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K스타트업 日 진출 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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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0일, 국내 ICT(정보통신기술) 스타트업 14개사는 전세계 1위 CRM(고객관계관리) 솔루션 업체 세일즈포스의 일본지사가 도쿄 세일즈포스타워에서 개최한 IR 행사에 참가했다. 이들 스타트업은 현재까지 50억 달러(약 6조원)를 투자하고, 30개 이상의 기업을 상장시킨 세일즈포스의 벤처캐피탈(VC) 세일즈포스벤처스의 까다로운 사전심사를 통과한 뒤 초대장을 받았다. 이들만을 주인공으로 한 IR(투자유치)피칭 행사장은 일본 대기업과 VC 20여곳에서 온 150여명의 임직원으로 북적였다. 일본 최대 이동통신사업자인 NTT 도코모의 고위직 임원은 발표회가 끝난 뒤 '다중차량 배차 솔루션' 스타트업 위밋모빌리티의 직원을 따로 불러 "통신 기반 물류 서비스를 함께 개발할 파트너를 찾고 있다"며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건냈다.
최근 한·일 관계가 개선되고 일본 정부가 스타트업 육성에 본격 나서면서 국내 스타트업의 일본 진출이 줄을 잇고 있다. 일본 정부는 향후 5년간 스타트업 투자규모를 현재의 10배 수준인 10조엔으로 늘릴 예정이다. 일본 기업들도 디지털 전환(DX) 가속화와 내재화를 위해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DX 전문성을 갖춘 파트너를 적극 찾고 있어 이 부문 강점을 지닌 K스타트업들에겐 일본 공략의 적기로 인식되고 있다.
◇줄잇는 K스타트업 데뷔전=2일 벤처·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일본에 K스타트업을 알리는 행사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코로나19로 중단된 후 3년 만인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에서 DX 분야 진출을 위한 전시·상담회 '코리아 ICT 엑스포 인 재팬'(Korea ICT Expo in Japan)을 연 뒤 매달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도 지난해 10월부터 K스타트업을 일본 시장에 소개하는 '재팬부트캠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주일한국대사관도 4월부터 디캠프 등 유관기관의 지원을 받아 '도쿄스타트업포럼'을 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도 신한퓨처스랩재팬과 함께 올해부터 '일본 진출 및 파트너 협약을 위한 IR피칭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에서 기회를 잡으려는 K스타트업이 늘면서 현지 진출을 돕는 코트라의 도쿄IT지원센터, 중진공의 도쿄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는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지금 입주 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도 1~2년은 대기해야 할 정도다. 중진공 도쿄GBC 김건 소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어림잡아 100개사 넘게 만난 것 같다. 현재 독립형 오피스가 18개실 뿐이라 더 늘려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DX 스타트업 진출 적기=일본에 K스타트업 진출이 활발한 이유는 DX 수요가 확산되고,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현재가 진출 적기라는 판단 때문이다. 일본 시장조사업체인 후지키메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DX시장이 2019년 7900억(약 8조원)에서 2030년 3조4000억엔(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일본 정부는 DX 가속화를 위해 2027년까지 10조엔(91조원)을 투자해 관련 스타트업 10만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100곳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자국 내 DX 기업에 연구비를 지원한 해외 VC·AC(엑셀러레이터)에게 투자비의 3분의 2를 보조하는 한편 해외 스타트업에게 최대 1년의 특정활동 비자도 발급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책도 내놨다.
이미 한국에서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해 성공한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올인원 비즈니스 메신저 '채널톡'을 운영하는 채널코퍼레이션은 2018년에 일본에 상륙한 뒤 일본 내 고객사 1만4000곳을 확보했다. 현재 전체 매출 중 약 20%가 일본에서 발생하고 있다. 실시간 오디오 방송 플랫폼 '스푼' 운영사 스푼라디오도 비슷한 시기 일본에 진출, 지난달 약 50만명의 일본 이용자를 확보했다.
일각에선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섣불리 일본 시장 진출을 시도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도시바, 샤프 등 5만여 일본 고객사를 확보한 알서포트의 서형수 대표는 "일본 시장은 보수적이어서 공략 난도가 높다"며 "사업모델의 현지화 등 철절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르포]'반도체 기적' 삼성 이병철 회장의 후예들 'DX 기적' 만든다
"반도체 기적을 이룬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님이 여기서 사업 터전을 닦으셨죠. 여기 입주사들은 이 회장의 후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20일, 일본 관공서 밀집 지역인 도쿄 카스미가세키 정중앙에 있는 카스미가세키빌딩. 35층 꼭대기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승수 도쿄IT지원센터장은 "이곳 가장 높은 층을 이 회장님이 집무실로 쓰셨다고 들었다. 5층에 우리 센터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금은 건물이 오래되고 낡아 지하주차장도 없지만 카스미가세키빌딩은 처음 지어진 당시 일본 중·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 명소로 꼽힐 정도로 인기였다. 우리나라 80년대 고속성장의 상징이던 여의도 63빌딩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재무성, 외무성 등 일본 정부의 중앙부처가 이 건물을 병풍처럼 둘러싸듯 지어져 있어 해외 엘리트 영업맨들의 일본 진출 거점으로 통한다. 이 센터장은 "여기 땅값이나 임대료가 너무 비싸 일본인들에겐 콧대 높기로 이름난 지역"이라며 "이런 곳에서 우리 스타트업들이 현지 투자사나 파트너를 만나야 업신여김 당하지 않고 사업을 잘 풀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가 일본 진출을 꿈꾸는 ICT(정보통신기술) 벤처·스타트업들의 요람인 '도쿄IT지원센터'와 '도쿄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옛 동경 수출인큐베이터) 2곳을 다녀왔다.
