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가진 모든 전술, 전투 기술, 강한 충성심과 의지를 가진 최고의 전투 지휘 AI(인공지능)를 개발할 것입니다. 저희는 이 프로그램을 '정이'라고 칭할 계획입니다." -영화 '정이' 中
#가까운 미래,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류는 우주로의 이주를 결정한다. 지구와 달 궤도면 사이에 인류가 살 수 있는 '쉘터'를 만드는 데 성공한 인류는 80여개 쉘터에 시민들을 이주시킨다. 그러나 쉘터 8호, 12호, 13호가 스스로 '아드리안 자치국'이라 선언하며 지구와 다른 쉘터와의 내전을 일으키면서 40년간 전쟁이 이어진다. 이에 AI 연구소 크로노이드는 전설적 용병 '윤정이'의 뇌를 복제한 전투 AI 개발에 나선다.
"뇌 복제가 AI?"…영화 '정이'를 향한 의문점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영화(비영어) 부문 1위를 차지한 '정이'지만, 국내에선 '신파'라는 혹평과 함께 극 중 설정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배우 고(故) 강수연의 유작이기도 한 '정이'는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떠나 쉘터로 이주하는 2194년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공상과학)물이다. 40년간 이어지는 아드리안 내전의 전설적 용병 '윤정이'(김현주 분)가 작전 실패 후 식물인간이 되자, 그의 딸 윤서현(고 강수연 분) 박사를 주축으로 한 AI 연구소 크로노이드가 윤 용병의 뇌를 복제한 전투 AI 개발에 나선다는 줄거리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뇌 복제가 AI 연구로 인식되는 설정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위적으로 새로운 지능을 개발하는 것이 아닌 원래 있던 지능을 옮기는 행위를 AI 개발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인지과학자인 김상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뇌를 복제한다는 건 원래의 지능을 그대로 쓴다는 얘기"라며 "아직 지능을 복제하는 연구가 된 게 없다. (정이는) 기존에 존재했던 기능을 그대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듀플리케이션'(Duplication·복제품)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이를 AI로 볼 수 있다고 해도 이를 현실화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장병탁 서울대 AI 연구원 원장은 "AI 연구 자체가 인간의 뇌를 닮은 AI를 추구하고 있고 (정이의 경우) 더 발전된 인공지능으로 볼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그 기술의 구현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뇌 신호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한 기술인지는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이'를 자문한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궁금한 뇌연구소 대표)는 극 중 AI 연구가 '알고리즘 재현'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놨다. 장 박사는 "감독의 견해는 알 수 없으나 영화상에서는 소프트웨어가 복제된다고 여겨지는 것 같다"며 "그것이 원본과 같은 것인지는 확인이 어려워 결국은 일종의 알고리즘으로 재현되는 것이라고 본다. 범주가 넓지만 인공지능에 해당하는 것은 맞으므로 AI라는 표현은 적당하다"고 설명했다.
"왜 매번 저기서 탈출을 못해?"…학습에 누적이 없다 극 중 정이는 반복 학습에 따른 누적이 없다. 크로노이드 연구진은 복제한 뇌를 휴머노이드에 이식한 뒤 반복해서 전투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시뮬레이션이 끝나면 이 휴머노이드를 면담한 뒤 폐기한다. 이후 시뮬레이션에 투입되는 휴머노이드의 뇌에는 앞 단계 시뮬레이션을 통한 결과가 반영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정이가 똑같은 시뮬레이션에서 계속 실패하는 것으로 보아 절차적으로 전투력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라며 "반복 학습이 안 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극 중 정이는 마지막 전투를 복원한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매번 탈출에 실패한다.
반면, 장 박사는 "당연히 다음 시뮬레이션에 (앞의 결과물이) 투입되고 반영된다고 본다"며 "인간도 명시적 기억과 암묵적 기억이 서로 다른 메커니즘으로 저장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운전을 반복하면 운전 능력치가 올라가지만 운전했던 길에 있던 가게나 표지판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절차적으로는 반복 훈련을 통해 정이의 능력이 향상돼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몸으로는 학습 결과를 체득하지만 머리로는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극 중 정이가 '전쟁 영웅'으로 묘사되긴 하나, 통상 여러 명의 능력을 학습하는 AI가 특정 1명의 복제된 뇌를 활용한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정이의 뇌를 복제해서 이식한 휴머노이드가 여러 인간의 전투 능력을 학습한 AI 휴머노이드보다 더 전투력이 높으리라 기대한 설정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현재 AI만 봐도 특정 전문가 한 둘의 능력을 학습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병탁 원장은 "(영화처럼) 복제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경험·능력과 결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며 "보통 AI라고 하면 정이와는 달리 여러 사람의 경험 등을 학습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가까운 미래,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류는 우주로의 이주를 결정한다. 지구와 달 궤도면 사이에 인류가 살 수 있는 '쉘터'를 만드는 데 성공한 인류는 80여개 쉘터에 시민들을 이주시킨다. 그러나 쉘터 8호, 12호, 13호가 스스로 '아드리안 자치국'이라 선언하며 지구와 다른 쉘터와의 내전을 일으키면서 40년간 전쟁이 이어진다. 이에 AI 연구소 크로노이드는 전설적 용병 '윤정이'의 뇌를 복제한 전투 AI 개발에 나선다.
