔야 한다"며 "한국의 미래를 바꿀 R&D가 어떤 것이며 이를 어떻게 살릴지에 대한 지혜를 모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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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박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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