도쿄역에서 자동차로 20여분 이동 끝에 도착한 도쿄IT지원센터. 로비에 들어서자 일본 현지 창업 안내서와 전문서적이 꽂힌 책장이 있었다. 또 외부 파트너, 투자자와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회의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2개의 대회의실을 지나 코너쪽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말끔히 정장을 차려 입은 한 젊은 남성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프리젠테이션(PPT)을 손보고 있었다.
이곳은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센터 운영 업무를 맡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 2001년 센터 설립 이후 총 107개사가 거쳐갔다. 현재는 국내 유망 ICT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23개사 입주해 있다. 올해 초부턴 공유오피스를 대대적으로 확장하는 등 K스타트업 맞이에 분주한 모습이다.
센터는 해외진출을 위한 물리적인 거점 제공에 더해 현지 정착, 마케팅 지원을 총괄하는 비즈니스 플랫폼 기능을 수행한다. 이 센터장은 "일본 현지 금융기관들은 스타트업과 같이 일본 현지에서 거래 매출 실적이 없는 외국인 기업에 대해 거래계좌를 발급하는 것을 극히 꺼리고 실제로 일본 은행 거래계좌를 개설하지 못해 고충을 호소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며 "스타트업 초기 진출 과정에서 연락사무소, 지사·법인 설립 및 등록, 체류비자, 외국인 등록증 발급 등 정착에 필요한 사안을 센터가 계약 맺은 현지 세무·노무·특허 전문 법인, ICT 대기업 출신 현지인 전문가들이 돕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운영하는 도쿄 GBC는 대기업 본사, 외국계 현지법인이 밀집한 미나토구 토라노몬 지역에 위치했다. 입구 쪽에 설치된 쇼룸엔 △원테크의 '스마트도어락' △에이엘로봇의 '산업로봇용 토크센서' △디카모의 '매장관리플랫폼' △나노메카의 '위조방지 필름' 등 국내 스타트업 제품 18개가 전시돼 있었다.
GBC의 '제품 개선 수출 현지화 프로그램'은 연간 10개사만 대상으로 '핀셋 컨설팅'을 제공한다. 2020년 1월에 입주해 지난해 1월 졸업한 액정표시장치 전자칠판 전문기업 스타트업 아하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약 30곳의 바이어를 발굴했다. 아울러 파트너십을 맺은 일본 현지 대기업 브라더공업과 전자칠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공급 계약을 위한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ERP(전사적자원관리) 솔루션 전문기업인 영림원소프트랩은 지난해 5월 입주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일본의 ERP 시장규모는 국내보다 5배 정도 크며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독점적 시장 지배자가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내보다 더 큰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림원소프트랩은 도쿄 GBC의 지원으로 일본 현지의 컨설팅기업과 협업해 일본에 최적화된 ERP시스템 개발을 최근 완료했다. 이밖에 도쿄 GBC는 신한퓨처스랩재팬과 함께 공동 육성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도쿄 GBC 김건 소장은 "일본에선 삼성전자의 후광 때문인지 한국 테크기업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라며 "우리 스타트업의 입주 수요가 최근 들어 대폭 늘고 있지만 센터 공간 활용엔 제약이 따라 기존 공간을 재배치하든지 추가로 공유오피스를 개설하는 등의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쿄IT지원센터, 도쿄GBC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한국대사관 정연우 과학관은 "일본으로 넘어오는 K스타트업 대부분 미래 신기술 분야를 선점할 수 있는 딥사이언스·딥테크 창업 기업이어서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며 "이들은 확실한 수요 시장을 타깃으로 한 BM(비즈니스모델)과 강한 추진력을 K스타트업의 매력 요건으로 꼽고 있다"고 말했다.
