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
NST는 25개 과기 정부출연연구기관 지원·관리 기관
"비효율 삭감 동의, 소통은 無…과학자 카르텔 아냐"
"R&D(연구개발) 예산 삭감의 방향은 맞지만 방식은 잘못됐습니다.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면 현장과 소통하면서 합리적으로 조정해야지 일괄적으로 깎으면 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은 최근 독일 뮌헨 사이언스콩그레스 센터에서 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과 만나 '정부의 R&D 예산 삭감 문제'를 이같이 비판했다. NST는 25개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을 지원·관리하는 기관으로, 김 이사장은 국가 R&D를 총괄하는 수장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22일 내년도 국가 주요 R&D 예산으로 21조5000억원을 편성했다. 올해 예산 24조9500억원 대비 약 3조4000억원(13.9%↓) 줄어든 수치다. 특히 내년도 R&D 예산 재분배 과정에서 25개 출연연 예산도 올해 대비 3000억원(10.8%) 줄어들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나눠먹기·갈라먹기 R&D를 카르텔로 규정하며 예산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조치사항이다.
김 이사장은 출연연 비효율 개선이 필요하다는 정부 정책 방향에는 동의하면서도 "국민 세금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해서 효과를 높여야 하겠지만 모든 과학자들이 특정 카르텔처럼 비춰지는 지금의 상황은 아쉬울 뿐"이라고 했다.
국가 R&D는 2018년 약 19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약 29조8000억원으로 5년새 10조원 이상 양적 증가한 상황이다. 하지만 한정된 R&D 예산 배분 시스템이 선택과 집중이 아닌 나눠주기식으로 전락해 R&D 시스템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김 이사장은 이에 대해 "지금은 학생이 없어 연구를 못하는 것이지 돈이 없어 연구를 못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예산이 늘어난 만큼 효율적인 배분에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예산 비효율을 개선해야 한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맞다"고 동의했다.
"연구 경쟁 아닌, 연구과제 수주 경쟁시스템 문제"
그는 출연연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일괄적인 예산 삭감으로 이어진 점이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출연연의 근본적인 문제로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꼽았다. PBS는 R&D 과제 배정 시 연구자가 경쟁을 통해 과제를 수주해 연구비를 받는 체계다. 1996년 제도 도입 당시엔 성과 경쟁을 촉진한다는 취지였지만 현재는 연구 과제 수주에만 몰두하는 과학계 폐단을 만들어 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이사장은 "PBS로 큰 연구들이 각각의 과제로 파편화되다 보니 연구자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를 책임지기보다 일부 과제 한 두 개만 맡아서 적당히 기준에 맞는 성과만 내는 문화가 형성됐다"며 "과제가 잘게 쪼개지다 보니 나오는 결과물도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정부가 지적한 연구비 나눠먹기나 불투명한 예산 집행 등의 문제도 PBS 개혁으로 풀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PBS에는 과제당 사용할 수 있는 인건비나 직접비 등의 비중이 정해져 있다. 연구에 필요한 인건비를 거둬들이려면 과제 하나로는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과제를 수주해야 하고, 그럴수록 직접비가 남아 당장 활용성이 적은 연구 장비를 구입하는 등 낭비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는 "결과적으로 예산 낭비의 주범은 PBS"라며 "과제당 인건비 비중을 높이는 등 제도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것들에는 손대지 않고 일괄적으로 예산을 삭감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은 현장에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산을 일괄 삭감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배분이 되고 있는지, 배분 과정이 적정한지 등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토대로 혁신 방향을 잡아갔다면 현장에서도 충분히 이해를 했을 것"이라며 "지금은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카르텔 집단처럼 비춰지면서 연구자들이 상당히 위축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김 이사장은 PBS 개편 논의가 20년 이상 지속됐지만, 이에 대한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작심 비판했다. 이어 독일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00년대 초 독일에서도 과학기술 발전이 정체되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연구 혁신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때 독일이 선택한 길은 '범부처 통합 전략' 수립이었다.
김 이사장은 "당시 독일 정부는 4년 동안 범부처 협의체를 만들어서 연구 현장의 소리를 들었고, 이를 토대로 만든 정책 방향이 연구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한 더 많은 자유'(igniting ideas, more freedom for new ideas)"라며 "우리는 PBS 등 연구 개혁 논의를 20년 넘게 반복하고 있지만 한 발짝도 나아가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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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뮌헨(독일)=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
- 기자 사진 김인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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