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년기획]② K-브레인 유출, 위기를 기회로
하르트무트 미헬 막스플랑크연구소장 현지 인터뷰
[편집자주] 인구구조 급변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가 국가적 난제로 떠올랐다. 50년 뒤 학령인구는 현재 대비 3분의1 수준(약 280만명)으로 이공계(理工界) 인재 부족이 심각할 전망이다. 한국이 1962년부터 30년간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고도성장기를 보낸 원동력은 바로 '인적 자본'이었다. 하지만 최근 30년간 인구감소와 저성장 늪에 빠져 국가 미래는 절체절명 위기를 맞았다. 국가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신(新) 이공계 두뇌 육성책'을 모색한다.
"Give them freedom(그들에게 자유를 줘라)."
하르트무트 미헬(Hartmut Michel) 독일 막스플랑크 생물물리학 연구소장(75·사진)은 '한국의 이공계 석·박사 육성을 위한 조언'으로 자유를 수차례 강조했다. 우수인재들에게 관리가 아닌 자유를 줘야 성과가 나오고, 그 성과를 보고 또다른 인재들이 이공계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독일 프랑크푸르트 연구소에서 만난 하르트무트 소장은 한국의 이공계 고급인재 부족 현상에 대해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독일도 이공계 인재가 부족하다"며 "그 여파로 기술직군 10만개가 채워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기초과학 분야는 86개 막스플랑크연구소가 각 지역 대학과 공동 운영 방식으로 인재를 육성한다"며 "최근 인도 등 해외 이공계 우수인재를 적극 등용하자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응용기술 분야는 대학에 가지 않아도 기술을 교육하고 가르치는 제도가 있다"고 덧붙였다.
하르트무트 소장은 1988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이다. 세포막에 붙은 단백질을 분리해 결정체로 만든 공로를 인정받았다. 지금도 신약 개발 등에 그의 기초연구 성과가 활용되고 있다. 1987년부터 막스플랑크연구소장으로 활동중인 하르트무트 소장은 지금도 연구를 수행하며 인재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하르트무트 소장은 "한국은 수십년간 기술적으로 발전했다"면서 "이공계 인재를 키우려면 어린시절부터 학생들이 실험을 통해 과학기술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기초연구에 대한 장기·안정적 투자와 그로 인한 성과가 경제·사회를 혁신할 수 있다고 봤다. 아래는 일문일답.
"獨도 이공계 인재 부족…어린학생 실험 통해 과학기술 관심 키워줘야"
-한국은 학령인구 감소로 이공계 고급인재 부족이 심각하다.
▶전 세계적 흐름이다. 독일도 이공계 인재가 부족하다. 우수인재가 많지 않다. 유럽은 2030년 대학 졸업생이 2005년보다 약 5만명 감소한다는 예측이 있다. 자연과학과 공학 분야는 이미 젊은연구자 부족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MINT(수학·컴퓨터공학·자연과학·기술) 학과 계열 학생들이 부족하다.
-기초과학·응용기술 강국 독일도 인재가 부족하다는 말인가.
▶그렇다. 독일에서 기술직군 10만개가 안 채워진다고 한다. 독일 산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 논의되는 해법 중 하나로 인도 출신 컴퓨터공학을 잘하는 연구자를 데려오자는 논의가 있다. 해외 우수인재를 등용하자는 의견이다.
-독일 내부적으로 이공계 인재육성 노력은.
▶당연히 MINT 분야 지원을 늘리고 있다. 아이들이 어린 나이부터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방법은 실험이다. 학생들이 13~14살 됐을 때 이공계 분야에 흥미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학교에서 실험을 통해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키워줘야 한다.
-구체적 사례가 있다면.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이 다르다. 기초과학 분야는 86개 막스플랑크연구소가 대학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연구자들이 대학 교수직을 맡으면서 기초과학 분야 연구와 교육을 함께 수행한다. 응용기술 엔지니어는 대학에 안 가고 바로 일하는 '테크니컬 어시스턴트' 제도가 있다. 학생들이 대학에 가지 않고도 기술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
"이공계 석·박사들에게 자유를" -이공계 석·박사 육성 노하우를 말씀해달라.
▶Give them freedom(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학생들을 철저히 관리감독하지 않고 자유를 준다. 최대한 실수를 하게 두고 그 실수를 본인이 깨닫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유가 중요하다. 또 석·박사생 스스로 본인 연구결과를 콘퍼런스 등에서 발표하고 사람들과 네트워킹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들과 교감하면서 연구방향은 맞는지 본인 위치는 어딘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상을 받을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하다.
-구체적 사례가 있나.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유럽분자생물학연구실'(EMBL)이 있다. 유럽 전역에서 운영중인데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박사후연구원(Postdoc)을 뽑아 최고급 장비를 제공하고 9년간 안정적으로 연구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이런 기초과학 분야 지원이 곳곳에 존재한다.
-이공계 고급인재 육성에 핵심요소는 뭐라고 생각하나.
▶애초에 뽑을 때부터 열의가 많은 연구자를 뽑아야 한다. 종이에 쓰여진 내용보단 열정적으로 연구할 동기나 목적이 있는지 봐야 한다. 최고 인재를 뽑고 그들에게 자유를 주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기초연구 인재육성이 국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이곳에서 멀지 않은 바이오엔테크(BioNTech) 사례가 대표적이다. 카탈린 카리코 바이오엔테크 수석부사장이 20년 이상 mRNA(메신저 리보핵산) 기초연구를 수행했고 화이자(Pfizer)와 공동연구 끝에 코로나19(COVID-19) 백신을 상용화했다. 기초연구가 경제·산업 혁신의 토대를 만든 것이다. 동료 연구자도 중증근무력증에 대항하는 약을 만들고 회사를 차렸는데 그 회사를 수조원에 매각했다.
-기초연구는 수십년간 성과가 안 나오는데.
▶당연하다. 기초연구는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지식을 만들고 그 지식을 다른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 유망한 치료제를 우연히 발견하거나 세상을 바꾸는 혁신은 매우 길고 힘든 과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인재들이 기초연구를 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전구도 없고 GPS(위성항법시스템)도 없다.
-한국에선 이공계보단 의학계 선호가 크다.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를 하거나 개척하는 게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메인 스트림(주류) 연구는 안 좋아한다. 연구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행위다. 주류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일을 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
-막스플랑크연구소에 전 세계 우수인재가 몰리는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연구소에 나 같은 시니어가 많다. 우수연구자들은 종신 계약을 맺는다. 나이가 들어도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 연구 자율성·안정성이 높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약력
△1948년 독일 루트비히스부르크 출생 △1977년 뷔르츠부르크대학원 박사 △1979~1987년 막스플랑크연구소 그룹리더 △1986년 뮌헨대 교수 △1987년~현재 막스플랑크 생물물리학연구소장 △1988년 노벨화학상 △1988년 오토바이에르상 △1989년 프랑크푸르트대 교수 △2008년 영국 생물화학회 케일린 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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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사진 프랑크푸르트(독일)=김인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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