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파괴 알바에 직원들 '추노'…이것 입혔더니 "놀랍다" 만족[월드콘]

김종훈 기자 기사 입력 2024.01.1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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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화물 옮기기 관련 사고로 연 17조 피해…
벌브 모션, 신체 하중 줄여주는 '입는 기기' 개발

[편집자주] 전세계에서 활약 중인 '월드' 클래스 유니'콘', 혹은 예비 유니콘 기업들을 뽑아 알려드리겠습니다. 세상에 이런 게 있었나 싶은 기술, 이런 생각도 가능하구나 싶은 비전과 철학을 가진 해외 스타트업들이 많습니다. 이중에서도 독자 여러분들이 듣도보도 못했을 기업들을 발굴해 격주로 소개합니다.
벌브 모션의 엑소슈트 '세이프리프트' 홍보 이미지./사진=벌브모션 인스타그램 계정 갈무리
벌브 모션의 엑소슈트 '세이프리프트' 홍보 이미지./사진=벌브모션 인스타그램 계정 갈무리
'추노'는 조선시대 탈주 노비를 소재로 한 TV 드라마다. 현재는 일에 지친 아르바이트생이 고용주가 안 볼 때 슬쩍 사라지는 행동을 뜻한다. 주인 눈치를 살피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노비의 모습이 아르바이트생 처지와 닮았다는 이유에서 이 단어를 쓰는 듯하다. 허리 부담이 큰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다 '추노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추노' 부르는 허리 파괴 알바…미국도 '128억 달러 피해' 골머리


미국 물류사업도 허리가 문제다. 미국 손해보험사 리버티뮤추얼은 지난 10월 발간한 산업현장안전지표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10대 사고유형과 피해 규모를 집계했다. '5일 이상 일이 불가능할 정도의 중상으로 이어진 사고'를 기준으로 삼았는데, 지나치게 무거운 화물을 옮기려다 사고를 당한 경우가 가장 큰 피해를 초래했다. 치료비와 임금손실 등 피해 규모는 총 128억4000만 달러(약 17조원)에 달했다.

보스턴다이나믹스 등 로봇업체들이 물류창고의 완전 자동화를 목표로 화물운송 로봇을 개발하고 있으나,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배송할 물건을 찾아 포장대에서 안전하게 포장하는 작업은 로봇이 수행하기 버겁다. 이에 웨어러블 기기 스타트업 '벌브 모션'(벌브)은 '인간 대체'가 아닌 '인간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아이언맨 슈트' 꿈꾸던 로봇 박사, 물류 근로자 위한 '엑소슈트' 개발


벌브를 창업한 이그나시오 갈리아나 CEO는 스페인 마드리드 공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코너 월쉬 하버드 교수팀과 함께 하버드 바이오디자인 랩을 시작했다. 가슴에는 영화 아이언맨의 슈트처럼 누구나 착용 가능한 첨단 웨어러블 로봇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었지만 사업은 현실. 장거리 행군, 환자 재활 등 특수한 목적을 위한 실용적 기기를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고개를 돌리자 새 목표가 보였다. 웨어러블 개발 과정에서 기기를 이용하면 체력 부담 없이 근력을 30~40% 끌어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갈리아나 CEO는 물류산업으로 시선을 돌렸고, 직접 현장을 견학하면서 창고 근로자들을 위한 기기를 발명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탄성한 기기가 엑소슈트(웨어러블 기기) '세이프 리프트'다.

벌브모션의 엑소슈트 '세이프리프트' 시연영상. /사진=벌브모션 유튜브 계정 영상 갈무리
세이프리프트는 등에 메는 미니 기중기라고 생각하면 쉽다. 근로자가 팔에 짐을 들고 허리를 펴면 센서가 자세를 감지, 등에 있는 모터를 작동시킨다. 이때 모터가 허벅지에 착용한 밴드를 감아올려 허리를 펴주고 하중을 덜어준다. 갈리아나 CEO가 미국 대형유통업체 웨그너 뉴욕 창고를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창고 근로자들이 하루 옮기는 화물 중량은 총 5만 파운드(2만2679kg)로 집계됐다. 세이프리프트를 착용하면 똑같이 5만 파운드 화물을 옮기는 작업을 하면서도 신체가 감당하는 하중을 3만 파운드(1만3607kg)까지 줄일 수 있다고 갈리아나 CEO는 설명했다. 최대 40%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그는 지난달 포브스 인터뷰에서 "근로자 신체에 가해지는 수만 파운드의 하중 때문에 부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세이프리프트의) 원리는 자동차에 파워스티어링 옵션을 추가하면 운전이 쉬워지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뉴발란스 디자이너' 부른 이유


근로자들이 이용하려면 가볍고 편안해야 한다. 그래서 갈리아나 CEO와 월시 교수팀은 로봇공학자, 엔지니어들은 물론 스포츠웨어 뉴발란스 디자이너 출신 나탈리 다겐하르트 등 의류업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댔다. 사무실에 산업용 재봉틀을 들여 놓을 정도로 착용감을 중시했다고 한다.

미국 스타트업 벌브모션이 개발한 엑소슈트 '세이프리프트'를 입고 창고 작업을 하는 모습./ 벌브모션 인스타그램 계정 갈무리
2019년 미국 식품유통업체 아홀드 창고에서 시제품 시험이 진행됐는데, 착용한 근로자들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갈리아나 CEO는 설명했다. 사업성이 충분하다는 확신을 얻게 됐고, 3년 전 하버드를 나와 벌브를 차렸다.

벌브는 현재 월마트, 코스트코와 함께 미국 3대 유통체인으로 꼽히는 크로거를 비롯해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웨그먼스, 미국 전역에 2200개 넘는 지점을 보유한 유통체인 알버트슨 등 '큰손'들을 고객으로 보유하고 있다. 기기 1대당 월 350달러(46만원)부터 시작하는 이용료를 받는 구독형 사업인데, 이미 20개 이상의 고객사에서 1000대 이상의 기기를 주문했다고 한다. 이용료는 직원이 부상을 입었을 경우 드는 비용, 이에 대비하는 보험료 등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다.

벌브는 지난달 투자금 2000만 달러를 유치하는 데 성공, 총 투자금을 4000만 달러(525억원)까지 불리는 데 성공했다. 포브스는 벌브의 기업가치가 1억 달러 이상이라고 평가했다.


근로자-고용주 윈윈…"산업현장 게임 체인저"


세이프리프트를 이용하면 근로자들은 허리 부상은 물론 피로를 덜 수 있고, 고용주는 작업 효율 상승과 함께 산업재해 처리 비용을 덜 수 있어 '윈윈'이라고 갈리아나 CEO는 설명했다. 그는 "고객사들은 세이프리프트 도입 6개월 만에 근로자들의 허리 부상이 65~85% 감소했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제값을 하는 안전용품"이라고 말했다. 현장 생산성 역시 5~7% 증가했다고 한다.

이번 투자에 참여한 사파르 파트너스 공동창업자 아루나스 체소니스는 지난달 하버드 기술개발국 소식지 인터뷰에서 "산업현장 안전과 생산성을 재구축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스타파 하르카르 알버트슨 자동화부문 부사장은 같은 인터뷰에서 "세이프리프트는 우리 현장에서 '게임 체인저'"라며 "벌브와 파트너십을 더욱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벌브는 허리뿐 아니라 어깨, 무릎까지 실리는 하중을 줄여줄 수 있도록 개량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갈리아나 CEO는 하버드 인터뷰에서 "전세계 근로자들이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인 산업현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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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사진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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