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뚝…"돈 부족해요" 인력 감축→연구 중단 '최악 사태'까지

변휘 기자, 박건희 기자 기사 입력 2024.10.0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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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쫓겨나는 과학자(下)

[편집자주] 풀뿌리 연구 인력인 학생연구원이 사라진다. 연구인력 양성의 전진기지인 4대 과학기술원조차 '일자리가 없다'며 쫓겨나는 과학자 역시 적지 않다. 과학계를 떠나는 인력 이탈이 심화하면서, 연구 현장에선 우리 과학기술계의 기초 체력 저하와 생태계 황폐화를 우려한다. 연구에만 몰두해도 '먹고 살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정부 정책의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으로 제기되는 대목이다.


한반도 기후 변화· 백신 개발 연구…"임상도 못 했는데"


③ 한반도 생태연구·RNA 백신 플랫폼 연구도 70% 이상 예산 삭감

4대 과기원의 '2023년도 대비 2024년도 계속과제 연구개발비 조정 내역'에 따르면 올해 참여연구인력이 절반 이상 줄어든 과제가 속출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4대 과기원의 '2023년도 대비 2024년도 계속과제 연구개발비 조정 내역'에 따르면 올해 참여연구인력이 절반 이상 줄어든 과제가 속출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4대 과학기술원(이하 과기원)의 국가 R&D(연구·개발) 과제 참여 인력이 올해 감축된 가운데 기후변화에 따른 한반도의 생태 변화, RNA(리보핵산) 백신 플랫폼, 치매 진단 기술 등을 연구하던 주요 연구자들도 설 자리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4일 DGIST, GIST, KAIST, UNIST 등 4대 과기원이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2023년도 대비 2024년도 계속과제 연구개발비 조정 내역'에 따르면 올해 참여 연구인력이 절반 이상 줄어든 과제가 속출했다.

4대 과기원 중 총연구 인력이 19.3%로 가장 많이 줄어든 GIST에서는 해양수산부의 지원을 받아 2022년부터 수행하던 '한반도 주변해 해양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생태계' 연구의 인원이 54명에서 올해 8명으로 대폭 줄었다. '기후환경 시나리오에 따른 생태계 개체군의 변화' 연구 역시 39명에서 7명으로 줄었다. 두 연구 모두 당초 2026년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다.

KAIST에서는 'RNA를 이용한 백신 플랫폼 개발' 연구의 예산이 전년 대비 90% 이상 삭감되며 연구 인력이 14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 연구 계약기간은 내년 12월 31일까지였다. UNIST의 연구팀이 진행하던 '폐암 조기진단을 위한 DNA 탐침 키트' 연구 역시 2025년 12월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예산이 완전 삭감되며 올해 중단됐다. 이 연구에 참여하던 인력은 11명이었다.

"5년 간 진행해오던 AI(인공지능) 기반 치매 진단 연구 예산이 50% 삭감됐다"고 밝힌 과기원의 A 교수는 "연구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임상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돈이 부족해졌다"고 밝혔다. 그는 "인건비를 줄이면 함께 일하던 연구원을 내보내야 하는데, 그럴 순 없기 때문에 차선으로 임상시험의 목표치를 당초보다 줄였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A 교수가 참여하는 3개 대학 공동 한의융합기술연구의 예산도 80% 감축돼, 주관 연구팀을 제외한 모든 팀이 연구에서 빠지기로 했다.

정부가 내년도 R&D 투자를 '원상 복귀 이상'으로 돌리는 예산안을 내놨지만, 연구자 입장에서 희소식이 아니라는 시각도 나온다. 진행 중이던 과제가 사라져 당장 인건비 마련이 어려워진 연구자들이 내년도 신규 과제 모집에 한꺼번에 뛰어들게 됐기 때문이다.

A 교수는 "이젠 연구자 간 피 터지는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며 "R&D 예산이 줄어들 수 있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과제 일괄 감축이 아닌 다른 조정 방식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했다. 그는 "연구 과제는 국가와 연구자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맺는 일종의 약속임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만 해도 먹고살 걱정없도록...'땜질' 나선 정부


④정부의 선택과 집중에 기존 연구가 중단되는 일은 없어야

2025년 이공계생 경제적 지원책/그래픽=윤선정
2025년 이공계생 경제적 지원책/그래픽=윤선정
풀뿌리 연구 인력의 부족에 정부의 경각심이 높다. 진로에 대한 비전과 경제적 보상의 기대감이 낮아진 탓에 '연구만 해선 먹고 살 수 없다'며 연구자를 포기하는 인재들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이에 정부는 학생연구자의 처우를 개선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릴 대책을 마련한다. 과학기술원 등 학교 현장에서도 전략기술 중심의 R&D(연구개발) 재원을 확보, 젊은 연구자의 안정적 연구 환경 보장에 주력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과학기술인재 성장·발전 전략'의 핵심은 이공계 석사과정 학생 대상의 국가장학금 및 생활비 지원책을 마련하고, 석·박사를 마친 대학원생이 국내에서 안정적인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확충하는 내용이다.

학생연구원과 박사후연구원(포닥)은 그간 연구현장을 지탱해 온 핵심 인력이다. 이들의 인건비는 주로 소속 연구실이 확보하는 R&D 비용에 기대고 있다. 이에 지난해 국가 R&D 예산 삭감 사태 이후 대규모 인원 감축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고, 학생 연구자들의 핵심 거점인 4대 과기원의 올해 전체 연구참여자가 지난해보다 4.9%(949명) 줄어들면서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이들의 불안정한 상황은 앞으로 연구자를 꿈꿔야 할 과학기술 꿈나무들의 유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실제 4대 과기원 중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의 올해 봄학기 학부 신입생 충원율은 87.5%, UNIST(울산과학기술원)는 98.3%로 법정 정원에 못 미쳤다. 석·박사 과정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UNIST의 올해 대학원 신입생 충원율은 83.4%, DGIST는 84.5%였다.

이에 정부는 과학기술 인재의 경제적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과기정통부는 우선 4대 과기원과 대학의 박사후연구원 채용을 앞으로 10년간 2900명 규모로 확대한다. 과기원은 1500명, 대학부설연구원은 1400명 수준이다. 또 이공계 석·박사 과정 학생을 대상으로 매월 생활지원금을 지급하는 '한국형 스타이펜드(Stipend)', 이공계 연구생활장려금도 추진한다. 다만 대학마다 사업 참여 절차가 남아, 최종 수혜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다.

4대 과기원을 비롯한 학원 연구 현장도 인재 유치를 위한 변화가 절실하다는 평가다. 정부가 R&D 예산의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 만큼 핵심 연구과제를 수주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한 과기원 교수는 "무엇보다 더 많은 예산이 배분되는 신규 과제를 따내 안정적인 연구원 인건비를 확보하는 게 먼저"라며 "국가 전략기술을 중심으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진행중인 기존 연구가 중단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른 교수는 "정부가 국가 재원을 전략기술 분야로 집중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기존의 계속과제는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새로운 신규 과제를 전략기술 등으로 집중해야지, 무턱대고 기존 과제의 예산을 삭감해버리면 안 된다"며 "연구 예산은 국가와 연구자와의 약속이기도 하다"라고 지적했다.
  • 기자 사진 변휘 기자
  • 기자 사진 박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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