엔저뿐만이 아니다…韓벤처 찾던 글로벌 큰손들, 日 주목하는 이유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벤처투자 혹한기가 장기화되고 있다.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스타트업들이 문을 닫고, 출자자(LP) 확보가 어려워진 벤처캐피탈(VC)들의 벤처펀드 결성이 무산되는 일이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VC들은 드라이파우더(미소진 자금) 소진에도 소극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를 역행하는 곳이 있다. 일본이다. 일본 VC들은 적극적으로 투자처 발굴에 나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요 LP들이 일본 벤처투자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KPMG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일본 벤처투자액은 6억9000만달러(약 8835억원)으로 전분기(2022년 4분기) 대비 11.3%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글로벌 벤처투자액이 860억달러에서 573억달러로 33.4% 급감한 걸 감안하면 고무적이다. 각국 수치를 따져봐도 벤처투자액이 증가한 건 일본이 유일하다. 벤처투자 혹한기의 터널을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
현재 일본 벤처투자 시장은 정확히 어떤 상황일까. 왜 글로벌 LP들은 일본에 주목하는가. 일본 벤처투자 호황기 한국 스타트업이 얻을 수 있는 건 뭘까. △팍샤캐피탈(Pksha Capital) △듄캐피탈(Dawn Capital) △아스캐피탈파트너스(Asu Capital Partners) 등 일본 주요 VC에게 직접 들어봤다.
◇외국인 출자 비중 0.8% '갈라파고스' 日 꿈틀=외국인 출자 비중 0.8% '갈라파고스' 日 꿈틀="최근 싱가포르계 펀드가 일본 AI(인공지능)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거나 미국계 메가펀드 운용사까지 (일본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문의를 주고 있습니다. 또 글로벌 투자 예산으로 일본 투자를 확대하고자 하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야마자키 타이세이 듄캐피탈 디렉터는 현재 일본 벤처투자 시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일본 벤처펀드 LP 중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0.8%(2023년 1분기 기준)에 불과하다. 20%대인 미국과 유럽은 물론 4.5%인 한국과 비교해도 미미하다. 그만큼 일본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그러나 최근 이런 흐름은 바뀌고 있다. 올해 6월말 일본 최대 스타트업 행사인 'IVS2023 교토'에는 1만명이 넘는 글로벌 스타트업 창업자와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이 몰렸다. 역대 최대다.
리 루쳉 아스캐피탈파트너스 공동창업자는 "2020~2021년 글로벌 투자자들이 벤처투자 선진국인 한국과 중국에 집중했다면 최근엔 일본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그동안 주변국에 과소평가됐던 일본 스타트업의 기업가치 등이 반영된 관심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낮은 기업가치와 낮은 상장문턱…일본에 주목하는 이유=야마자키 디렉터는 일본 벤처투자 시장이 주목 받는 이유로 우선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가치를 꼽았다. 야마자키 디렉터는 "2020~2021년 코로나19(COVID-19) 시기 일본도 기업가치가 오르긴 했지만 한국과 미국과 비교해 상승폭이 낮은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상현 팍샤캐피털 파트너 역시 "중간값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일본에서 시리즈 C 단계 스타트업이 조달하는 금액은 3억7000만엔(약 34억원) 수준"이라며 "모든 기업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같은 투자 라운드 단계에 있는 한국 스타트업과 비교해서는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는 낮은 IPO(기업공개) 문턱이다. 에비하라 히데유키 팍샤캐피탈 파트너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일본 IPO 요건은 낮은 편"이라며 "스타트업의 IPO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상장 이후 미국이나 중국처럼 드라마틱한 시가총액 상승세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안정적인 엑시트(투자회수) 기회를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하기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 상장시장은 △프라임 △스탠다드 △그로스로 구성된다. 프라임은 한국의 유가증권시장, 스탠다드는 코스닥, 그로스는 코스닥과 코넥스의 중간 정도다. 스타트업은 주로 그로스 시장에 상장하게 되는데 상장요건은 시가총액 5억엔 이상, 유통주식 수 25% 이상이 전부다. 요건만 맞춘다면 적자기업도 매출이 미미한 기업도 그로스 시장에 상장할 수 있다.
역대급 엔화 약세도 한몫한다. 에비하라 파트너는 "엔저도 글로벌 투자자들이 일본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라며 "이후 엔화가 회복세를 보이고 투자회수를 했을 때 환차익까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COVID-19) 확산이 시작된 2020년 3월 100엔당 1191.34원까지 올랐던 엔화는 최근 100엔당 895.18원(2023년 8월2일)까지 떨어졌다.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흐름에도 일본은행(BOJ) 나홀로 통화 완화정책을 편 결과다. 전 세계 엔화가 넘쳐나자 엔화가치가 급락한 것.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벤처투자 지원 계획도 긍정적이다. 지난해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5개년 스타트업 육성 계획을 발표하면서 10조엔(약 90조791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야마자키 디렉터는 "예산을 어떤 방향으로 사용할지 다양한 논의를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아직 구체적인 정책 내용이 나오지 않고 있어 정부 지원책의 훈풍을 느끼려면 어느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일본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나츠메 히데오 아스캐피탈파트너스 공동창업자는 "한국의 경우 시드 단계부터 글로벌 진출을 염두해두고 사업을 전개하는 스타트업이 많다"며 "실제 글로벌 투자자들의 투자가 이어지려면 일본 스타트업 역시 비교적 사업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진출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철저한 현지화 성공 가능성↑…'엔터테인먼트' 주목=일본 VC 관계자들은 한국 스타트업 역시 일본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나츠메 공동창업자는 "이미 일본에서는 온라인 비대면 고객상담 '채널톡', 오디오 플랫폼 '스푼라디오'처럼 성공한 서비스가 있다"며 "한국 스타트업에게도 기회"라고 말했다.
