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
"유럽선 논문 많이 낸 교수는 마이너스…'소셜임팩트' 가중치"
산학연 협력 '확신' 갖게 할 다양한 정책 개발 최우선 돼야
"연구결과가 파급력 높은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국가·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임무중심 R&D'(연구개발)로의 전환을 미룰 수 없는 시점이다."
새로운 '산학연 협력모델'이 필요한 시대다. 지난 17일 열린 오상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를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오 원장은 이날 기후위기, 저출산·고령화, 전세계 경기침체 등을 해결할 과학기술 역할 확장을 강조하며 "외부 개방·협력 중심의 임무 수행으로 연구 성과의 사회적 영향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기침체, 고금리·고물가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줄줄이 도산하고 있다. 21일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법인 파산 접수 건수가 987건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이전(2019년 상반기 485건)의 두배가 넘는다. 이제 그저 그런 논문과 장롱특허만 양산하는 연구는 지양해야 한다. 살아남으려 필사적으로 몸부림 치는 기업들은 원천성이 매우 높은 초격차 기술이거나 바로 쓸 수 있는 성숙도가 높은 기술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전문가들은 공공R&D 성과에 맞는 민간 수요기업을 발굴해 기술을 중계하고 빠르게 이전하려면 효율적인 '산학연 협력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는 가용 가능한 혁신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으로, 그간 관련 정책 지원 수단이나 방법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적었다.
정지원 델프트공과대학교 산업디자인공학과 조교수는 지난 11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개최한 '제2회 세계 한인 과학기술인대회'에 전문가 패널로 참석, 산학연 협력을 유인하는 유럽의 정책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선 대학 박사과정의 52%가 산업체 펀딩을 받고 있다. 정부가 연구 과제 일부 예산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산업체 펀드를 매칭하는 구조로 이뤄진 탓이다. 정지원 조교수는 "네덜란드 필립스 헬스케어로부터 펀딩을 받아 1년 간 공동연구를 진행하면서 회사의 사업 방향성을 알게 됐고 제 연구과제와 산업과의 연계성도 매우 높아졌다"고 했다. 반면 한국연구재단이 재작년 발표한 '대학연구활동실태조사 분석보고서'에 의하면 우리 대학의 연구개발비는 7조9771억원으로, 이중 중앙정부 재원이 74%에 이른다. 민간은 16.8%, 교내는 5.4%, 해외 재원은 0.4% 정도다.
정 조교수는 국내 현행 교수평가시스템도 산학연 협력시스템에 맞춰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요즘 유럽에선 논문을 많이 내면 오히려 마이너스 점수를 받는다"며 "3년 내에 정말 임팩트가 높은 거 하나만 내라"는 충고를 듣기 일쑤라고 말했다. 논문 수 보다는 소셜임팩트(사회적 영향력)를 얼마나 만들었는지를 더 강조하는 분위기라는 설명이다. 여기서 사회적 영향력 평가는 △그린 전환 △디지털 전환 △회복력과 경쟁력, 포용성 등 3가지 기준으로 나뉜다. 정 조교수는 "예컨대 디지털 전환은 '닥터 AI'(인공지능)처럼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맞춤의학과 같은 솔루션을 일컫는다"며 "이 같은 ICT 기반 건강관리 도구를 개발하려면 산학연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가 독일 과학기술 선도기업 머크 라이프사이언스(머크사)와 첨단바이오 산업 분야 MOU(업무협약)을 체결했다. KAIST는 머크사가 제공한 화학·바이오 분야 포트폴리오를 이용해 합성생물학, mRNA(메신저리보핵산), 세포주 엔지니어링, 오가노이드(인공장기) 등 다양한 첨단바이오 분야 공동연구를 추진한다. 머크사는 KAIST 신소재공학과, 의과학대학원과 협력해 '익스피리언스 랩'을 설치하고, 재료과학 및 생물학 분야 후보물질 발견 및 분석 솔루션을 지원할 예정이다.
최문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은 이에 대해 "산학협력이 내수뿐 아니라 전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만큼 과기외교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심으로 산학연 협력이 이뤄졌다면, 앞으로는 외교부 등 관련 정부 부처, 기관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KIST의 경우 지난해부터 금양, 이수화학, 광동 등 8개 기업과 함께 '링킹랩' 사업을 펼치며 그 효과를 입증, 성공 가능성 높은 산학연 협력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링킹랩은 기술 수요자 중심의 연구개발을 위해 KIST와 기업이 공동연구실을 구축하고 단기간에 기술상용화를 이뤄내는 사업이다. 시행 1년이 지난 현재 38억원대 기술 이전 성과를 창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처음 '학연협력 플랫폼 사업단'을 시범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지역 대학과 출연연이 개방·협력해 지역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하는 내용으로, 충청권(충북대·원자력연·기초연), 대경·강원권(경북대·ETRI), 호남·제주권(전북대·KIST), 동남권(부산대·생기연)에 2027년까지 총 452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박춘욱 경북대 학연디지털융합스케일업플랫폼센터장은 "지역 대학과 출연연 지역분원, 지역 산단 간 보다 효율적인 협력 모델이 필요했다"며 "이참에 ETRI와 함께 공공첨단융합기술대학원 설립도 추진키로 했다"고 말했다.
