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또 터졌다"...극미량 측정 신기술에 반도체 공룡들 '러브콜'

대전=류준영 기자 기사 입력 2023.11.1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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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연 유량측정팀, 적외선 흡수 스펙트럼 기반 유량측정기술 개발
반도체 장비 개발사 에이지디와 11호 연구소기업 '퓨리센스' 설립
"의약품, 이차전지 등 글로벌 비접촉 측정 시장으로 사업영역 확장"

에폭시 디스펜서에 연결한 비접촉식 유량측정센서/사진=표준연
에폭시 디스펜서에 연결한 비접촉식 유량측정센서/사진=표준연

국내 연구진이 반도체 전체 공정 수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실시간·비접촉' 방식의 유량측정센서를 세계 최초로 개발, 상용화에 본격 나섰다. 이는 공정을 멈추지 않고도 디스펜서(에폭시 수지 등을 분사하는 장비)에서 토출되는 양을 안전하고 정밀하게 모니터링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세척, 식각공정 등에 쓰이는 황산 등 약액의 유량도 비접촉식으로 측정할 수 있다.

15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하 표준연)에 따르면 유량측정팀이 개발한 '적외선 흡수 스펙트럼 기반 유량측정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반도체 장비·부품 개발기업인 에이지디(AGD)와 함께 지난 5월 합작투자회사인 '퓨리센스'를 설립하고, 지난달 연구소기업 전환 신청을 했다. 이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연구소기업으로 정식 승인을 받으면 이 회사는 표준연 제11호 연구소기업이 된다. 연구소기업이란 공공연구기관이 개발한 기술을 직접 사업화하기 위해 설립 자본금 중 10% 이상을 출자해 연구개발특구 안에 설립하는 기업으로 각종 세제혜택을 받는다.

퓨리센스는 표준연과 함께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에폭시 수지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비접촉식 유량측정센서를 상품화할 예정이다. 에폭시 수지는 휴대폰 카메라 등 작은 부품을 부착하는 접착제로 쓰이거나, 반도체 소자를 고정하고 보호하기 위한 패키징 공정의 언더필(underfill) 수지로 사용된다.

표준연 유량측정팀이 비접촉식 유량측정센서의 측정값을 검증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웅 책임연구원, 이석환 선임연구원/사진=표준연
표준연 유량측정팀이 비접촉식 유량측정센서의 측정값을 검증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웅 책임연구원, 이석환 선임연구원/사진=표준연

이번 기술을 2017년부터 연구개발한 표준연 이석환 선임연구원은 "배관을 자르지 않고 배관에 탈부착하는 클램프온(clamp-on) 방식이라서 공정을 멈추지 않고도 디스펜서(에폭시 수지 등을 분사하는 장비)에서 토출되는 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고 현장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애초 이 기술을 마취·진통제 주사 등 의료 현장에 적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임상실험 등을 거쳐 실용화까지 적어도 10년 이상 걸리는 일을 중소기업 단독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데다 수요시장도 크지 않다고 지적한 표준연 기술이전그룹의 제안을 받아들여 반도체 분야로 방향을 틀었다.

반도체 업계는 디지털제품 소형화로 극미량의 에폭시 수지를 정확하게 토출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현재 제조현장에선 일본 등에서 전량 수입한 초음파 유량계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으나 극히 적은 유량은 측정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디스펜서를 공정에 투입하기 전 토출량을 저울로 미리 재는 간접적인 방식을 쓴다. 디스펜서로 에폭시를 도포하는 과정에서 에폭시가 굳어져 토출량이 부정확해지거나 간혹 노즐이 막혀 불량이 생기는 문제도 발생한다. 이 때문에 현장에선 공정을 멈추지 않고 토출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외선 흡수 기반 비접촉식 유량측정센서/사진=표준연
외선 흡수 기반 비접촉식 유량측정센서/사진=표준연
표준연 유량측정팀이 개발한 센서는 적외선 흡수 방식을 채택, 배관을 자르거나 공정을 중단하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유량을 측정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배관 외부에서 유체의 국소 부위를 레이저로 가열하고, 가열 전, 후 부위의 흐름을 적외선 흡수 기반의 온도센서로 측정하는 원리다.

연구진이 이 센서로 극미량의 디스펜서 토출량을 실시간 측정해 이를 기존 저울 방식과 비교한 결과 300Hz의 고속으로 토출되는 1μg(마이크로그램, 1g의 백만 분의 1) 수준의 극미량까지 정확히 측정했다. 실제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10μg ~ 수십 mg 수준의 토출량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표준연은 이 기술을 반도체 공정용 불소수지 밸브를 국산화한 경험이 있는 에이지디(AGD)와 합작 투자해 퓨리센스를 설립하고, 연구개발을 주도한 이 선임연구원을 CTO(최고기술책임자)로 선임, 본격적인 제품화를 위한 후속 R&BD를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퓨리센스 경영진은 2019년 약액용 압력센서, 불소수지 다이아프램 밸브 등을 국산화한 경험을 지녔다. 또 반도체 공정 설계·제작 관련 기업들과의 영업망도 갖춰 사업 초기 매출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석환 표준연 기술이전그룹장은 "국내 반도체 분야 대기업 여러 곳에서 연락받았고 A사의 경우 연구팀이 이 기술의 가능성을 확인해 갔다"면서 "A사에 300대 정도의 구매 조건부 계약과 NDA(비밀유지계약서) 체결을 제안해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문희정 퓨리센스 대표는 "반도체 대기업은 물론 디스펜서만으로 한해 약 4000억원 매출을 올리는 중소·중견기업들이 있는 데 이들이 주요 고객이 될 것"이라며 "생산물량은 1개 반도체 공정 당 400대꼴로 납품하며, 초기 연간 예상 매출액은 120억원 정도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단기적으로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에 제품을 공급해 수입 대체 효과를 목표로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이차전지, 의약품 등 다양한 산업에 적용해 글로벌 비접촉 측정시장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연구소기업은 특허청의 '지식재산 수익 재투자 지원사업'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산학연 공동연구법인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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