채널톡 전체 매출의 약 20%는 일본에서 나온다. 일본 내 고객사만 1만4000곳이 넘는다. 스푼라디오의 경우 이미 일본이 매출과 트래픽 등 주요 핵심성과지표(KPI)면에서 한국을 추월했다.
나츠메 공동창업자는 "두 기업은 일본에서 한국에 뿌리를 둔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현지화를 잘 이뤘다"며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접근한다는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소비력이 높은 일본을 토대로 탄탄한 실적을 쌓고 다른 국가로 사업을 확장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일본 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엔터테인먼트다. 야마자키 디렉터는 "최근 일본의 화두는 '글로벌 진출'이다. 특히, BTS와 뉴진스 등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성공적인 글로벌 진출 전략에 관심이 많다"며 "일본 대기업과의 오픈이노베이션 등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日 디지털 전환은 절호의 기회…한번 뚫으면 보안 금맥 터진다"
쿼드마이너 소명섭 일본법인장의 日 진출 전략
"디지털화가 빠르게 전개돼 사실상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보안 시장을 넘어 일본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왔다."
작년 4월 도쿄IT지원센터에 입주한 쿼드마이너의 소명섭 일본법인장은 일본 시장에 진출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소 일본법인장은 "일본 보안시장은 대규모 DX(디지털 전환) 투자 덕분에 향후 한국의 4~5배 크기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가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우선 일본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처리와 서비스를 전산화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공인인증서 기능을 합친 형태인 '마이넘버 카드'를 개발·보급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목표한 행정 전산화가 이뤄지면 그동안 종이서류를 사용해온 양육수당과 개호(간병) 신청 등을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고, 마이넘버(주민등록)을 은행 계좌와 연동해 각종 보조금도 지급할 수 있다. 이 서비스가 안전하게 운영되려면 모바일 앱-플랫폼-서버·네트워크를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보안 솔루션이 필요하다.
2017년 설립된 쿼드마이너는 이 같은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 탐지·대응 솔루션(NDR) '네트워크 블랙박스'를 개발해 판매중이다.
이는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모든 종류의 사이버 보안 위협을 빠르게 발견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해킹 등의 네트워크 침입 형태가 감지되면 어떤 경로를 통해 들어와 네트워크망의 어디까지 퍼졌는지, 또 어떤 행위를 했는지를 자동으로 분석해 알려준다.
쿼드마이너는 글로벌 IT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가 선정한 대표 벤더사로 4년 연속 등재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제품경쟁력을 입증 했다.
또 최근 오픈AI의 인공지능(AI) 챗봇 '챗GPT'와 관련한 보안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챗GPT 사용 중 일어날 수 있는 개인 정보 및 회사 기밀 유출 사고를 막기 위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려는 기업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쿼드마이너는 2020년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한 뒤 2021년부터 일본 시장 공략을 위한 채비를 해왔다. 소 일본법인장은 "일본의 네트워크 보안 기술은 아직 옛날 방식에 머물러 해커 공격에 대한 오탐지가 많이 발생하고, 공격이 이뤄졌을 때 통신 단말기와 함께 호스트(각각의 단말기로부터 자료 처리 요구를 받아 처리하는 중심이 되는 컴퓨터)를 추가 분석해야 한다. 이 때문에 대응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우리 NDR 솔루션은 네트워크에 발생하는 모든 위협 정보를 인공지능이 분석하고 대응하므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소 법인장은 우선 일본 총판, 리셀러를 발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초반엔 판매 대리점 등 현지 파트너사와 협업해 사업을 전개하고, 사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조인트벤처를 이뤄 직접 판매를 확대하면서 인지도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고객 대상 무료 PoC(기술검증) 확대, 기술 데모센터 설립, 기술 고문 영입 등의 전략을 펼칠 예정이다.
소 법인장은 일본 시장에서 향후 3년 안에 한국 매출(데이터랩 자료 기준 2022년 매출액 81억원) 수준을 뛰어넘겠다는 포부다. 그는 "일본 비즈니스는 제가 영일만(0-1-10000)이라고 표현하는 데 0에서 1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은 굉장히 오래 걸리지만, 1을 만들면 그 뒤에 10000을 만드는 건 금방"이라며 "일본은 비즈니스 진행 속도가 한국에 비해 느리고, 한번 뚫기도 어렵지만, 한번 계약을 맺으면 매출 그래프의 기울기가 가팔라진다"고 말했다.
