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뜨거운 감자, 디지털세 (下)
[편집자주] 앱마켓과 스마트폰 OS, 소셜미디어와 OTT까지 국내에서 막대한 돈을 버는 글로벌 빅테크들이 가장 공들이는 분야는 조세 회피다. 세무당국의 자료 요청도, 조세 정의를 실현해달라는 국내 업계의 목소리도 공염불에 그친다. 이들의 조세포탈은 점점 부족해지는 세수에 악영향을 미치고, 결국 국민들이 떠안게 된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어떤 편법을 써왔고, 이를 막기 위한 제도적 대책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국세청이 글로벌 기업의 세무조사 거부에는 속수무책인 것으로 확인됐다. 구글, 넷플릭스 등 이른바 '글로벌 빅테크'가 세금 회피 목적으로 세무조사를 거부해도 국세청이 대응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31일 국세청의 '직무집행 거부 등에 대한 과태료 부과 현황'에 따르면 세무조사에 불응한 외국계 기업에 국세청이 부과한 과태료 건수는 지난해 2건, 액수로는 총 6600만원이다. 2019년 116건(21억800만원)에 비해 건수로는 98%, 금액으로는 96% 급감했다.
현행 국세기본법 제88조(직무집행 거부 등에 대한 과태료)에 따라 이같이 과세 자료 제출을 기피하면 최소 500만원에서 최대 5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문제는 '하나의 세무 조사에는 한 건의 과태료만 인정한다'는 법원의 판례(2021년)가 법의 구멍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자료 제출과 조사를 여러차례 거부해도 부과할 수 있는 과태료가 최대 5000만원에 불과하다보니 외국계 기업이 거액의 수익을 내고도 과태료 5000만원으로 법인세를 회피할 수 있는 이유다.
일부 외국계 기업은 과세자료가 해외에 있는 본사에 있다는 이유로 국세청의 자료제출을 거부하며 불복하다가 유리한 증거만을 제출하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 국세청이 과세처분에 대한 명확한 추가 자료를 확보하지 못하면 과세처분이 취소될 확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부과된 세금조차 조세불복 단계에서 취소된 경우도 적잖다. 2023년 기준 외국계 기업들에 대한 국세청의 조세행정 패소율은 19%다. 전체 소송 평균(9%)의 2배가 넘는 패소율이다. 특히 6대 대형 로펌이 대리인으로 나설 경우 국세청의 소송 패소율은 79.3%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글로벌 빅테크가 국내에서 수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면서도 '아주 적은' 금액의 법인세만을 낸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구글 본사의 영업이익률이 약 27%인데 구글코리아는 6%인데 보통 기업들이 이런 지사를 그냥 놔두냐"며 "애플리케이션 마켓 수익, 유튜브 구독료 등 주력 사업들이 전부 빠져있고 싱가포르 같은 저세율 국가로 다 이전시켰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023년 구글 본사의 매출은 403조원, 영업이익은 110조원으로 영업이익률은 27%이다. 반면 구글코리아의 경우 매출 3653억원, 영업이익 234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6%에 그쳐 법인세로 155억원을 납부했다. 네이버가 매출 9조6700억원을 신고하고 법인세로 4963억원을 낸 것과 대비된다. 실제 추정치로는 구글코리아의 매출이 12조원을 넘고 적정 법인세는 6229억원이라는 것이 구 의원의 설명이다.
외국계 기업에게 혜택을 주는 면세비율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은 지난해 국내에서 연간 5조원 넘는 수익을 거둔 초거대 외국 법인의 44%가 법인세를 전혀 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법인세 면세비율이 과도하게 높아 국내기업과 역차별이 생긴다는 것이다. 2023년 기준 부담세액이 있는 기업 중 총수입 5조원 초과 기업의 법인세 평균 부담액은 내국법인 2639억원, 외국인투자법인 2008억원, 외국법인 141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 중 법인세를 전혀 납부하지 않은(부담세액 0원) 곳은 외국법인의 44%, 외국인투자법인의 28%, 내국법인 13% 순으로 조사됐다.
특히 연간 총수입이 5조원을 초과하는 '초거대기업군'에서 국내 기업과 국외 기업간의 조세 부담 차이가 컸다.
2023년 기준 법인세를 신고한 초거대기업의 수는 내국법인 113개, 외국인투자법인 18개, 외국법인 16개였고 이들 중 국내에서 5조원 넘게 수입을 얻고서도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법인(부담세액 0원)의 수는 각각 15개(13%), 5개(28%), 7개(44%)로 파악됐다.