"뇌 복제가 AI?"…영화 '정이'를 향한 의문점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영화(비영어) 부문 1위를 차지한 '정이'지만, 국내에선 '신파'라는 혹평과 함께 극 중 설정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배우 고(故) 강수연의 유작이기도 한 '정이'는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떠나 쉘터로 이주하는 2194년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공상과학)물이다. 40년간 이어지는 아드리안 내전의 전설적 용병 '윤정이'(김현주 분)가 작전 실패 후 식물인간이 되자, 그의 딸 윤서현(고 강수연 분) 박사를 주축으로 한 AI 연구소 크로노이드가 윤 용병의 뇌를 복제한 전투 AI 개발에 나선다는 줄거리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뇌 복제가 AI 연구로 인식되는 설정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위적으로 새로운 지능을 개발하는 것이 아닌 원래 있던 지능을 옮기는 행위를 AI 개발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인지과학자인 김상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뇌를 복제한다는 건 원래의 지능을 그대로 쓴다는 얘기"라며 "아직 지능을 복제하는 연구가 된 게 없다. (정이는) 기존에 존재했던 기능을 그대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듀플리케이션'(Duplication·복제품)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이를 AI로 볼 수 있다고 해도 이를 현실화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장병탁 서울대 AI 연구원 원장은 "AI 연구 자체가 인간의 뇌를 닮은 AI를 추구하고 있고 (정이의 경우) 더 발전된 인공지능으로 볼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그 기술의 구현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뇌 신호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한 기술인지는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이'를 자문한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궁금한 뇌연구소 대표)는 극 중 AI 연구가 '알고리즘 재현'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놨다. 장 박사는 "감독의 견해는 알 수 없으나 영화상에서는 소프트웨어가 복제된다고 여겨지는 것 같다"며 "그것이 원본과 같은 것인지는 확인이 어려워 결국은 일종의 알고리즘으로 재현되는 것이라고 본다. 범주가 넓지만 인공지능에 해당하는 것은 맞으므로 AI라는 표현은 적당하다"고 설명했다.
"왜 매번 저기서 탈출을 못해?"…학습에 누적이 없다 극 중 정이는 반복 학습에 따른 누적이 없다. 크로노이드 연구진은 복제한 뇌를 휴머노이드에 이식한 뒤 반복해서 전투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시뮬레이션이 끝나면 이 휴머노이드를 면담한 뒤 폐기한다. 이후 시뮬레이션에 투입되는 휴머노이드의 뇌에는 앞 단계 시뮬레이션을 통한 결과가 반영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정이가 똑같은 시뮬레이션에서 계속 실패하는 것으로 보아 절차적으로 전투력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라며 "반복 학습이 안 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극 중 정이는 마지막 전투를 복원한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매번 탈출에 실패한다.
반면, 장 박사는 "당연히 다음 시뮬레이션에 (앞의 결과물이) 투입되고 반영된다고 본다"며 "인간도 명시적 기억과 암묵적 기억이 서로 다른 메커니즘으로 저장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운전을 반복하면 운전 능력치가 올라가지만 운전했던 길에 있던 가게나 표지판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절차적으로는 반복 훈련을 통해 정이의 능력이 향상돼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몸으로는 학습 결과를 체득하지만 머리로는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극 중 정이가 '전쟁 영웅'으로 묘사되긴 하나, 통상 여러 명의 능력을 학습하는 AI가 특정 1명의 복제된 뇌를 활용한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정이의 뇌를 복제해서 이식한 휴머노이드가 여러 인간의 전투 능력을 학습한 AI 휴머노이드보다 더 전투력이 높으리라 기대한 설정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현재 AI만 봐도 특정 전문가 한 둘의 능력을 학습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병탁 원장은 "(영화처럼) 복제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경험·능력과 결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며 "보통 AI라고 하면 정이와는 달리 여러 사람의 경험 등을 학습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 기자 사진 홍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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