소 법인장은 성공적인 일본 진출을 위해선 다양한 판매 레퍼런스를 쌓고,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일본 관공서나 대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하려면 국내외 업체에 납품·운영한 실적을 쌓고 일본 기업의 니즈에 맞춘 '현지화 전략'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도쿄IT지원센터와 같은 스타트업 지원 기관을 통해 우리 기업에 필요한 일본시장 정보와 동향, 특성 등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 지난달 20일, 국내 ICT(정보통신기술) 스타트업 14개사는 전세계 1위 CRM(고객관계관리) 솔루션 업체 세일즈포스의 일본지사가 도쿄 세일즈포스타워에서 개최한 IR 행사에 참가했다. 이들 스타트업은 현재까지 50억 달러(약 6조원)를 투자하고, 30개 이상의 기업을 상장시킨 세일즈포스의 벤처캐피탈(VC) 세일즈포스벤처스의 까다로운 사전심사를 통과한 뒤 초대장을 받았다. 이들만을 주인공으로 한 IR(투자유치)피칭 행사장은 일본 대기업과 VC 20여곳에서 온 150여명의 임직원으로 북적였다. 일본 최대 이동통신사업자인 NTT 도코모의 고위직 임원은 발표회가 끝난 뒤 '다중차량 배차 솔루션' 스타트업 위밋모빌리티의 직원을 따로 불러 "통신 기반 물류 서비스를 함께 개발할 파트너를 찾고 있다"며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건냈다.
최근 한·일 관계가 개선되고 일본 정부가 스타트업 육성에 본격 나서면서 국내 스타트업의 일본 진출이 줄을 잇고 있다. 일본 정부는 향후 5년간 스타트업 투자규모를 현재의 10배 수준인 10조엔으로 늘릴 예정이다. 일본 기업들도 디지털 전환(DX) 가속화와 내재화를 위해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DX 전문성을 갖춘 파트너를 적극 찾고 있어 이 부문 강점을 지닌 K스타트업들에겐 일본 공략의 적기로 인식되고 있다.
◇줄잇는 K스타트업 데뷔전=2일 벤처·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일본에 K스타트업을 알리는 행사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코로나19로 중단된 후 3년 만인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에서 DX 분야 진출을 위한 전시·상담회 '코리아 ICT 엑스포 인 재팬'(Korea ICT Expo in Japan)을 연 뒤 매달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도 지난해 10월부터 K스타트업을 일본 시장에 소개하는 '재팬부트캠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주일한국대사관도 4월부터 디캠프 등 유관기관의 지원을 받아 '도쿄스타트업포럼'을 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도 신한퓨처스랩재팬과 함께 올해부터 '일본 진출 및 파트너 협약을 위한 IR피칭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에서 기회를 잡으려는 K스타트업이 늘면서 현지 진출을 돕는 코트라의 도쿄IT지원센터, 중진공의 도쿄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는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지금 입주 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도 1~2년은 대기해야 할 정도다. 중진공 도쿄GBC 김건 소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어림잡아 100개사 넘게 만난 것 같다. 현재 독립형 오피스가 18개실 뿐이라 더 늘려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DX 스타트업 진출 적기=일본에 K스타트업 진출이 활발한 이유는 DX 수요가 확산되고,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현재가 진출 적기라는 판단 때문이다. 일본 시장조사업체인 후지키메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DX시장이 2019년 7900억(약 8조원)에서 2030년 3조4000억엔(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일본 정부는 DX 가속화를 위해 2027년까지 10조엔(91조원)을 투자해 관련 스타트업 10만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100곳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자국 내 DX 기업에 연구비를 지원한 해외 VC·AC(엑셀러레이터)에게 투자비의 3분의 2를 보조하는 한편 해외 스타트업에게 최대 1년의 특정활동 비자도 발급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책도 내놨다.
이미 한국에서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해 성공한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올인원 비즈니스 메신저 '채널톡'을 운영하는 채널코퍼레이션은 2018년에 일본에 상륙한 뒤 일본 내 고객사 1만4000곳을 확보했다. 현재 전체 매출 중 약 20%가 일본에서 발생하고 있다. 실시간 오디오 방송 플랫폼 '스푼' 운영사 스푼라디오도 비슷한 시기 일본에 진출, 지난달 약 50만명의 일본 이용자를 확보했다.
일각에선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섣불리 일본 시장 진출을 시도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도시바, 샤프 등 5만여 일본 고객사를 확보한 알서포트의 서형수 대표는 "일본 시장은 보수적이어서 공략 난도가 높다"며 "사업모델의 현지화 등 철절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르포]'반도체 기적' 삼성 이병철 회장의 후예들 'DX 기적' 만든다
"반도체 기적을 이룬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님이 여기서 사업 터전을 닦으셨죠. 여기 입주사들은 이 회장의 후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20일, 일본 관공서 밀집 지역인 도쿄 카스미가세키 정중앙에 있는 카스미가세키빌딩. 35층 꼭대기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승수 도쿄IT지원센터장은 "이곳 가장 높은 층을 이 회장님이 집무실로 쓰셨다고 들었다. 5층에 우리 센터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금은 건물이 오래되고 낡아 지하주차장도 없지만 카스미가세키빌딩은 처음 지어진 당시 일본 중·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 명소로 꼽힐 정도로 인기였다. 우리나라 80년대 고속성장의 상징이던 여의도 63빌딩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재무성, 외무성 등 일본 정부의 중앙부처가 이 건물을 병풍처럼 둘러싸듯 지어져 있어 해외 엘리트 영업맨들의 일본 진출 거점으로 통한다. 이 센터장은 "여기 땅값이나 임대료가 너무 비싸 일본인들에겐 콧대 높기로 이름난 지역"이라며 "이런 곳에서 우리 스타트업들이 현지 투자사나 파트너를 만나야 업신여김 당하지 않고 사업을 잘 풀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가 일본 진출을 꿈꾸는 ICT(정보통신기술) 벤처·스타트업들의 요람인 '도쿄IT지원센터'와 '도쿄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옛 동경 수출인큐베이터) 2곳을 다녀왔다.