법인의 평균 법인세액도 내국법인 2639억원, 외국인투자법인 2008억원, 외국법인 141억원이었다. 내국법인이 외국계 기업보다 더 많은 법인세를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2023년도 공시자료에 따르면 국내 한 해 매출이 각각 2조원, 9946억원에 달하는 나이키코리아와 한국맥도날드도 법인세 부담세액은 0원이었다.
한편 강민수 국세청장은 국감에서 다국적 기업의 조세피 문제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분명히 다 보고 있고 점검도 하고 있다"며 "다국적 기업의 자료 제출 거부 및 지연 등 세무조사 방해 행위에 이행강제금 도입 등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빅테크 과세공백에도...디지털세 등 제도 마련 '느린 걸음'
글로벌 빅테크의 조세회피 논란은 제도적 공백과 무관치 않다. 정부가 주요국들과 '디지털세(Digital Tax)' 도입을 논의 중이지만 속도가 더디다.
정부는 국제사회의 합의를 전제로 2027년 시행도 내다보지만 변수가 적잖다. 미국이 디지털세 도입에 미온적인 상황에서 캐나다 등 일부 국가처럼 개별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은 관세 보복 등 우려가 크다. 국회에서 최근 빅테크의 조세회피를 막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구체적 논의는 아직이다.
◇국회 입법 논의, 갈 길 멀어
3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1일 구글과 애플 등 국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빅테크가 사업 현황 자료를 국세청장에게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구체적으로 국내사업장의 유무와 관계없이 전 세계 매출액이 30조원 이상인 글로벌 기업이 국내에 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 △국내에서 발생하는 매출 등 재무 현황 △국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내역·거래 건수·거래 금액 등을 국세청장에게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국세청에 부당하게 장부 등 과세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자가 기한 내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 1일당 평균 수입금액의 0.3% 범위에서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지난 17일 발의했다.
현재 세무공무원의 직무집행을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징수토록 하고 있는데 처벌을 강화한 것이다. 글로벌 빅테크 등이 국세청에 과세 자료 제출을 피하고 과태료만 납부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안이다.
해당 법안들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회부됐지만 아직 상임위에서 논의되지 못했다.
글로벌 빅테크의 조세회피를 정조준하는 디지털세 논의는 속도가 더디다. 국제사회는 수년간 합의에 어려움을 겪었다. 구글·애플 등 자국 기업을 정조준해야 하는 미국의 반대가 부담이 됐다.
특히 디지털세 필라 1은 다국적 기업의 소득에 대해 매출 발생국이 과세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이 조약이 발효되기 위해선 다국적 기업 약 100곳 가운데 60% 이상의 본사가 위치한 30개국 이상의 의회가 비준해야 한다.
미국의 조약 비준 절차상 미 상원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지만 공화당 측에서 반대 중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오는 11월 선거에서 승리 시 해당 조약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디지털세 도입이 미뤄지면 캐나다를 비롯해 독자적으로 디지털서비스세(DST)를 부과하겠다는 국가들이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이미 개별적으로 세목을 신설, 매출 기준으로 세율 3%를 적용하는 국가는 현재 프랑스·스페인 등이 있다.
미국은 개별적으로 과세제도를 마련한 국가들에 대해 보복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현재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캐나다에 대해서도 미국은 최근 이의를 제기한 이후 협의 중이다.
◇구글 매출 축소…정부 "과세 방법 검토"
국내에선 글로벌 빅테크의 조세회피로 인한 국내 기업들과의 조세 역차별 문제가 불거졌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구글의 국내 통신망 사용 비중은 약 20%다. 네이버·카카오와 비교해 10배 이상 크다. 납부한 법인세는 그 반대다. 구글의 법인세는 지난해 기준 169억원이다. 네이버 4964억원, 카카오는 1684억원에 비해 약 30배, 10배 작은 규모다.
시장에선 구글이 매출을 축소했단 지적이 지배적이다. 싱가포르에 있는 구글아시아퍼시픽으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실적을 줄이는 방식이다. 구글코리아의 회계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이 2023년 3653억원, 영업이익은 233억원이다. 실제 연간 국내 매출액은 12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정 의원은 "정부는 세수 확보를 위해 디지털세 도입 전이라도 글로벌 빅테크기업의 조세회피 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도 취지에 공감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글로벌 디지털 기업에 대한 과세 방법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7월에도 G20 재무장관회의 글로벌 조세 협력 세션에서 디지털세 필라 1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했다. 당시 회의 성명문에는 디지털세 도입을 위해 이견 조율에 속도를 높이자는 내용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내부적으론 디지털세가 이르면 2027년 시행될 것으로 내다본다. 주요국들이 디지털세 안건에 합의하더라도 절차적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다.