산학연 협력은 기술경쟁 심화, 글로벌 미래 지형 변화가 빠르게 전개되는 이 순간에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혁신의 전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려면 현장에서 산학연 협력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할 정책 개발이 최우선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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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산학연 협력모델'이 필요한 시대다. 지난 17일 열린 오상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를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오 원장은 이날 기후위기, 저출산·고령화, 전세계 경기침체 등을 해결할 과학기술 역할 확장을 강조하며 "외부 개방·협력 중심의 임무 수행으로 연구 성과의 사회적 영향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기침체, 고금리·고물가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줄줄이 도산하고 있다. 21일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법인 파산 접수 건수가 987건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이전(2019년 상반기 485건)의 두배가 넘는다. 이제 그저 그런 논문과 장롱특허만 양산하는 연구는 지양해야 한다. 살아남으려 필사적으로 몸부림 치는 기업들은 원천성이 매우 높은 초격차 기술이거나 바로 쓸 수 있는 성숙도가 높은 기술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전문가들은 공공R&D 성과에 맞는 민간 수요기업을 발굴해 기술을 중계하고 빠르게 이전하려면 효율적인 '산학연 협력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는 가용 가능한 혁신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으로, 그간 관련 정책 지원 수단이나 방법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적었다.
정지원 델프트공과대학교 산업디자인공학과 조교수는 지난 11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개최한 '제2회 세계 한인 과학기술인대회'에 전문가 패널로 참석, 산학연 협력을 유인하는 유럽의 정책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선 대학 박사과정의 52%가 산업체 펀딩을 받고 있다. 정부가 연구 과제 일부 예산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산업체 펀드를 매칭하는 구조로 이뤄진 탓이다. 정지원 조교수는 "네덜란드 필립스 헬스케어로부터 펀딩을 받아 1년 간 공동연구를 진행하면서 회사의 사업 방향성을 알게 됐고 제 연구과제와 산업과의 연계성도 매우 높아졌다"고 했다. 반면 한국연구재단이 재작년 발표한 '대학연구활동실태조사 분석보고서'에 의하면 우리 대학의 연구개발비는 7조9771억원으로, 이중 중앙정부 재원이 74%에 이른다. 민간은 16.8%, 교내는 5.4%, 해외 재원은 0.4% 정도다.
정 조교수는 국내 현행 교수평가시스템도 산학연 협력시스템에 맞춰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요즘 유럽에선 논문을 많이 내면 오히려 마이너스 점수를 받는다"며 "3년 내에 정말 임팩트가 높은 거 하나만 내라"는 충고를 듣기 일쑤라고 말했다. 논문 수 보다는 소셜임팩트(사회적 영향력)를 얼마나 만들었는지를 더 강조하는 분위기라는 설명이다. 여기서 사회적 영향력 평가는 △그린 전환 △디지털 전환 △회복력과 경쟁력, 포용성 등 3가지 기준으로 나뉜다. 정 조교수는 "예컨대 디지털 전환은 '닥터 AI'(인공지능)처럼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맞춤의학과 같은 솔루션을 일컫는다"며 "이 같은 ICT 기반 건강관리 도구를 개발하려면 산학연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가 독일 과학기술 선도기업 머크 라이프사이언스(머크사)와 첨단바이오 산업 분야 MOU(업무협약)을 체결했다. KAIST는 머크사가 제공한 화학·바이오 분야 포트폴리오를 이용해 합성생물학, mRNA(메신저리보핵산), 세포주 엔지니어링, 오가노이드(인공장기) 등 다양한 첨단바이오 분야 공동연구를 추진한다. 머크사는 KAIST 신소재공학과, 의과학대학원과 협력해 '익스피리언스 랩'을 설치하고, 재료과학 및 생물학 분야 후보물질 발견 및 분석 솔루션을 지원할 예정이다.
최문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은 이에 대해 "산학협력이 내수뿐 아니라 전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만큼 과기외교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심으로 산학연 협력이 이뤄졌다면, 앞으로는 외교부 등 관련 정부 부처, 기관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KIST의 경우 지난해부터 금양, 이수화학, 광동 등 8개 기업과 함께 '링킹랩' 사업을 펼치며 그 효과를 입증, 성공 가능성 높은 산학연 협력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링킹랩은 기술 수요자 중심의 연구개발을 위해 KIST와 기업이 공동연구실을 구축하고 단기간에 기술상용화를 이뤄내는 사업이다. 시행 1년이 지난 현재 38억원대 기술 이전 성과를 창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처음 '학연협력 플랫폼 사업단'을 시범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지역 대학과 출연연이 개방·협력해 지역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하는 내용으로, 충청권(충북대·원자력연·기초연), 대경·강원권(경북대·ETRI), 호남·제주권(전북대·KIST), 동남권(부산대·생기연)에 2027년까지 총 452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박춘욱 경북대 학연디지털융합스케일업플랫폼센터장은 "지역 대학과 출연연 지역분원, 지역 산단 간 보다 효율적인 협력 모델이 필요했다"며 "이참에 ETRI와 함께 공공첨단융합기술대학원 설립도 추진키로 했다"고 말했다.
산학연 협력은 기술경쟁 심화, 글로벌 미래 지형 변화가 빠르게 전개되는 이 순간에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혁신의 전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려면 현장에서 산학연 협력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할 정책 개발이 최우선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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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류준영 차장 joon@mt.co.kr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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