도쿄역에서 자동차로 20여분 이동 끝에 도착한 도쿄IT지원센터. 로비에 들어서자 일본 현지 창업 안내서와 전문서적이 꽂힌 책장이 있었다. 또 외부 파트너, 투자자와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회의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2개의 대회의실을 지나 코너쪽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말끔히 정장을 차려 입은 한 젊은 남성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프리젠테이션(PPT)을 손보고 있었다.
이곳은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센터 운영 업무를 맡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 2001년 센터 설립 이후 총 107개사가 거쳐갔다. 현재는 국내 유망 ICT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23개사 입주해 있다. 올해 초부턴 공유오피스를 대대적으로 확장하는 등 K스타트업 맞이에 분주한 모습이다.
센터는 해외진출을 위한 물리적인 거점 제공에 더해 현지 정착, 마케팅 지원을 총괄하는 비즈니스 플랫폼 기능을 수행한다. 이 센터장은 "일본 현지 금융기관들은 스타트업과 같이 일본 현지에서 거래 매출 실적이 없는 외국인 기업에 대해 거래계좌를 발급하는 것을 극히 꺼리고 실제로 일본 은행 거래계좌를 개설하지 못해 고충을 호소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며 "스타트업 초기 진출 과정에서 연락사무소, 지사·법인 설립 및 등록, 체류비자, 외국인 등록증 발급 등 정착에 필요한 사안을 센터가 계약 맺은 현지 세무·노무·특허 전문 법인, ICT 대기업 출신 현지인 전문가들이 돕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운영하는 도쿄 GBC는 대기업 본사, 외국계 현지법인이 밀집한 미나토구 토라노몬 지역에 위치했다. 입구 쪽에 설치된 쇼룸엔 △원테크의 '스마트도어락' △에이엘로봇의 '산업로봇용 토크센서' △디카모의 '매장관리플랫폼' △나노메카의 '위조방지 필름' 등 국내 스타트업 제품 18개가 전시돼 있었다.
GBC의 '제품 개선 수출 현지화 프로그램'은 연간 10개사만 대상으로 '핀셋 컨설팅'을 제공한다. 2020년 1월에 입주해 지난해 1월 졸업한 액정표시장치 전자칠판 전문기업 스타트업 아하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약 30곳의 바이어를 발굴했다. 아울러 파트너십을 맺은 일본 현지 대기업 브라더공업과 전자칠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공급 계약을 위한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ERP(전사적자원관리) 솔루션 전문기업인 영림원소프트랩은 지난해 5월 입주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일본의 ERP 시장규모는 국내보다 5배 정도 크며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독점적 시장 지배자가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내보다 더 큰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림원소프트랩은 도쿄 GBC의 지원으로 일본 현지의 컨설팅기업과 협업해 일본에 최적화된 ERP시스템 개발을 최근 완료했다. 이밖에 도쿄 GBC는 신한퓨처스랩재팬과 함께 공동 육성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도쿄 GBC 김건 소장은 "일본에선 삼성전자의 후광 때문인지 한국 테크기업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라며 "우리 스타트업의 입주 수요가 최근 들어 대폭 늘고 있지만 센터 공간 활용엔 제약이 따라 기존 공간을 재배치하든지 추가로 공유오피스를 개설하는 등의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쿄IT지원센터, 도쿄GBC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한국대사관 정연우 과학관은 "일본으로 넘어오는 K스타트업 대부분 미래 신기술 분야를 선점할 수 있는 딥사이언스·딥테크 창업 기업이어서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며 "이들은 확실한 수요 시장을 타깃으로 한 BM(비즈니스모델)과 강한 추진력을 K스타트업의 매력 요건으로 꼽고 있다"고 말했다.
엔저뿐만이 아니다…韓벤처 찾던 글로벌 큰손들, 日 주목하는 이유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벤처투자 혹한기가 장기화되고 있다.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스타트업들이 문을 닫고, 출자자(LP) 확보가 어려워진 벤처캐피탈(VC)들의 벤처펀드 결성이 무산되는 일이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VC들은 드라이파우더(미소진 자금) 소진에도 소극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를 역행하는 곳이 있다. 일본이다. 일본 VC들은 적극적으로 투자처 발굴에 나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요 LP들이 일본 벤처투자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KPMG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일본 벤처투자액은 6억9000만달러(약 8835억원)으로 전분기(2022년 4분기) 대비 11.3%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글로벌 벤처투자액이 860억달러에서 573억달러로 33.4% 급감한 걸 감안하면 고무적이다. 각국 수치를 따져봐도 벤처투자액이 증가한 건 일본이 유일하다. 벤처투자 혹한기의 터널을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
현재 일본 벤처투자 시장은 정확히 어떤 상황일까. 왜 글로벌 LP들은 일본에 주목하는가. 일본 벤처투자 호황기 한국 스타트업이 얻을 수 있는 건 뭘까. △팍샤캐피탈(Pksha Capital) △듄캐피탈(Dawn Capital) △아스캐피탈파트너스(Asu Capital Partners) 등 일본 주요 VC에게 직접 들어봤다.