구글·애플 '횡포' 언제까지…"국내 기업만 봉이냐" 역차별의 역사
구글의 망 사용료 문제가 국정감사에서 재점화된 가운데 국내 IT(정보기술) 업계에서는 구글이나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의 횡포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망 사용료 외에도 여러 역차별 사례가 있었지만 매번 그냥 넘어갔다는 지적이다.
31일 IT(정보기술)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빅테크와 국내 기업 간 역차별은 2010년 선탑재 논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스마트폰에 자사 앱(애플리케이션)을 선탑재하면서 경쟁 서비스를 배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내 기업들의 제소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나섰으나 3년여 만에 무혐의 결론이 나왔다.
이후 EU(유럽연합)를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구글의 선탑재 강제에 대한 제재와 과징금 부과가 이어졌다. 그러자 정부도 2021년 시정명령을 내리면서 과징금 2074억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정부의 제재가 늦은 탓에 선탑재 앱들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국내 인터넷 서비스들은 이미 힘을 잃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글로벌 빅테크의 음원 저작권료 규정 회피도 오랜 논란이다. 2018년 정부가 음원 저작권료 징수 규정을 변경해 음원 창작자의 수익 배분율을 상향 조정하면서 국내 음원 서비스업체의 저작권료 부담이 증가했지만 구글과 애플은 음악 전문 서비스가 아니라는 정부의 유권해석에 따라 저작권료 추가 지급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음악 서비스와 관련해서는 최근 유튜브 프리미엄의 유튜브 뮤직 끼워팔기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구글이 유튜브 유료 멤버십인 프리미엄 가입자에게 유튜브 뮤직을 무료로 이용하게 하면서 국내 음악 플랫폼 이탈자가 늘어나는 현상이다. 공정위가 이 사안에 대해 조사를 마치고 곧 제재를 결정할 예정이지만 그 사이 유튜브 뮤직의 시장 점유율은 걷잡을 수 없이 높아졌다.
조세회피 논란도 있다. 국내에서는 외국계 회사들에 매출 보고를 강제할 국내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2018년 유한회사도 주식회사처럼 감사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의 '주식회사등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이 시행되면서 구글코리아, 넷플릭스 등 글로벌 빅테크도 2020년부터 감사보고서를 통해 경영실적을 공개하고 있으나 금액의 크기가 국내 대기업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IT 업계에서는 글로벌 빅테크들이 국내에서 수조 원의 매출을 일으키면서도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고 이를 기술력 확보와 재투자 등 자사의 이익을 창출하는 데 사용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29일 전성민 가천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구글코리아는 지난해 3653억원의 매출을 신고하고 155억원의 법인세를 납부했다. 4600만명 이상이 사용하는 유튜브와 구글의 광고 수익, 구글플레이의 인앱결제 수수료 등을 따졌을 때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교수가 구글의 경제효과보고서를 토대로 추산한 지난해 국내 매출은 최대 12조1350억원이다. 실제 신고한 매출의 33배에 가깝다. 이런 경우 구글은 5180억원 가량의 법인세를 내야 한다. 매출을 온전하게 신고한 네이버(NAVER (199,700원 ▼200 -0.10%))는 지난해 4963억원의 법인세를 납부했다. 구글은 2020년에도 2201억원의 매출만 보고해 법인세가 97억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네이버는 5조3041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4925억원의 법인세를 납부했고 카카오 (39,050원 ▲500 +1.30%)는 4조1567억원의 매출로 2409억원의 법인세를 납부했다.
이 밖에 인앱결제 강제 논란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전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인앱결제 강제화 금지 법안이 통과됐으나 실효성은 크게 없는 모습이다. 애플과 구글은 아직 이행계획도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있을 뿐더러 구글의 경우 외부결제 시 수수료를 기존 30%에서 26%로 4%포인트 낮췄지만 대부분의 앱 사업자들은 자체 결제 시스템을 구축할 비용이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인앱결제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수수료 4%포인트 인하는 꼼수라는 지적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대인 만큼 외국계 기업이 국내에 들어와 사업을 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최소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정부나 공정위는 국내 기업이 논란을 일으켰을 경우 빠르게 관련 법이나 제도를 만들어 제재하면서 외국계 기업의 경우 제재를 미루거나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차별이 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 기자 사진 세종=오세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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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세종=유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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