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현 구조로는 일 못한다"…잠행깨고 입 연 누리호 사령탑

김인한 기자 기사 입력 2022.12.3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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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본부장
조직개편 반발해 잠행하다가 보름만에 첫 대안제시
"기존 체제로 누리호 3차 발사하고, 이후 조직재편"
"내년 차세대 발사체 사업단 중심으로 조직 꾸려야"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단장 겸 고도화사업단장. / 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단장 겸 고도화사업단장. / 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누리호(KSLV-II) 1·2차 발사를 지휘했던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이 조직개편 대안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고 본부장은 지난 12일 항우연 조직개편에 반발하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보직 사퇴서를 제출하고 보름 넘게 잠행을 이어왔다. 내외부와 소통을 단절하던 고 본부장이 잠행을 깨고 공식 입장을 밝히면서 향후 갈등 봉합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고 본부장은 지난 29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조직개편 당시 '이 구조로는 일을 못 맡겠다'는 생각이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면서도 "부처에서 여러 노력을 하고 있어 기다려보겠다"고 밝혔다. 고 본부장은 현재 단행된 조직개편 대안에 대해선 "차세대 발사체(KSLV-III) 조직에서 누리호 고도화 사업을 지원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앞서 항우연은 이달 초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를 발사체연구소로 확대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누리호 1·2차 발사가 주임무였던 본부 임무가 사실상 끝났고, 내년 시작되는 여러 연구에 선제 대응하는 차원이었다. 이를 위해 본부를 발사체연구소로 흡수하고 그 산하에 차세대 발사체 사업단과 고도화 사업단 등을 뒀다. 항우연에서 이미 인공위성과 항공 분야는 연구소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를 위해 이상률 항우연 원장은 지난해 3월부터 누리호 이후 조직개편 방향을 4차례 이상 공식발표했다. 과기정통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등을 찾아 개편 필요성을 공식 전달하고 호응도 얻었다고 한다. 다만 고 본부장을 비롯해 발사체 조직 보직자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독자기술 개발해야 하는 발사체 특성상 하나의 사업에만 집중하는 현 체제가 유지돼야 한다고 반발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조직개편을 단행한 배경 및 구조(파란색)와 항우연 내 발사체 조직이 반발하는 배경 및 대안(빨간색). /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조직개편을 단행한 배경 및 구조(파란색)와 항우연 내 발사체 조직이 반발하는 배경 및 대안(빨간색). /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보직 사퇴서를 제출한 지 보름이 지났다.
▶저는 조직개편 당시 '이 구조로는 일을 못 맡겠다'는 생각이 제일 컸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조직이 이미 개편됐고 답이 보이지 않아 사퇴를 표명했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답이 만만치 않다. 누가 어떻게 중재해 줄 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진 큰 변화가 없다. 다만 부처에서 여러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내년 상반기 누리호 3차 발사까지 시간이 많지 않은데
▶그렇다. 3차 발사가 다들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제가 보직 사퇴서를 제출한 이유는 개인적 감정 때문이 아니다. 이런 구조에선 '제가 책임지고 일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걸 다툼이나 싸움으로 보고 있어 안타깝다.

-조직개편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 않나.
▶일을 하려면 사람하고 조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하고 조직이 다 사라졌다. 일하기 힘든 상황이다. 발사체 조직은 실무자-팀장-부장으로 이어지는 체계다. 기술적 문제가 생기면 단계별로 해결하고 그걸 리포팅(보고)하면 최종 검토 후 발사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다. 그런데 조직개편으로 이게 흔들린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와해됐다.

-기관에선 원하는 인력은 100명이든 200명이든 지원하겠다는데.
▶사람 숫자를 채워주신다고 하더라도 체계가 있어야 한다. 나로호부터 누리호를 개발해온 체계가 사라지고 사람만 들어온다고 되겠나. 책임하고 권한이 같이 가야 한다. 조직이나 시스템이 없는데 책임만 질 수 없지 않나.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는데 사람이 있다고 한들 소용이 없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
▶예컨대 팀장급에서 책임지고 일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팀제 폐지) 팀장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상황이다. 그 사람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고 저도 믿고 가기 어려워진다. 기술은 레벨별로 결정돼야 한다. 누리호 2차 발사가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숱한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팀장·부장이 머리를 맞대고 현장에서 판단해야 한다. 저는 그걸 믿고 의사결정해왔다.

(참고 : 항우연 발사체 조직은 그간 나로호(2002.08~2013.04)→누리호(2010.03~2023.06) 등 단일 연구과제 중심으로 움직였다. 하나의 사업이 끝나면 다음 사업을 진행하는 식이었다. 고 본부장은 현재 단행된 발사체연구소 체제가 아닌 2조132억원이 투입되는 차세대 발사체(2023.01~2032.12) 사업단 중심으로 조직이 개편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조직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누리호를 4차례 추가발사하는 고도화사업(2023.01~2027.12)을 지원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기관 입장은 다르다. 당장 내년부터 차세대 발사체 개발사업과 고도화사업, 재사용 발사체 등 다양한 연구개발 수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처럼 하나의 사업을 마치고 그다음 사업으로 넘어가는 구조는 비효율적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항우연은 발사체를 제외한 위성과 항공 분야는 연구소 체제로 운영되며 다양한 연구개발 수요를 충족하고 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5월 26일 오후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를 방문해 고정환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을 격려하고 있다.  /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5월 26일 오후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를 방문해 고정환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을 격려하고 있다. /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직개편 대안은 뭔가.
▶발사체 조직은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해야 한다. 기존 체제대로 3차 발사를 준비하고 그 이후 차세대 발사체 조직을 꾸려야 한다. 저는 향후 10년간 가장 중요한 일이 차세대 발사체 개발이라고 본다. 굉장히 도전적이어서 집중해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차세대 발사체 조직에서 고도화사업을 지원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제 경험에 의한 생각일 뿐이다.

-고도화사업과 차세대발사체 개발사업이 내년 함께 시작되는데.
▶항우연에 중요하고 집중해야 하는 사업은 차세대 발사체라고 생각한다. 고도화사업은 연구개발이 주가 아니다. 3차 발사부터 누리호 4차 발사까지는 2년 정도의 시간이 있다. 4차 발사부터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역할이 더 커져야 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고 그래서 3차 발사를 우선하고 그다음에 차세대 발사체 조직을 꾸려서 고도화사업을 지원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본다.

-조직개편 대안 근거는.
▶저희가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20년 이상 나로호와 누리호를 개발했다. 선진국처럼 전문인력이 수천명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200여명 모여서 일당백으로 일하고 있다. 중간에 실패를 겪으면서 헤쳐왔다. 그간 일했던 방식이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세대 발사체 개발은 2조원이 들어가는 차원이 다른 사업이다.

-차세대 발사체 개발 사업단장은 세대교체론이 대두되는데.
▶제가 맡을 생각으로 드리는 말씀은 아니다. 차세대 발사체는 젊은 후배 중에서 이걸 맡아서 가야 한다. 차세대 발사체 엔진은 100톤급 다단연소사이클 방식 액체엔진 5기를 클러스터링(묶음)하는 해보지 않은 기술이다. 목표한 엔진이 개발되면 선진국 못지않은 수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기술은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타이트하고 강력한 추진 체계가 있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한편, 지난 며칠간 이종호 장관을 비롯해 과기정통부 담당 국·과장과 이상률 원장, 고정환 본부장 등이 각각 소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도 내달 1일 조직개편 시행을 앞두고 계속해서 고 본부장과 소통을 시도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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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사진 김인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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