◇외국인 출자 비중 0.8% '갈라파고스' 日 꿈틀=외국인 출자 비중 0.8% '갈라파고스' 日 꿈틀="최근 싱가포르계 펀드가 일본 AI(인공지능)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거나 미국계 메가펀드 운용사까지 (일본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문의를 주고 있습니다. 또 글로벌 투자 예산으로 일본 투자를 확대하고자 하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야마자키 타이세이 듄캐피탈 디렉터는 현재 일본 벤처투자 시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일본 벤처펀드 LP 중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0.8%(2023년 1분기 기준)에 불과하다. 20%대인 미국과 유럽은 물론 4.5%인 한국과 비교해도 미미하다. 그만큼 일본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그러나 최근 이런 흐름은 바뀌고 있다. 올해 6월말 일본 최대 스타트업 행사인 'IVS2023 교토'에는 1만명이 넘는 글로벌 스타트업 창업자와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이 몰렸다. 역대 최대다.
리 루쳉 아스캐피탈파트너스 공동창업자는 "2020~2021년 글로벌 투자자들이 벤처투자 선진국인 한국과 중국에 집중했다면 최근엔 일본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그동안 주변국에 과소평가됐던 일본 스타트업의 기업가치 등이 반영된 관심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낮은 기업가치와 낮은 상장문턱…일본에 주목하는 이유=야마자키 디렉터는 일본 벤처투자 시장이 주목 받는 이유로 우선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가치를 꼽았다. 야마자키 디렉터는 "2020~2021년 코로나19(COVID-19) 시기 일본도 기업가치가 오르긴 했지만 한국과 미국과 비교해 상승폭이 낮은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상현 팍샤캐피털 파트너 역시 "중간값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일본에서 시리즈 C 단계 스타트업이 조달하는 금액은 3억7000만엔(약 34억원) 수준"이라며 "모든 기업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같은 투자 라운드 단계에 있는 한국 스타트업과 비교해서는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는 낮은 IPO(기업공개) 문턱이다. 에비하라 히데유키 팍샤캐피탈 파트너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일본 IPO 요건은 낮은 편"이라며 "스타트업의 IPO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상장 이후 미국이나 중국처럼 드라마틱한 시가총액 상승세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안정적인 엑시트(투자회수) 기회를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하기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 상장시장은 △프라임 △스탠다드 △그로스로 구성된다. 프라임은 한국의 유가증권시장, 스탠다드는 코스닥, 그로스는 코스닥과 코넥스의 중간 정도다. 스타트업은 주로 그로스 시장에 상장하게 되는데 상장요건은 시가총액 5억엔 이상, 유통주식 수 25% 이상이 전부다. 요건만 맞춘다면 적자기업도 매출이 미미한 기업도 그로스 시장에 상장할 수 있다.
역대급 엔화 약세도 한몫한다. 에비하라 파트너는 "엔저도 글로벌 투자자들이 일본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라며 "이후 엔화가 회복세를 보이고 투자회수를 했을 때 환차익까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COVID-19) 확산이 시작된 2020년 3월 100엔당 1191.34원까지 올랐던 엔화는 최근 100엔당 895.18원(2023년 8월2일)까지 떨어졌다.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흐름에도 일본은행(BOJ) 나홀로 통화 완화정책을 편 결과다. 전 세계 엔화가 넘쳐나자 엔화가치가 급락한 것.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벤처투자 지원 계획도 긍정적이다. 지난해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5개년 스타트업 육성 계획을 발표하면서 10조엔(약 90조791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야마자키 디렉터는 "예산을 어떤 방향으로 사용할지 다양한 논의를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아직 구체적인 정책 내용이 나오지 않고 있어 정부 지원책의 훈풍을 느끼려면 어느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일본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나츠메 히데오 아스캐피탈파트너스 공동창업자는 "한국의 경우 시드 단계부터 글로벌 진출을 염두해두고 사업을 전개하는 스타트업이 많다"며 "실제 글로벌 투자자들의 투자가 이어지려면 일본 스타트업 역시 비교적 사업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진출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철저한 현지화 성공 가능성↑…'엔터테인먼트' 주목=일본 VC 관계자들은 한국 스타트업 역시 일본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나츠메 공동창업자는 "이미 일본에서는 온라인 비대면 고객상담 '채널톡', 오디오 플랫폼 '스푼라디오'처럼 성공한 서비스가 있다"며 "한국 스타트업에게도 기회"라고 말했다.
