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인구절벽 위기 속에 인재마저 떠나는 나라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기사 입력 2024.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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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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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인재의 해외유출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진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인재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예삿일이 아니다.

'국가 석학'(Star Faculty) 이기명 고등과학원 부원장의 중국행이 단적인 사례다. 이 부원장은 우주의 기원을 연구하는 '초끈이론' 전문가로 국내 이론물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꼽힌다. 2006년 '국가 석학'에 선정됐고 2014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도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을 포함해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연구활동을 펼쳤다.

이런 그가 오는 8월 중국 베이징 수리과학및응용연구소(BIMSA)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과학기술계는 크게 술렁였다. 이 부원장이 고등과학원을 그만두고 중국으로 자리를 옮기는 표면적인 이유는 정년(65세) 때문이지만 실상은 더 이상 국내에서 연구할 자리를 찾지 못해서다. 고등과학원은 정년을 앞둔 그를 '석학교수'로 남게 하고 싶었지만 예산부족으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연구를 계속할 곳을 찾지 못한 이 부원장은 중국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왕성하게 연구활동을 하는 '국가 석학'이라도 정년 이후를 고민하고 연구실을 찾아 헤매야 하는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나이·국적제한 없이 인재확보에 열을 올리는 중국과 대비되는 모습에 과학기술계에선 우려와 탄식이 터져나온다.

인재유출은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지만 최근 상황은 우려스럽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평가한 한국의 두뇌유출지수는 2021년 5.28(24위)에서 2023년 4.66(36위)으로 추락했다. 해당 지수가 0에 가까울수록 인재가 외국으로 더 많이 나간다는 뜻이다.

특히 최근에는 AI(인공지능) 및 반도체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관련 인재유출이 심상치 않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인도와 이스라엘에 이어 AI인재 유출이 세 번째로 많은 국가였다. 미국 시카고대 폴슨연구소는 2022년 기준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AI인재의 40%가 해외로 나간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인재를 데려와도 모자랄 판에 인재를 뺏기는 것이다.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오는 고급 두뇌도 점점 찾기 힘들어진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국내 공학계열 박사학위자 중 외국 박사학위 취득자 비중은 1990년 40%대에서 2022년 5% 미만으로 낮아졌다. 외국 박사학위 취득자의 상당수가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현지에 머문다는 얘기다.

삼성, SK, LG 등 대기업들이 해외 채용설명회나 박람회를 늘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럼에도 대기업들은 "인재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하소연한다. 미국·중국 기업들이 파격적인 연봉과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 등을 앞세워 인재를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이 정도니 중소·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의 상황은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인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유가 파격적인 연봉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전문가들은 연봉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R&D(연구·개발) 생태계 활성화라고 강조한다. 인재들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토록 R&D 인프라를 조성하고 개발한 신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해외에서 일하는 한국인 AI 연구자들이 '귀국을 고려할 만한 조건'으로 연봉보다 '우수한 동료 연구진'과 '연구 인프라'를 우선적으로 꼽았다는 설문결과도 있다.

인구절벽에 앞에 선 대한민국에 인재확보는 최후의 보루나 마찬가지다. 인재유출이 기술격차로 이어지면 미래산업의 주도권을 잃고 낙오할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민관정(民官政)이 함께 글로벌 인재 쟁탈전에서 국내 인재를 지키고 해외 인재를 유입할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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