채널톡 전체 매출의 약 20%는 일본에서 나온다. 일본 내 고객사만 1만4000곳이 넘는다. 스푼라디오의 경우 이미 일본이 매출과 트래픽 등 주요 핵심성과지표(KPI)면에서 한국을 추월했다.
나츠메 공동창업자는 "두 기업은 일본에서 한국에 뿌리를 둔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현지화를 잘 이뤘다"며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접근한다는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소비력이 높은 일본을 토대로 탄탄한 실적을 쌓고 다른 국가로 사업을 확장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일본 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엔터테인먼트다. 야마자키 디렉터는 "최근 일본의 화두는 '글로벌 진출'이다. 특히, BTS와 뉴진스 등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성공적인 글로벌 진출 전략에 관심이 많다"며 "일본 대기업과의 오픈이노베이션 등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日 디지털 전환은 절호의 기회…한번 뚫으면 보안 금맥 터진다"
쿼드마이너 소명섭 일본법인장의 日 진출 전략
"디지털화가 빠르게 전개돼 사실상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보안 시장을 넘어 일본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왔다."
작년 4월 도쿄IT지원센터에 입주한 쿼드마이너의 소명섭 일본법인장은 일본 시장에 진출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소 일본법인장은 "일본 보안시장은 대규모 DX(디지털 전환) 투자 덕분에 향후 한국의 4~5배 크기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가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우선 일본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처리와 서비스를 전산화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공인인증서 기능을 합친 형태인 '마이넘버 카드'를 개발·보급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목표한 행정 전산화가 이뤄지면 그동안 종이서류를 사용해온 양육수당과 개호(간병) 신청 등을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고, 마이넘버(주민등록)을 은행 계좌와 연동해 각종 보조금도 지급할 수 있다. 이 서비스가 안전하게 운영되려면 모바일 앱-플랫폼-서버·네트워크를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보안 솔루션이 필요하다.
2017년 설립된 쿼드마이너는 이 같은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 탐지·대응 솔루션(NDR) '네트워크 블랙박스'를 개발해 판매중이다.
이는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모든 종류의 사이버 보안 위협을 빠르게 발견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해킹 등의 네트워크 침입 형태가 감지되면 어떤 경로를 통해 들어와 네트워크망의 어디까지 퍼졌는지, 또 어떤 행위를 했는지를 자동으로 분석해 알려준다.
쿼드마이너는 글로벌 IT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가 선정한 대표 벤더사로 4년 연속 등재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제품경쟁력을 입증 했다.
또 최근 오픈AI의 인공지능(AI) 챗봇 '챗GPT'와 관련한 보안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챗GPT 사용 중 일어날 수 있는 개인 정보 및 회사 기밀 유출 사고를 막기 위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려는 기업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쿼드마이너는 2020년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한 뒤 2021년부터 일본 시장 공략을 위한 채비를 해왔다. 소 일본법인장은 "일본의 네트워크 보안 기술은 아직 옛날 방식에 머물러 해커 공격에 대한 오탐지가 많이 발생하고, 공격이 이뤄졌을 때 통신 단말기와 함께 호스트(각각의 단말기로부터 자료 처리 요구를 받아 처리하는 중심이 되는 컴퓨터)를 추가 분석해야 한다. 이 때문에 대응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우리 NDR 솔루션은 네트워크에 발생하는 모든 위협 정보를 인공지능이 분석하고 대응하므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소 법인장은 우선 일본 총판, 리셀러를 발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초반엔 판매 대리점 등 현지 파트너사와 협업해 사업을 전개하고, 사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조인트벤처를 이뤄 직접 판매를 확대하면서 인지도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고객 대상 무료 PoC(기술검증) 확대, 기술 데모센터 설립, 기술 고문 영입 등의 전략을 펼칠 예정이다.
소 법인장은 일본 시장에서 향후 3년 안에 한국 매출(데이터랩 자료 기준 2022년 매출액 81억원) 수준을 뛰어넘겠다는 포부다. 그는 "일본 비즈니스는 제가 영일만(0-1-10000)이라고 표현하는 데 0에서 1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은 굉장히 오래 걸리지만, 1을 만들면 그 뒤에 10000을 만드는 건 금방"이라며 "일본은 비즈니스 진행 속도가 한국에 비해 느리고, 한번 뚫기도 어렵지만, 한번 계약을 맺으면 매출 그래프의 기울기가 가팔라진다"고 말했다.
소 법인장은 성공적인 일본 진출을 위해선 다양한 판매 레퍼런스를 쌓고,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일본 관공서나 대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하려면 국내외 업체에 납품·운영한 실적을 쌓고 일본 기업의 니즈에 맞춘 '현지화 전략'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도쿄IT지원센터와 같은 스타트업 지원 기관을 통해 우리 기업에 필요한 일본시장 정보와 동향, 특성 등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 기자 사진 류준영 차장 joon@mt.co.kr 다른 기사 보기
- 기자 사진 김태현 기자 thkim124@mt.co.kr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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